멕시코의 환상과 역사이야기

[영화되돌리기] 달콤쌉싸름한 초콜릿
멕시코의 환상과 역사이야기

양파를 써는 한 소녀의 독백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그녀의 이모 할머니 띠따가 태어나던 날, 띠따의 어머니도 양파를 썰고 있었다. 매운 양파 때문인지 폭포 같은 눈물 속에서 띠따가 태어났다.

그리고 식모 나챠는 띠따가 태어난 부엌에서 20Kg의 소금을 쓸어 담았다. 부엌바닥에 쌓인 하얀 소금가루. 혹시 환상적 리얼리즘(마술적 사실주의)란 말이 낯설지 않다면 이 장면에서 마르께스의 ‘백년동안의 고독’의 조용한 폭풍처럼 엄습해온 노란 꽃비를 떠올려 봄 직하다.

소설 속에서 호세 아르카디오의 장례식 날, 도시를 뒤덮은 꽃비는 문을 열 수 없을 만큼 수북히 쌓여 밖에서 자던 가축을 질식시켰고 장례식 행렬이 지나가기 위해서 삽으로 퍼내야만 했다. 영화는 ‘백년동안의 고독’처럼 기괴하고 마술적인 이야기로 관객을 유혹한다.

부유한 농장에서 셋째딸로 태어난 주인공 띠따. 막내딸은 결혼하지 않고 평생 어머니를 돌봐야 한다는 집안 전통 때문에 사랑하는 남자 페드로를 첫째 언니 로사우로에게 빼앗긴다. 페드로는 사랑하는 띠따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에 마지못해 결혼을 하고 띠따는 어머니가 말하는 전통이라는 폭력에 좌절하고 눈물을 흘리며 결혼식 피로연 음식을 만든다.

그런데 그녀의 눈물이 담긴 웨딩케이크를 먹은 하객들이 하나같이 울음을 터뜨리는 바람에 결혼식은 엉망이 된다. 그리고 이제부터 띠따의 마법 같은 요리가 시작된다. 장미 꽃잎을 곁들인 메추리, 호두를 넣은 고추요리를 먹은 사람들은 띠따의 열렬한 사랑이 전이돼 주체할 수 없는 성욕에 사로잡히고 결국 둘째 언니 헤르뚜르리스는 성정을 이기지 못해 혁명군과 함께 마을을 떠난다.

띠따의 요리로 일종의 환각상태에 빠져드는 영화 속 사람들처럼 영화는 관객을 환타지의 환각 속으로 불러들인다. 장미꽃잎 소스에 버무린 메추리 고기를 베어 문 헤르뚜르리스가 성적 흥분을 참지 못하고 목욕을 하다가 야외 욕실이 불에 탄다.

분명 이 순간 등장한 혁명군의 총탄이 욕실로 날아왔기 때문이지만 그녀의 불같은 성욕이 화재의 원인이 아니었을까? 마찬가지로 페드로와 띠따가 감격의 해후를 하고 애욕의 몸부림을 치다가 불길이 치솟는 것도 이들의 열정이 자초한 화가 아니었을까? 이처럼 사실적이지만 마술적이라고 생각되는 장면들이 이 영화를 압도하는 가장 큰 힘이다.

하지만 감독이 환상의 형식을 빌어 실제 말하고자 하는 얘기는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10년의 멕시코이다. 바로 독재자 포르피리오 디아스에 항거하는 멕시코 혁명이 시작된 해이다. 독재자 디아스는 33년 간 멕시코를 통치하면서 반대세력을 혹독하게 제거하고 언론의 자유를 금지하는 등의 억압정책을 펴 왔다. 마치 전통을 내세워서 가정 내 독재 권력을 휘두른 띠따의 어머니처럼 말이다. 다행히 띠따 어머니가 자행해오던 불합리한 인습은 타파됐지만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했다.

멕시코 영화 <달콤쌉싸름(올바른 표기법은 ‘쌉싸래’)한 초콜릿>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맛이 있는 영화다. 하지만 제목처럼 달콤하면서 쌉싸래한 맛을 기대해선 안 된다.

왜냐하면 이 영화의 원제는 달콤쌉싸래와는 전혀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영화는 라우라 에스뀌발의 소설 ‘Como Agua para Chocolate’을 원작으로 하고 있고 이 제목의 뜻은 ‘Like Water for Chocolate’이다. 멕시코에서 초콜릿을 만들기 위해 뜨겁게 달구어진 팬에 물을 몇 방울씩 넣는다고 한다.

이 때 바짝 달아오른 물이 성적으로 흥분되어 있는 사람과 같다고 해서 이들을 가리켜 ‘Like water for Chocolate’이라고 부른다. 우리말로 쉽게 표현하자면 아마도 ‘후끈 달아올랐다’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정선영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3-10-05 20:34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