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치기 힘든 생의 유혹

[영화되돌리기] 자살관광버스
뿌리치기 힘든 생의 유혹

카드빚을 비관한 30대가 스스로 목을 맸다. ‘이 못난 사람을 용서해주십시오’라는 죄의식의 고백과 함께. 안타까운 유서와 차가운 시신을 접수한 사회는 가정과 사회, 국가에 대한 그의 의무방기와 그를 실존의 극단으로 내몬 비정한 우리사회를 비난하면서 그의 실존적 불안을 보듬어 주지 못한 이웃들에게 공동의 죄의식을 환기시킨다. 이렇게 해서 한차례 자살 이벤트는 끝이 난다.

그런데 자살을 하기 전에 그 남자는 어땠을까? 고향에 사는 어머니에게 안부 전화를 한 통 받았을 지도 모르고, 앞집 아주머니에게 갓 담은 김치 한 접시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며칠 전에 구입한 로또복권이 당첨됐나 싶어 인터넷을 뒤졌을 수도 있다. 그리고 한번쯤 탄식하지 않았을까? ‘아! 살고싶다.’ 심지어 비디오가게 연체료도 그에게는 삶의 유혹이었을지 모른다.

영화 <자살관광버스>는 자살을 택한 사람들이 오키나와를 관광하면서 문득 생의 의지를 깨닫게 되는 과정을 담담하게 (때론 무료하게) 그리고 있다. 나름의 자살 이유를 갖고 있는 12명의 사람들이 2박 3일 단체 자살여행을 떠난다. 그런데 염세와 비관에 심취한 이들 앞에 예상치 못한 불청객이 등장한다. 깜찍, 발랄하면서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보이는 미쯔끼양.

그녀가 바로 이들의 생의 의지를 뒤흔들어 놓는 존재다. 삶에 대한 낙관으로 충만한 그녀는 이들에게 놀이를 제안한다. 그것은 바로 ‘끝말잇기’. 그런데 이 끝말잇기라는 유치한 놀이를 통해 자살을 택한 이들은 처음으로 관계 맺기를 한다. 그리고 오키나와 관광은 시작된다.

그런데 왜 여행지가 하필 오키나와인가? 코발트색이 아름다운 아열대의 섬들. 신혼여행지로 유명한 일본의 대표적인 휴양지가 바로 오키나와이다. 하지만 오키나와는 순탄치 않은 역사를 가진 곳이다.

영화에서 차창 밖으로 보이는 오키나와의 풍경을 보면서 누군가 말한다. ‘미군주둔지가 넓군. 저건 스텔스기지?’ 그리고 이들이 도착한 곳은 슈리성의 슈레이문. 관광가이드는 이 왕릉에서 류큐문화의 전성기를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오키나와는 17세기 전까지 ‘류큐왕국’이라는 이름의 독자적인 나라였다.

하지만 메이지유신 시대에 일본의 침략을 받아 일본의 현으로 강제 편입되었고 세계 2차대전이 발발해서는 일본 유일의 지상전이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서 사람들이 방문하는 히메유리공원에는 태평양 전쟁 때 미군에 포위돼 야전병원에서 자결한 여학생과 교사들의 위령탑이 세워져 있다. 엄청난 민간인의 사상을 낳은 전투에서 일본군은 오키나와 주민의 집단자살을 강요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엄청난 희생을 감수한 오키나와에게 남은 건 가난과 차별, 전체 면적의 20%나 되는 미군기지이다. 이러한 오키나와는 바로 자살관광버스에 오른 주인공들의 모습이다. 버블경기가 사라지고 10년 장기불황의 늪에 허덕이는 일본. 그 속에서 모든 것을 바쳤지만 파산할 수밖에 없는 개인들은 그 옛적 집단자살을 강요받았던 오키나와 주민들과 다름없다.

그렇다면 생의 극단으로 몰려온 이들이 마음을 고쳐먹은 건 왜일까? 기슭에 무더기로 핀 채송화에서, 과목에 무르익어 있는 과물(果物)들에게서 생의 의지를 깨달았다는 어느 시인들처럼 영화 속 주인공들도 구체적 일상의 위대함에 매료된 것은 아닐까? 숙소에 모여서 썰렁한 장기자랑이 한바탕 펼쳐지다가 가라오케에서 소란스럽게 몸다툼을 하고 돌아오면서 신년운수도 한 번 본다.

버스 안에서 로또 복권 숫자도 확인해보고 뉴스에서 들리는 이름 모를 사람의 사고사 소식에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지극히 평범한 우리의 일상이다. 그러고 보면 생의 유혹은 너무나 전방위적이라 그 유혹을 뿌리치는 사람들은 대단히 위대한 극기력의 소유자인지도 모른다.

입력시간 : 2003-10-06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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