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탐구] 장서희

장서희는 ‘조디 포스터’를 연상시킨다. 유난히 동그란 얼굴에 생기있는 표정은 앳된 인상을 풍기지만 언뜻 비치는 가시돋힌 미소는 얼음꽃처럼 차갑다. <인어 아가씨>에서 거만한 왕비 심수정(한혜숙)을 향해 서릿발 같은 말들을 쏟아낼 때는, 진정 이 사람이 우리가 알던 장서희가 맞는지를 의심나게 했다. 그만큼 신선한 충격이었다.

하루, 이틀 방송물 좀 먹었다고 그 같은 연기가 나올 수는 없는 법. 장서희는 데뷔 20년이 넘은 엄연한 중견 배우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뽀빠이 이상용과 함께 어린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연예계에 데뷔해 1989년 MBC 공채 19기 탤런트에 합격하면서 본격적인 연기자의 길을 걸었다. 어릴 적부터 엄마 손 잡고 학교보다 방송사 가는 시간이 더 많았으니 그녀의 연기 이력은 굳이 긴 설명이 필요 없다.

허나,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탤런트로서의 활동 기간 동안 주인공 자리는 매번 그녀를 비켜갔다. 주인공을 빛내는 조연에 머물거나, 아님 운 좋게 주인공을 맡아도 거대 소속사를 등에 입은 다른 여배우측의 로비로 녹화 중에 주인공 자리를 뺏기는 어처구니 없는 수난(?)도 당해봤다. 기막히고 억울해 화장실에서 자주 울었다는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그간 방송은, 대중들은, 장서희라는 배우가 품은 눈부신 광채를 무심결에 흘려버린 것이다.


연기생활 최고의 전성시대

2002년, 임성한이라는 작가가 쓴 <인어 아가씨>를 만나면서 장서희는 그야말로 인생역전, 아니 연기역전을 이루게 된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은 장서희, 그녀를 위해 생겨난 말인냥 당시의 상황과 딱 들어맞았고 그녀는 뒤늦게 발견한 보석이 발하는 아름다움이 뭔지를 탄탄한 연기력으로 보여줬다.

<온달 왕자>때 30여명에 이르던 팬클럽은 이제 5,000여명이 넘는 거대 팬클럽으로 불어났고 연말 시상식에서 연기대상을 비롯한 5개 부분상을 휩쓸었다. 재빠른 광고주들의 요청으로 CF도 세편이나 찍었고 편집음반, 뮤직비디오의 주인공으로도 활약했다. 거짓말로라도 위로받고 싶은 세월을 지나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반전을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장서희는 온몸으로 실감한 셈이다.

연기 이력이 있어서인지 장서희는 누구보다 인기의 롤러코스터를 잘 안다. 한번의 상승기류를 타면 꼭대기까지 오르는 것은 시간문제지만 또 언제 바닥으로 떨어질지 모르는 것이 인기다. 그래서 겸손해지고자 한다.

<인어 아가씨>를 연출한 이주환 PD는 “장서희는 촌스럽다. 여기서 촌스럽다는 것은 외모나 스타일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여느 톱스타들처럼 자신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기술이 서툴다. 같이 드라마할때도 서희한테 몇 번 말했는데 천성이 소박해서인지 그녀가 어깨에 힘주고 다니는 걸 한번도 본적이 없다”고 말한다.

실제로 장서희는 여자 연예인에게 으레 있을법한 안티팬들을 찾아볼 수 없다. 어찌된 일인지 그녀가 나타나면 스태프들 모두 팔을 들며 반기고 스타답지 않은 그녀의 수수함에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지금같은 관심과 사랑을 스무살 때 받았더라면 지독한 공주병에 시달리거나 안하무인으로 살았을 거다. 하지만 천천히 지금까지 오다 보니 많은 것들이 보인다. 배우도 결국은 사람의 심리를 표현하는 직업이다. 주위 사람들의 심리 상태를 역지사지로 고민하다보면 더 겸손해지고 더 낮춰야 한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간 대중의 시선 속에 갇혀 지낸 배우가 아니었기에 가능한 생각인지도 모른다. 그녀 말대로 장서희는 그 또래의 배우들보다 넓은 시야와 가슴으로 세상을, 사람을 보듬는 방법을 터득했다. 박근형, 정영숙, 고두심, 사미자 등의 중견 연기자들이 그녀를 각별히 아끼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짝사랑 한번이 전부인 쑥맥

<인어 아가씨>를 끝내고 나서는 ‘주인공 스트레스’에 시달리기도 했다. 워낙 인기있?드라마의 주인공이었던지라 차기작 선정은 조심스럽기만한데 각 방송사는 물론 충무로에서의 러브콜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러던 차에 MBC <회전목마> 제작진으로부터 캐스팅 제의를 받았다.

<젊은이의 양지> <첫사랑> 등을 통해 여러 톱스타를 배출한 바 있는 유명작가 조소혜와 <내 인생의 콩깍지>를 연출한 젊은 PD 한희가 만났다기에 단박에 O.K를 했다.

천의 연기자 장서희지만 내심 걱정이 되는 부분도 있다. 극이 진전될수록 은교와 우섭의 애절한 사랑이 부각될텐데 아직 제대로 된 연애 경험이 없는 터라 가슴에서 우러나는 연기가 나올 지가 불안하다.

“배우가 사랑다운 사랑을 못해봤다는 건 콤플렉스다. 그래서 멜로에 약하다. 아직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해본 적은 없고 한번 한 것도 짝사랑이 전부다. 지금이라도 진실된 사랑을 하고 싶지만 도대체 어디 숨어있는지 나타나지를 않는다. 이상형은 명품보다는 들꽃을 한아름 꺾어다 줄줄 아는 로맨티스트다.”

한 때 국회의원 L모씨가 며느리감으로 장서희를 점찍었다하여 스포츠지 1면을 장식하기도 했는데 정작 그녀는 그가 누구인지가 궁금하다며 눈을 빛낸다. 김성택과의 열애설도 있었지만 말 만들기 좋아하는 기자들 생각 일뿐이라고 웃어 넘긴다.


"은근한 향기 내뿜는 연기자이고 싶다"

코스모스 같은 사람. 장서희가 듣고 싶은 말이다. 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질리지 않는 소박함이 좋다. 코스모스처럼 은근한 향기와 자태로 사람들을 취하게 하는 연기자이고 싶어한다. “지금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으면 거짓말이다. 갑작스런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또 그만큼 열심히 달려왔다. 그래야 행복했다. 이게 내 방식이고 내가 진짜로 원하는 거다.”

적당한 속물 근성을 애써 감추지도 않는 장서희는 악명과 명성을 혼동하는 대다수의 방송계 사람들과는 분명 다르다. 즐겨먹으면서도 한번도 근사한 접시에는 올려지지 않는 팝콘과도 같은 세월을 보냈지만 그녀가 발산하는 싱싱한 아드레날린의 질량은 풍부한 경험에서 나오는 지혜같다. 최근 ‘아름다운 재단’에 출연료의 1%를 기부하기로 약정한 것도 한 단계씩 정상에 오르면서 그녀가 배운 사랑과 관용이다.

로비와 변칙을 통해 남들이 몇발짝 앞질러 갈 때 우직한 연기 열정으로 한 길만을 걸어온 장서희. 이제 그녀는 <회전목마>로 또 다른 도약을 꿈꾸고 있다. 기대한다. 장서희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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