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가도의 주춧돌인가 장애물인가

팬클럽 권력, 연예계 쥐락펴락
인기가도의 주춧돌인가 장애물인가

한 대형 연예 기획사와 안티 팬들의 사활을 건 듯한 전쟁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안티 팬들은 온라인에 구축한 각종 진지를 통해 비방과 인신공격을 가하고 그것도 성에 차지 않는 듯 안티 팬의 타깃이 되고 있는 가수를 희화화 한 플래시 애니메이션을 유포시키며 전방위 공격을 가하고 있다.

관련 연예 기획사는 오프라인에서 100여명에 가까운 불특정다수의 안티팬들을 집단으로 고소하는 사상 초유의 맞대응으로 초강수 공격에 나섰다. 전쟁에 참전하지 않는 사람들도 양자간의 싸움을 관심 있게 지켜보는 등 이 전쟁은 이제 연예계의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했다.

이 전투의 결과가 어떠한 형태로든 스타 시스템, 아니 대중문화의 새로운 지형도를 그릴 단초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연예 기획사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SM엔터테인먼트와 이 기획사의 소속 가수인 문희준의 안티 팬 집단간의 전쟁이 바로 그것이다.


문희준 인신공격에 기획사 법적대응

양자간의 전쟁 발발은 문희준의 새 앨범 발매를 앞두고 시작됐다. 안티팬들은 문희준의 가창력과 외모 등을 문제 삼아 카페를 비롯한 각종 사이트에 비판의 글을 게재한 데 이어 문희준에 대해 그의 이름을 빗대어 ‘머리 없는 벌레’ 라는 뜻의 ‘무뇌충’운운하며 인신공격을 가했다.

또한 그를 희화화 한 플래시 애니메이션과 합성사진을 게재해 공격의 강도를 높였다. 이에 대해 SM은 문희준을 비방한 100명에 가까운 안티팬들을 명예훼손과 초상권 침해 혐의로 서울 강남경찰서에 고소한데 이어 플래시 애니메이션 제작자도 추가 고소하는 초강수로 맞섰다.

SM의 고소사실이 언론지상을 통해 알려지자 안티 팬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가수 문희준, 기획사서 숨진 채 발견’ 이라는 제목의 자살설까지 인터넷 사이트에 등장했고 안티 팬들은 SM의 사이트를 집중 공격하는 것으로 재반격을 시도하고 있다.

이 전쟁과 관련, 문희준은 최근 안티 팬들의 무자비한 공격에 대해 “안티 팬들의 글을 보고 충격으로 3일 정도를 뜬눈으로 지새운 적이 있습니다. 스트레스 때문에 건강이 악화돼 병원을 다녔으며 심지어 은퇴까지 고려했습니다”라고 자신의 심경을 토로하기에 이르렀다.

분명 이 전쟁은 우리 대중문화에 있어 생산자인 연예인과 함께 중요한 한 축을 형성하는 팬클럽의 현재의 모습과 문제 그리고 나아갈 방향을 동시에 노정 시키고 있다. 바다라는 거대한 생태계의 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플랑크톤이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세하지만 플랑크톤이 없다면 어떠한 바다 생물도 존재할 수 없다.

연예계, 대중문화계에 있어서 플랑크톤은 바로 팬과 팬클럽이다. 팬과 팬클럽이 없다면 결코 스타나 연예인은 존재할 수 없다. 이번 전쟁의 당사자인 SM엔터테인먼트도 조직화된 팬과 팬클럽의 열렬한 지원으로 HOT, SES, 신화, 보아의 성공을 이뤘고 대표적인 연예 기획사로 입지를 굳힐 수 있었다. 이를테면 팬클럽의 최대 수혜자인 셈이다.

팬클럽은 한 사회 내에서 특별한 가치, 지위를 가지는 스타라 할 수 있는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존경이나 숭배를 조직적으로 행하고 스타와의 직접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스타에 대한 지원을 하기 위해 그의 팬들에 의해 형성된 집단을 말한다.

최근 들어 우후죽순처럼 생기는 안티 팬클럽은 특정 스타에 대한 존재의미와 활동을 부정해 스타를 퇴출시키는데 앞장서는 집단들이다. 팬클럽이든 안티 팬클럽이든 공통점은 스타와 스타 시스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1990년대 '조직'갖춘 팬클럽 등장

우리 팬클럽의 역사는 미국과 유럽에 비해 그리 길지 않다. 또한 우리 팬클럽의 역사와 과정, 활동은 대중문화 종주국을 자처하는 미국과 큰 차이가 있다. 1910년대 할리우드 대형 영화사들은 내부에 팬 관리부를 두어 팬클럽이나 팬을 조직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했으며 팬 관리부는 팬클럽을 영화의 고정 수요층으로 활용했을 뿐만 아니라 스타의 인기를 견인하는 홍보기제, 그리고 회비 등을 거둬 스타의 수익창구로 활용했다.

‘스타’의 저자 애드가 모랭은 미국, 영국, 프랑스에서 대중문화 스타의 팬클럽 회원으로 활동하는 사람을 전국민의 5~6%로 추산할 정도로 서구에서는 팬클럽 활동이 보편화했다.

여기에 비해 우리 나라에 팬클럽이 등장한 것은 1980년대 중반이다. 처음 팬클럽은 국내 스타의 팬클럽이 아니었다. 당시 대표적인 영미권 가수들 중심의 팬클럽이었는데 1984년 결성된 비틀즈 팬클럽, 1986년 듀란듀란 팬클럽이 팬클럽의 효시라 할 수 있다. 이때의 팬클럽은 지금의 팬클럽과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이때는 동호회 성격으로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좋아하는 스타의 음악이나 연기를 보면서 정보 교환도 하고 친목을 도모하는 수준이었다. 국내 스타 팬클럽의 효시는 1980년대 후반 만들어진 조용필의 팬클럽이다. 하지만 조용필의 팬클럽은 ‘오빠’가 좋아서 모인 자발적이지만 체계적이지 못한 팬클럽이었다.

10대가 방송, 음반, 영화 등 대중문화 상품의 최대 소비자층으로 떠오르고, 인터넷의 등장, 케이블TV 등 다양한 매체의 탄생, 대중문화와 연예인에 대한 산업적 인식 확산으로 특징 지워지는 1990년대 들면서 팬클럽은 조직적이고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동시에 연예 기획사가 본격적으로 스타의 상품성을 제고하기 위해 팬클럽을 조직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현재 팬클럽은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회원의 90%가 10대들이고 이중 95%가 여학생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1990년대 들어서 수많은 공식(연예 기획사에서 조직하고 공인하는 팬클럽), 비공식 팬클럽이 등장하면서 팬클럽의 활동도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팬클럽은 선호하는 스타의 상품인 음반 및 콘서트, 영화, 드라마 등을 소비함으로서 스타를 탄생시키고 스타의 명성을 유지시키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또한 정기적인 만남이나 회보 발간, 인터넷 사이트 등을 통한 스타의 정보 유통이나 이미지 제고, 여론 선도 등의 방법으로 스타의 상품성을 배가시키기도 한다.

팬클럽의 활동 여하에 따라 무명이나 신인이 일약 스타로 부상하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연예 기획사는 팬클럽을 자사 소속 연예인의 대중성 확보와 수입의 극대화를 위한 전지기지로 철저하게 활용하고 있다. 심지어 다른 스타의 팬클럽을 활용해 신인이나 무명을 띄우는 전략까지 구사하고 있다. SM이 신화의 대중성을 높이기 위해 HOT의 팬클럽을 활용한 것이 대표적인 경우다.


팬클럽간 대립·갈등도 문제

하지만 팬클럽의 기능과 활동이 스타 시스템에 순기능만 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들어 연예인과 연예문화, 그리고 연예 기획사의 문제점이 상당 부분 팬클럽에 의해 조장되거나 심화되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만이 최고이고 유일하다는 스타에 대한 맹목적인 숭배주의가 잘못된 스타문화를 고착화시키는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스타에 대한 건강한 비판을 하는 게 아니라 라이벌 스타에 대한 무차별적이고 반이성적인 공격을 가하는가 하면 자살설까지 퍼트리는 등 악의적인 루머를 유통시키는 식의 잘못된 행태를 보이고 있다. 실제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행해지고 있는 팬클럽간의 대립이나 갈등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일부 팬클럽이 연예 기획사의 상업적인 논리와 전략에 따라 움직이며 팬클럽의 회원들이 기획사의 단순한 이윤창출 도구로 전락되는 것은 가장 큰 문제이다. 일부 언론사 기자들이 유명 가수에 대한 비판 기사를 쓴 뒤 장기간 팬클럽 회원들에게 시달리다 정도가 지나쳐 사이버 수사대에 수사를 의뢰한 적이 있다.

수사결과 일부 회원은 기획사의 지시에 따라 집단적인 항의와 전화공세를 퍼부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것은 기획사의 이윤창출 도구로 전락한 팬클럽의 폐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밖에 특정 팬클럽 집단은 권력화 해 무리한 집단행동을 일삼고 대중매체와 각종 기관에 물리력을 동원해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려는 것도 요즘 팬클럽이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다. 가수 강타가 음주운전으로 입건된 경찰서에 강타는 잘못이 없다며 항의 메일을 무차별적으로 보내 경찰서 컴퓨터 서버를 다운시키는가 하면 병역기피 의혹을 받아온 유승준에 대해 입국불허조치를 내린 법무부와 병무청에 사이버 테러에 가까운 비난을 퍼붓는 것 등이 비이성적 행동들의 전형이다.

스타 문화가 건강하게 자리잡으려면 반드시 팬클럽의 문화가 건강해야한다. 최근의 문희준을 둘러싼 일련의 팬클럽과 기획사간의 전쟁은 기획사와 팬클럽, 그리고 스타가 오늘의 瑙Х느?문제점을 진지하게 고민해?할 때임을 절감시켜준다. 그 고민의 성찰 결과에 따라 팬클럽이 진정한 스타 시스템의 주춧돌로 자리잡느냐 아니면 스타 문화의 저해요인으로 작용하느냐가 결정될 것이다.

배국남 대중문화평론가


입력시간 : 2003-10-06 10:24


배국남 대중문화평론가 knbae2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