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 풀 우리나무] 서양등골나물


서양등골나물을 우리 풀, 우리 나무에 소개하는 것이 적합할까를 두고 잠시 생각했지만 이땅에 살고 있는 풀들은 곱든 싫든 알아야 한다는 것이 평소의 생각이어서 골랐다. 이미 이름을 보고 짐작이 되셨을 터이지만 서양등골나물은 고향이 우리나라인 자생식물이 아니다. 원래 고향은 북아메리카 대륙이었다.

하지만 몇 십 년 전 우리나라에 들어와 뿌리를 내리고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며 퍼져나가고 있는 귀화식물이 되었다. 좁은 의미로 보면 우리 풀이라고 할 수 없지만 넓은 의미로 보면 우리 식물의 범주에 넣기도 한다. 달맞이꽃을 정서적으로 우리 꽃이라고 생각한다면 서양등골나물도 같은 처지이다.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봉선화나 채송화, 맨드라미 같은 풀들은 누가 심지 않으면 스스로의 힘으로 퍼져나가지 못하니 귀화식물의 범주에 조차 들지 못한다. 더 멀리 두고 생각한다면 정말로 정다운 냉이 같은 식물은 몇 십 년이 아닌 몇 백 년 전에 밭에 심는 농작물과 함께 들어 온 것이니 그 당시에는 이도 우리 선조들에게는 서양등골나물처럼 낯선 식물일 수 있겠다 싶다.

하지만 서양등골나물의 경우는 대우가 좀 다르다. 많은 이들이 귀화식물을 경계하고 거리감을 두는 정도가 아니라, 생태계 위해 동식물로 지정되어 있는 몇 안 되는 식물의 하나이니 말이다. 귀화식물이 지천이면서도 하나의 중요한 특성 중에 하나는 사람들이 파괴하지 않은 울창한 숲에는 즉 우리 고유의 자연식생에는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고 햇볕이 잘 드는 나대지나 길가에 자란다는 점이다.

도심에서는 자생식물보다 더 흔한 편이어서 크게 위협적으로 느껴지지만 실제로 자연에 미치는 영향들은 생각보다는 좀 덜 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서양등골나물은 숲 속으로 들어간다는 점 때문에 심각하게 문제가 된다. 더욱이 이 식물의 고향에서는 소들을 키우는 목초지에서는 소의 우유에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어 요주의 식물로 구분되기도 한다. 물론 아직까지 우리나라엔 목장에서 발견된 예도 없고 요즈음은 우유를 모두 살균하니 그럴 걱정은 없다.

서양등골나물이 재미있는 것은 그 분포의 중심이 서울이라는 점이다. 지금부터 가을까지 남산을 걷거나 올림픽 공원 같은 곳을 거닐다가 하얀 꽃들이 숲에서 무리지어 온통 덮고 있다면 십중팔구는 이 풀이다. 웃지 못할 일이지만 한때 이 식물이 높은 분이 사는 곳에 들어왔는데 그 모습이 하도 고와 모아 심은 적도 있었다고 한다. 몇 년 전까지 서울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던 서양등골나물은 이제 부천, 하남, 성남 같은 근처까지 나가 있다. 조심해야지. 무조건 풀들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의 숲 속을 차지하는 이 풀은 분명 경계할 일이다.

이 풀은 국화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며 지금쯤부터 꽃이 피기 시작한다. 보통 무릎 높이쯤 자라고 더 크면 허리를 넘기도 한다. 자잔한 꽃송이들이 가득 모여 달리므로 이 풀이 자라는 곳은 눈이 온 듯 온통 희고 선입견만 없다면 아름답다고 느껴진다. 뿌리가 흰 뱀처럼 생겼다고 하여 서양에서는 White snake root 라고 부르고, 우리말 중에도 사근초라는 이름이 있다.

언제나 식물에 대한 칭찬을 하다가 함부로 흉을 보는 듯해서 마음에 좀 걸린다. 난 아직도 나라를 넘어서 식물을 보는 거시적인 안목의 큰 그릇은 아닌 듯 하다. 어느 학교에선 학생들의 봉사시간에 남산의 서양등골나물을 뽑아내는 일을 했다고 한다. 하려면 열매 맺기 전 지금부터 하는 것이 좋다. 남산의 자연을 되찾아 주기 위한 제대로 된 봉사활동이 아니었나 싶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입력시간 : 2003-10-06 11:50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