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주'는 나를 찾아가는 본능'애마' 몰고 미 8개주 관통 대장정 "할리는 내게 문화"

[인물탐구] 이계웅 할리 데이비슨 코리아 사장
'질주'는 나를 찾아가는 본능
'애마' 몰고 미 8개주 관통 대장정 "할리는 내게 문화"


"질주 본능은 인간내면에 품고 있는 자유의 갈망인 동시에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으려는 도전이다." 이계웅(43) (주)할리 데이비슨 코리아(HDK)사장은 '라이더(rider)'다. 어릴 적부터 그랬다.

1960년대 초 고향 대전에서 실 도매상을 하던 아버지의 혼다 오토바이에서 풍기는 휘발유 냄새 속에 헬멧과 함께 걸음마를 시작했다. 그는 일찍이 배운 두발 자전거를 타고 대전 전역을 돌며 무조건 달리는 것에 심취했다. 고교생활을 남미볼리비아에서 보낸 그의 10대는 본격적인 질주시대를 열었다. 주말이면 물과 빵만을 허리에 차고 오토바이를 몰아 안덱스 산맥을 넘어 페루국경지역까지 내달리며 자유를 만끽 했다.

그리고 3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 사장은 지난달 세게 최대의 모터사이클 제조업체인 할리 데이비슨 창립 100주년을 맞아 열린 꿈의 대장정 '라이드 홈(The Ride Home)' 행사에 참가했다. 그는 한국에서 공수한 자신의 애마 '할리'를 몰고 미국 몬타나주를 출발, 유타와 콜로라도 등 8개 주를 관통해 할리 데이비슨의 홈 타운 밀워키까지 12일만에 횡단했다.


할리의 철학은 자유

이 사장은 시가 3,750만원대의 할리 데이브슨 모터사이클을 명품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오히려 '문화와 철학'이라고 말한다. 브랜드 명을 자신의 몸에 문신을 할 정도는 오직 '할리'뿐일 테니까.

그는 할리의 철학을 자유라고 말한다. "'할리'는 단순히 타는 제품이라기 보단 일상생활의 틀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을 실현시키는 매개체죠."

사실 요즘은 택배 서비스 오토바이 말고도 고가의 모터사이클을 즐기는 사람들이 눈에 띌 만큼 늘었다.진정한 자기를 찾고 욕망 때문에 오토바이를 찾는 사람이 그만큼 늘어난 것. '할리' 특유의 문화와 자유를 누르는 '할리 오너'들의 모임인 '국내 호그(H.O.G.) 회원만 벌써 1,000여명을 넘어섰다. 평균 나이 38.3세로 기업 오너와 전문 경영인, 중소 자영업자, 사진작가, 연예인 등 감성을 중요시 여기는 모터사이클 마니아들이 모임에 참여하고 있.

재벌 2세로는 박정원 두산상사빚 사장과 정용진 신세계 전무 등을 꼽을 수 있다. 여성 마니아도 10여명이나 된다. 1년에 2번 공식모임을 갖는 호그는 10월2일부터 2박3일간 안면도 에서 랠리와 야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 사장이 '할리'에 빠지게 된 것은 인생의 목표를 단지 타는 것 이상으로 정하면서부터 였다. 아버지가 타던 '할리'를 물려받아 출퇴근을 모터사이클로 하던 그는 나이 40을 앞두고 혼자 긴긴 생각에 빠졌다.

"남자가 불혹이면 자신의 목숨을 걸도 해야 할 일이 있어야 한다"고 그는 믿었다. 이젠 인생에서 정확하게 방향키를 잡아야 할 때 왔다는 생각이었다. 1996년의 일이었다.

장고 끝에 나온 결론이 오토바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더라도 오토바이 부문에서는 결코 남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돌했다. (주)대우 섬유사업부의 멕시코 법인에서 근무하던 그는 미국 할리 데이비슨 본사에 국내사업 제안서를 제출했다. 신규 사업으로 세계 최고의 모터사이클을 수입, 판매하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너무 장밋빛 기대였을까. 야속하게도 1년간은 할리 데이비슨 본사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그는 한국의 경제상황과 시장 변화 등을 월례 보고서로 작성해 할리 본사에 꾸준히 제출했다. 마치 할리 한국지사인 양 스스로 일을 만들어 매달렸다.

2년이 지난 98년 10월.마침내 할리측에서 첫 회신이 날아왔다. 전반적인 한국시장 전망과 사업계획 등 5가지 질문이 들어있다. 손꼽아 기다리며 사업 구상에 골몰했던 이사장은 평소 생각하던 내용을 A4용지 60장에 꽉 채워 답변서를 제출했다. 외환위기의 여파오 어려움을 겪고 있던 시절이라 (주)대우 내부에선 신규사업으로 '할리'수입 판매에 대해 비活岵?시각이 지배적이었다.

BMW 등 수입차 시장도 꽁꽁 얼어붙은 상황에서 고가 모터사이클 판매는 어불성설이라는 표정이었다. "누가 IMF 시대에 한 대 3,500만원짜리 오토바이를 사겠느냐"며 모두 냉소적인 반응이었지만 이 사장만은 "4,500만명 중에 스피드 광인 오토바이 마니아들을 골라 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사업계약을 밀어붙였다.

우여곡절끝에 대우 모토사이클 수입 사업부로 출발할 할리 데이비슨 코리아는 마침내 99년 4월 닻을 올렸다.


할리 100주년, 100억원 매출 목표

현실은 그의 노력을 배신하지 않았다. 출범 첫 해 65대 판매를 목표로 세웠는데, 놀랍게도 반년 만에 90대 판매라는 기록을 세웠다. IMF 체제를 극복하면서 경기 회복과 함께 마니아들의 '질주 본능'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사실 사업을 시작하면서 한국에 '할리'를 탈 사람들이 과연 몇 명 있을까 걱정도 많이 했어요. 그러나 기우였다는 걸 금세 깨닫게 됐죠. 이미 한국에는 할리 데이비슨 마니아가 존재하고 있었던 거지요.. 다만 그 억눌린 욕구를 충족시켜 줄 만한 매개체가 없었던 것 뿐이었습니다."

할리 데이비슨 코리아는 99년부터 매년 10억원 이상. 평균 25% 이상의 높은 판매 성장률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총 289대의 모터사이클을 판매했다. 지난 89월 대구지점을 오픈한 할리 데이비슨 코리아는 올해 100주년 기념 모델을 출시해 100억원 매출은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 자동차 분과위원회 공동의장직을 맡고 있는 이 사장은 "우리나라의 이륜차에 대한 교통법규 등 각종 제반사항과 제도들은 후진국 수준에 머물고 있다"며 "앞으로 이 점들을 보완 수정할 수 있도록 정부에 건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륜차 박물관을 건립하는 게 꿈"이라며 "박물관 개관에 앞서 제대로 된 이륜차 정비 교육 센터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장학만 기자


입력시간 : 2003-10-06 13:54


장학만 기자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