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악, 그리고 형제애로 비틀어 본 세상
[시네마 타운] 오! 브라더스 선과 악, 그리고 형제애로 비틀어 본 세상
추석 극장가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흥행 선두를 달리고 있는 <오! 브라더스>는 서로 판이하게 다른 형제를 다룬 일련의 영화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자폐증을 앓고 있는 형 레이먼(더스틴 호프만)과 동생 찰리(탐 크루즈)의 이야기를 담은 <레인 맨>(1988)과 유전자 실험을 통해 전혀 다른 신체 조건을 가지고 태어난 쌍둥이 형제에 관한 코미디 <트윈스>(1989), 그리고 형제는 아니지만 다운 증후군을 앓고 있는 조지(파스칼 뒤켄)를 통해 자신과 가족을 위한 여유를 발견하는 사업가 헨리(다니엘 오테이유)의 <제8요일>(1996) 등이 영화 장면 사이사이에 스쳐지나간다. 아버지와 연락을 끊고 산지가 10년이 넘은 형이 아버지의 죽음과 동시에 돈 문제로 인해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던 동생을 찾게 된다는 것과 찾은 동생이 병을 앓고 있다는 설정은 <레인 맨>의 시작과 비슷하고, 비록 엄마가 다르긴 하지만 형제는 웃음을 자아낼만큼 서로 닮지 않았다는 것은 <트윈스>와 유사하다. 또한 나이도 어리고 병에 걸린 동생을 통해 각박하게 살아온 형이 가족과 타인에 대한 애정과 배려를 갖게 된다는 휴머니즘은 <제8요일>의 핵심과 비슷하다. 하지만 <오! 브라더스>에는 조로증에 걸린 12살 오봉구(이범수)의 익살과 재치가 있고, 상우(이정재)의 주변에는 실소를 자아내게 만드는 인물들이 포진해 있다. 빚을 갚지 않으려고 갖은 협박(?)을 일삼는 룸살롱 홍사장(이원종), 봉구에게 뒷돈을 요구하는 잔인한 정반장(이문식), 상우가 일하는 흥신소 사장(박영규)은 봉구와 더불어 폭소를 자아내게 만든다. 조폭 코미디를 연상시키는 오씨 형제 이야기가 후반부에 이르면 그들 아버지와 의뢰인의 아버지의 자식에 대한 감동적인 사랑이 눈물샘을 자극한다. 불륜 사진을 찍고 협박해 돈을 갈취하며 살아가는 오상우(이정재)는 태평스러운 겉모습과는 달리 어릴 적 아버지의 불륜과 어머니의 죽음으로 상처 받은 마음을 감추고 살아간다. 돈 때문에 할 수 없이 같이 지내게 된 봉구가 못마땅해 매정하게 대하지만, 외모와는 달리 천진난만한 하고 마음이 따뜻한 동생을 통해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연다. 어떻게 보면 순수하고 착한 마음을 가진 소년이 타락한 어른을 교화한다는 평범한 얘기인데, <오! 브라더스>의 강점은 이 평범한 이야기를 약간 비틀어 창의적인 코미디를 만들어내는데 있다. 여기서 가장 기본적인 코미디의 출발점은 여리게 보여야 할 그 착한 소년의 외모에 있다. 30대의 마약중독 조폭처럼 보이는 봉구의 겉모습은 소년의 철부지 같은 행동과 발언을 무시무시한 위협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예를 들어, 흥신소 사장이 상우가 받아내야 할 채무에 대해 말하다가 시체와 포크레인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전혀 그 살벌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봉구는 아무렇지도 않은 어투로 그 이야기를 채무자에게 반복한다. “시체를 묻을 때 말이예요, 포크레인으로 3미터 안 묻고 그냥 대충 묻으면 파리가 귀신처럼 알고 그 위에 꼬여요. 이게 무슨 뜻이게~~요? 재미는 바로 12살의 아이가 뜻도 모르고 하는 말에 겁을 먹고 덜덜 떠는 강인한(?) 어른들의 당황한 얼굴과 표정을 보는 것이다.
또한 조숙한 사춘기 소년의 성적 호기심을 추파로 받아들이는 룸살롱 어른들과 조로증에 겹친 당뇨병 때문에 팔에 인슐린을 주사하는 모습을 어두운 세계의 어른들은 모두 마약을 서슴없이 하는 무서운 사람으로 오해하는 것이다. 하긴 출발부터 형제에게는 오해가 꼬리를 물고 다녔다. 처음 봉구를 여관에 버리려다가 다시 돌아온 형를 붙잡고 봉구는 울먹이며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고 엉엉운다. 이를 지켜보는 게이커플은 이들을 감동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자신들도 헤어지지 말자고 다짐한다. 형제애를 내세우는 이 영화가 최근 한국영화의 흐름과 함께하고 있는 지점은 봉구가 합류?상우?생활이 ‘조폭’ 세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상우는 불륜사진만 찍는 것이 아니라 폭행이 빠질 수 없는 다른 일들도 하고 있고 그 와중에 조폭보다 더 조폭같은 정반장의 협박을 받는다. 정반장은 영화에서 처벌되어야하는 ‘악’으로 그려지지만 그가 보여주는 행동은 꼭 나쁘게만 그려지지 않았던 이전의 조폭들과 흡사하다. 상우가 봉구에게 형이라는 말을 하지 말라고 했을 때 서자의 슬픔을 경험했다는 듯 조반장은 왜 호형호제를 못하게 하냐면서 상우를 나무란다. 영화 중반까지 상우가 정반장의 요구에 응하는 것이 그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는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묘사되지만 후반부로 가면 봉구의 시선을 통해 정반장은 폭악한 인물로 처벌되는 것이 당연하게 그려진다. 그리고 형을 구하려고 하는 봉구를 통해 상우는 스스로를 구원한다. 이런 과정에서 한가지 의아스러웠던 부분은 봉구에 대한 상우의 상습적인 구타를 코미디로, 반면 조반장의 광기적 폭력을 공포로 묘사하고 있는 점이다. 상우는 자신보다 강한 사람들 앞에서는 고분고분하지만 유독 봉구에게, 그리고 동업자이며 친구인 허기태(류승수)에게는 지배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폭력의 위계질서에 철저하게 순응하는 전형적 인물이 상우인데, 만약 상우가 조반장의 폭력에서 벗어나기위해 강한 의지를 보여줬다면 왜 봉구는 그런 형의 습관적 폭력에 별로 저항하지 않는 것일까? 형이 동생을 끊임없이 쥐어박는 것도 형제애의 일부로 받아들여지는걸까? 그 정도는 한국식 코미디의 필수조건인가? 마지막에 상우가 새로 사업을 시작하는 날 기태는 상우의 볼을 한 대 때리며 좀 어색하게 서로 웃는다. 이제 상우는 때리기만 하던 친구에게 맞기도 하면서 동등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의미? 이게 바로 “언니들은 모르는 오빠들의 세계!”인가 보다.
입력시간 : 2003-10-06 15:12
|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