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나미의 홀인원] 시험에 들지 말지어다


태풍 ‘매미’가 지나가고 화창한 날씨에서 라운드를 하던 도중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같이 골프를 쳤던 멤버 중에 한 사람이 해줬는데 결론을 먼저 말하면 ‘시험에 들지 마옵소서’라는 내용이다.

골프를 치면서 내기를 하다 보면 순간 순간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 예를 들면 비가 온 다음날에는 잔디가 질퍽거린다는 핑계를 하며 드롭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장소에서 버젓이 드롭을 하거나 디보트에 떨어진 볼을 클럽으로 살짝 밀어 좋은 자리로 옮겨 놓는다.

벙커에서도 공공연하게 클럽을 모래 위에 놓기 일쑤다. 러프나 산속에 볼이 날아가 본의 아니게 등산(?)을 하게 되면 볼을 좋은 자리에 움직여 놓고 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일련의 행동은 자기 스스로를 시험에 들게 하는 행동이다.

이런 좋지 못한 버릇은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한번 이런 유혹에 빠지면 습관이 돼 고치기가 힘들다. 한번 유혹에 빠져 좋은 샷을 치게 되면 다음에 그런 상황이 돌아오면 또 하게 된다. 안 하고 정상적으로 치면 본인이 손해를 보는 느낌마저 들게 된다.

하지만 이런 버릇이 몸에 배면 창피를 당할 때가 있다. 아마 골퍼 S씨는 어프로치를 할 때마다 볼의 위치를 좋은 곳에 옮겨 놓는 습관이 있다. 볼의 위치가 좋은데도 한번은 클럽으로 볼을 슬쩍 건드려 본다. 그런 행동을 안 하면 왠지 불안하게 느껴질 만큼 습관이 된 것이다.

어느날 친구인 A씨와 팽팽한 신경전을 치르던 S씨는 자신도 모르게 볼을 건드리는 습관(?)이 튀어 나왔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친구와 다른 일행들이 뒤에서 그 광경을 목격했다. S씨가 친 볼은 온 그린이 됐지만 S씨는 그 때부터 죄책감과 창피함 때문에 두고두고 나머지 홀까지 흔들렸다. 이들은 S씨의 행동에 대해 직접 이의를 제기하진 않았지만, 그 이후 분위기가 썰렁해 졌다. S씨는 이 일을 계기로 친구도 잃고, 신뢰까지도 잃었다. ‘뒤에 아무도 없겠지’ 하고 무심코 한 행동이 개인적인 신뢰에까지 손상시킨 것이다.

프로인 필자도 몇 번의 시험에 든 적이 있다. 그것도 정식 경기 도중에.

솔직히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이번만 잘 넘어가면 나머지 홀도 잘 할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 때문에 갈등 하게 된다.

경기를 하다가 ‘여태 이 홀까지 잘 버텨 왔는데 이 볼 하나 때문에. 점수가 내일, 모레까지 선두에 들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느꼈던 적도 있었다.

물론 그런 유혹을 뿌리치고 경기를 끝냈던 기억이 있지만 뒤돌아 생각하면 그 때 참 잘 했다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그 때 시험에 들어 슬쩍 볼을 옮겨 놓고 우승이나 했었더라면 그런 아픈 기억이 평생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예전에 박세리 선수가 주니어 시절 퍼팅 어드레스 때 볼을 살짝 건드렸다며 스코어 카드를 제출하기 전에 양심 선언을 한 적이 있다. 스스로 벌타를 부과 받아야 한다고 경기 위원장에게 말한 것이었다.

그 때 박세리는 우승 대기조 선수였다. 한 타에 따라 우승이냐 아니냐가 갈리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그의 말은 더 충격적이었다. 한 타로 인해 우승을 놓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박세리는 벌타로 먹었고, 결국 2위를 했다. 하지만 시상식 장에선 우승자보다 더 많은 박수를 받았다.

골프는 양심의 운동이다. 어쩌면 매 홀 양심과의 싸움일 수도 있다. 시험에 드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참된 골퍼가 될 수 있다. 간혹 ‘우린 아마추어인데 어때’ 하고 룰을 어기는 골퍼들이 있다. 골프를 하면서 느끼는 진정한 기쁨은 ‘정해진 규칙을 지키며 수시로 부딪치는 난관을 극복하는 재미’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일반적으로 14개의 골프 클럽을 가지고 다니는데 앞으로는 15개를 가지고 다닌다고 생각하자. 그 중 하나는 ‘내 마음의 양심의 클럽’으로.

박나미


입력시간 : 2003-10-06 18:39


박나미 nami862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