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 훤하게 삽시다] 맛있는 잠


잠이 보약이라고 한다. 자기 몸을 위해 보약 한 첩 쓸 여유가 없고, 운동을 하자니 시간이 없고, 직장과 집에서 매일 스트레스를 받고, 피할 수 없는 술자리는 많고, 여기서 쫓기고 저기에 쫓기는 우리의 평균적인 삶에서 자기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이 아마도 푹 자두는 것이리라. 한숨 푹 잘 자고 일어난 상쾌함은 무엇과도 비할 수 없다.

잠의 깊이에는 여러 단계가 있어 깊어졌다가 얕아졌다가를 매 90분에서 100분마다 반복하여 하루 밤에 대략 4~6회 반복하게 된다. 수면이 깊어질수록 심장도 천천히 뛰고, 혈압도 떨어지며 호흡도 깊고 고르게 변한다. 평온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 때는 깨워도 잘 일어나지 않는다.

반대로 꿈을 꾸는 순간은 아주 얕은 수면상태로, 깨어나기도 쉽고 깨어나서 꿈을 기억하기도 한다. 수면시간이 길어질수록 깊은 잠이 많아지기 보다는 얕은 잠이 더 길어져서 깊은 잠이 차지하는 비율이 줄어들게 된다. 밤새도록 꿈을 꾼 것 같은 날도 있지만, 꿈을 꾸는 시간은 전체 잠자는 시간의 1/5에 불과하다.

잠은 왜 필요할까? 현대의학은 돼지꿈이나 태몽 등 꿈의 예언적 기능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아마도 꿈을 꾸는 주변의 정황들이 꿈에 반영되어 좋은 또는 나쁜 내용이 담긴 꿈을 꾸게 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어른들은 ‘아이들은 푹 자야 잘 커진다’고 말씀하시는데 실제로 잠자는 동안 감각과 운동능력이 발달하고 체단백질 합성이 증가한다.

또 수면은 기억과 학습에 매우 중요하여 잠을 자는 동안 새로운 경험이 통합되어 머릿 속에 가지고 있는 정보의 재구성이 일어난다. 여러 날 동안 잠을 재우지 않으면 피곤하고 불안해지며 무기력해지고 외부자극에 대해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게 된다. 수면박탈이 계속되면 환시와 환각까지 나타난다고 한다.

어느 정도의 수면이 적절할까? 대한민국 성인의 약 반수 정도는 6시간 이하로 자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세상이 빨리 변하므로 잠자는 시간을 아껴서 습득해야 하는 정보도 많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강을 위해서는 하루 7~8시간 정도의 수면이 좋다. 하루 4시간 이하로 수면하는 경우는 6년 사망률이 3배 정도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고, 반대로 10시간 이상 수면하는 경우도 2배 정도 사망률이 높아진다. 세계 각국 장수 인들의 공통적인 특징 하나가 하루 7~8시간의 규칙적인 수면이다.

학창시절이야 버스 손잡이를 잡고 서서도 잠을 잤건만 나이가 들면 수면의 질이 떨어져서 깊게 푹 자고 일어나는 것이 어려워진다. 어쩌다 작은 소리에 잠이 깨면 이런저런 걱정, 그리고 잠을 제대로 못자면 내일 일에 지장이 있을 텐데 하는 걱정까지 더해져서 정말로 잠이 들기 어렵게 된다.

잠과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

첫째, 일정한 시간에 자고 일어나는 것이다. 특히 매일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뒤척이다가 늦게 잠이 들었다고 늦게 일어나면 다음날 밤에 잠이 안 와서 다시 뒤척이는 악순환을 밟게 된다. 주말이나 공휴일에 일주일간의 수면부족을 채워보겠다는 욕심으로 하루 종일 자거나 잠자리에서 쉬는 것도 피하는 것이 좋다.

다음날 잠이 안 와서 고생할 수 있고 출근이 더 피곤하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젊었을 때는 사흘 밤을 새도 거뜬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하루라도 잠을 설치게 되면 회복되는데 3배의 시간이 걸린다.

둘째, 자기 전에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면 하루 중 피부에 쌓인 노폐물을 씻어내는 효과와 함께 몸과 마음을 이완시키는 효과도 있다. 작업할 때 작업복이 필요하듯이, 잠 잘 때도 복장의 준비가 필요한데, 넉넉하고 통기 잘 되는 면 잠옷이 좋다.

셋째, 하루 중 적절한 신체 활동이 필요하다. 너무 한 일이 없는 날도 잠이 오지 않지만 너무 피곤한 날도 쉽게 잠드는 것이 어렵다. 나이가 들수록 수면과 신체활동의 관계가 더 긴밀해지므로 건강이 허락하는 적당한 활동과 교제가 더욱 더 필요해진다. 노인들의 경우는 매일 오후에 걷기 운동을 하면 숙면에 도움이 된다. 취침 전의 과격한 운동은 잠이 달아나게 하므로 오전이나 이른 오후에 하는 규칙적인 운동이 좋다.

넷째, 너무 배가 부르거나 고파도 잠이 잘 안 오므로 취침 전 따뜻한 우유 한잔 등의 가벼운 군것질을 한다. 담배나 커피, 녹차 등 카페인이나 니코틴이 들어있는 기호식품은 두뇌활동을 자극하여 숙면을 방해하므로 피하는 것이 좋다. 카페인에 예민한 분들은 초콜릿이나 콜라, 코코아도 먹지 않는다. 과음을 하고 잠이 들면 목도 마르고, 화장실도 가게 되므로 자주 깨어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다섯? 낮잠이 건강에 좋다는 의견도 있고, 그렇지 않다는 의견도 있는데 정도의 문제이다. 너무 졸리울 때 몇 분 자고 일어나는 것은 좋지만, 별로 할일이 없기 때문에 선잠을 청하는 경우나 꿈을 꿀 정도로 길게 자는 것은 좋지 않다.

여섯째, 걱정거리를 침실로 가져가지 않는 것이 좋다. 누워서 밤새도록 걱정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숙면에 문제가 생기면 원인을 진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울증이나 정신분열증, 불안 신경증 등 많은 정신과적인 질환의 초기증상이 수면장애로 나타나는 경우가 적지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별한 원인이 없는 수면장애가 대부분이다. 이 때는 수면제한 치료, 자극조절 치료, 바이오피드백과 이완요법, 약물치료 등을 실시한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앞에서 설명한 바람직한 수면습관을 지키는 것이다.

박현아 가정의학 전문의


입력시간 : 2003-10-06 18:40


박현아 가정의학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