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관계로 그린 고품격 에로티시즘, 조선시대 장신구 등 볼거리 풍성

[시네마 타운]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
삼각관계로 그린 고품격 에로티시즘, 조선시대 장신구 등 볼거리 풍성

<스캔들>의 원작은 1782년에 발표된 쇼데를로 드 라클로의 소설 <위험한 관계ㆍLes Liasons Dangereuses>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그 소설을 크리스토퍼 햄튼이 각색해서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한 같은 제목의 연극을 영화로 만든 스테판 프리어스 감독의 <위험한 관계ㆍDangerous Liaisons>(1988)가 <스캔들>의 원작이라고 보는 게 더 적절하다. 1998년 이전과 이후에도 몇 번 더 영화로 각색한 작품들이 있었지만 글렌 글로즈의 우아하면서도 사악한 메르떼이유 부인과 존 말코비치의 냉혹하면서 유혹적인 발몽은 각색된 영화들 중에서 원작에 충실하며 이 작품을 전세계적으로 알리게 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

이재용 감독의 세번째 장편 <스캔들>은 “위험한 관계”를 다룬 수많은 각색작품 중에서 원작에 형식적으로 충실하기 보다는(서구의 작품들이 거의 18세기 후반 프랑스라는 원작의 지역과 시기를 배경으로 했다) 원작의 뼈대만 빌려와 한국적 맥락에서 새로운 러브스토리를 빚어낸다.

배용준의 조원과 그의 형수 조씨부인 이미숙 그리고 전도연의 숙부인은 지금까지 다양한 각색작품에서 봤던 인물들과 비교해서 반복적이거나 진부하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고, 18세기 후반 정조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미지와 스토리는 앞에 언급했던 작품들의 번안이라는 사실을 금새 잊어버리게 만든다.

달리 말하면 <스캔들>은 같은 이야기가 전혀 다른 사회적 역사적 맥락을 통해 탈바꿈해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하는 번안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대만의 소설가 황춘명의 단편소설을 번안한 박광수 감독의 <칠수와 만수>(1988) 이후로 어댑테이션의 묘미를 보여주는 드문 작품이다.


시각적 아름다움: 배경, 소품, 인물

<스캔들>에서 가장 먼저 주목을 끄는 것은 다름아닌 미장센(화면에 있는 모든 장치를 뜻하는 불어)의 아름다움이다.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2000)과 <취화선>(2002)에서 엿볼 수 있었던 조선시대의 조형미는 <스캔들>에서 의상과 화장, 헤어스타일과 다양한 장신구를 통해 더욱 빛을 발한다.

단지 <스캔들>의 내용이 사랑에 관해 다양한 생각과 방식을 가진 인물들의 사적인 얘기인 만큼, 영화에서 보여지는 시각적 아름다움 또한 계절의 변화에 따른 광활한 대지의 자연미보다 각 인물들의 개인적인 공간, 예를 들어 숙부인의 처소나 조씨부인의 내당인 부용정의 방안과 뜰과 연못이 보이는 마루, 그리고 조원이 수많은 처자와 잠자리를 하고 그 내용을 그림으로 그리는 방안들이다.

그러나 어떤 배경과 소품의 아름다움보다 더 돋보이는 것은 인물들의 매력이다. 특히 조씨부인역의 이미숙은 지금까지 보여준 어떤 모습보다도 더 매혹적으로 스크린을 장악한다. 화사한 피부에 도드라진 붉은 입술, 호화스러운 장식이 드리워진 가체, 화려한 색채의 한복과 하얀 버선을 약간 내비친 자태는 우아한 외모와 뛰어난 두뇌를 지닌 저항할 수 없는 여성으로서 한국적 요부를 그려낸다.

마치 장만옥이 왕가위의 <동사서독>에서 이전에는 찾아 볼 수 없었던 그녀의 고혹적인 얼굴을 만들어냈던 것처럼 이미숙은 조씨부인을 통해 화려하지만 우아하고, 차가운 듯 하지만 정열적인 모습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반면 숙부인이라는 캐릭터는 지고지순한 지조의 여성인 것처럼 그녀의 차림새는 무채색의 한복과 장식이 배제된 청초함이다. 그러나 화장기없는 얼굴의 처연한 표정은 조원과 사랑에 빠지면서 행복한 미소로 변해가고 조원의 선물인 붉은색 목도리는 그녀의 단아한 옷차림과 강한 대조를 이룬다.

공식적으로 일부일처제의 유교질서가 지배하던 조선에서 당연히 성은 밀폐되고 은밀한 공간 안에서만 가능한 일이었기에 인물들이 놓여진 공간 또한 이들의 침실 혹은 밖이더라도 가마 안일 수 밖에 없다. 사적인 공간의 사적인 이야기인 <스캔들>은 곧 여성적 공간과 여성성에 대한 이야기이며, 그 비밀스러운 게임의 주인공은 단연 여성(조씨부인)이다.


여성적 공간과 여성성, 그리고 사랑

. 과거에 급제했지만 관직을 버리고 시서화의 풍류를 즐긴다는 것 뿐만 아니라 후반부에 등장하는 대표적 사대부 남성집단의 외모와도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당시 사대부가의 남성으로서 꼭 해야만 하는 관직과 재혼을 멀리하고 단지 ‘연애’(비록 짧고 육체적이지만)에만 몰두한다는 점도 현대적 시각에서 보더라도 흔히 여성적이라고 판단되는 성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조씨부인의 행실에 대해서는 무참한 처벌을 하려고 하는 조씨 어른들은 룸펜으로 살고 있는 조원을 꾸짖지 않는다.

또한 그들이 조씨부인의 처벌의 증거로 삼는 춘화에 조원이 등장하는 데도 그가 가문을 욕되게 한 것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조원은 조선의 유교적 신분사회에서 가문의 명성과 부가 제공하는 권력과 남성의 기득권을 누리며 여성적 영역을 넘나들 수 있는 자유를 누린 인물이며, 동시에 남성의 영역에서 제외된, 그래서 어찌 보면 그 세계에서 영원히 살 수 없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전까지 우리 영화나 텔레비전에 등장한 조선시대의 생활상에서 여성이 화장을 하고 머리를 매만지는 모습을 <스캔들>만큼 섬세하게 여성성의 일환으로 다룬 작품은 없었다. 의례 조선 시대의 여성은 남성사회의 장식물이나 혹은 남성을 위해 희생하는 인물로만 등장했을 뿐이지 자신의 아름다움을 위해 몸을 가꾸고 그 아름다움을 자신감 있게 여기는 여성은 극히 드물었다. 조씨부인은 단연 그런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 주목할만한 인물이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조씨부인이 엔딩을 제외하고 모든 장면에서 집 안에만 있지만 숙부인은 이모댁인 한양에서도 천주교 활동이나 책을 사기위해 종종 집 밖을 다니기도 하고, 시댁인 강화에 내려가서도 바깥 외출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씨부인이 내당에 갇힌 채 모든 음모를 꾸미고 게임을 구상한다면, 숙부인은 변화하던 조선의 거리와 새로운 종교를 경험하고, 책을 통해 조선 밖의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을 키워간다. 어떤 측면에서는 숙부인이 정절을 강조하며 전통적인 윤리를 고집하고 있지만 가장 진보적인 생활과 생각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숙부인에게서 근대에 자리잡은 자유연애(중매결혼과 무관한)와 낭만적 사랑(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죽음까지 불사하는)이 촉발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스캔들>의 핵심적인 주제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우습게 여기던 조원과 조씨부인이 결말에 깨닫는 진실한 사랑이다. 조원이 진정한 카사노바라면 그는 숙부인에게 가기 위해 피를 흘리며 말에 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숙부인을 통해 진실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알게 된 조원은 자신의 약속이나 목숨보다 숙부인을 택한다. 게다가 조씨부인 조차 그런 사랑을 마음 속에 지니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조원과 조씨부인이 장난으로 시작하고 그 목표를 이루기까지 그들이 느끼는 재미는 곧잘 관객에게 유머와 웃음으로 전달된다. 그러나 그 가벼운 게임과 웃음은 결말로 가면서 비극적 멜로드라마의 결말과 유사하게 끝이 난다.

이런 결말은 한 편으로 진실한 사랑에 대한 메시지일 수 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이전까지 유지해왔던 그런 유머가 끝까지 지속되는 건 어땠을까라는 상상을 유발시킨다. 혹시 가부장적 윤리의식에 문제가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 요부로 등장한 조씨부인이 벌을 받아야 된다는, 수절을 포기한 부인과 바람둥이 남성에 대한 판결이 내려져야 한다는 결말을 이끈 건 아닌지 하는 의혹도 든다.

시네마 단신
   
액션 코미디 <마지막 늑대> 크랭크 인

양동근, 황정민 주연의 액션 코미디 <마지막 늑대> (감독 구자홍, 제작 제네시스픽쳐스)가 이 달초 강원도 정선에서 크랭크 인 했다. <마지막 늑대>는 시골 마을의 파출소 폐쇄위기를 막기 위해 범죄유치(?)에 몸소 나서게 되는 두 경찰의 좌충우돌 액션 코미디.


입력시간 : 2003-10-07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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