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둥산 억새 장관, 화암 8경엔 가을 정취 물씬

[여행] 정선 민둥선과 화암8경
민둥산 억새 장관, 화암 8경엔 가을 정취 물씬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지려나 만수산 먹구름이 다 몰려오네." 민영 '정선 아리랑'중에서

정선아리랑의 본고장 강원도 정선은 이웃의 영월, 평창과 함께 '영평정'이라 하여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오지로 꼽힌다. 그래서 산에서건 들에서건 읍내 장터에서건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엊리고 순박하다. 삭막한 회색도시에서 심신이 찌든 도시인들인 이곳에서 단 하루만 머물러도 고향 정서를 만끽할 수 있으니 더 없이 순박하다.


환경단체의 풀꽃상 받은 민둥산 억제

정선의 가을은 남면에 솟은 해발 1,119m의 민둥산에서 온다. 증산초교에서 가파른 산길을 50분쯤 오르면 해발 800m 고지에 터를 잡은 정겨운 산골마을이 나타난다.

'발덕구이' '팔구뎅이'라 불리는 이 마을엔 화전민의 후예들이 고랭지채소를 재배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억새꽃이 필 무렵이면 가파른 고랭지에서 배추를 수확하며 구슬땀을 흘리는 주민들을 만날 수 있다. 워낙 오지라 외지인들도 전쟁을 피해 들어왔다는 깊은 산골인 이 발구덕 마을은 지질적으로는 석회암 지형의 특질이 잘 나타난 마을이라 한다.

마을이 자리한 분지가 세월이 흐르면서 조금씩 함몰하고 있는 것이다. 이 구덩이들은 지질학적으로 석회암 지대에서 볼 수 있는 사발 모양의 움푹팬 땅으로서 돌리네(Doline)에 해당한다. 발구덕 마을은 돌리네가 ㅁ리집한 지형의 전형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마을 이름도 커다란 깔때기처럼 생긴 여덟 개의 구멍이 있다고 하여 지어졌다. 이는 지하에 커다란 석회암 동굴이 있어 지면의 흙이 굴을 통해 빠져나가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인데, 전문가들은 발구덕 마을 지하에 있는 석회암 동굴은 동양최대의 규모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발구덕 마을에서 돌리네를 살핀 뒤 배추밭 두렁을 통해 산길로 들어서면 곧 눈부신 억새능선이 펼쳐진다. 발구덕 마을 주민들이 화전을 일구던 민둥산 정상은 이름대로 까까머리처럼 민둥민둥하다. 정상을 중심으로 펼쳐진 억새밭이 무려 20~30만평에 달한다. 이곳에 이렇게 억새가 많고 나무가 없는 까닭은 화전을 할 당시 매년 한번씩 불을 질러 왔기 때문이다.

정상께는 조금 가파른 편이지만, 억새물결이 은빛으로 일렁이는 능선에 올라서면 강원도 산골 오지에서만 누릴 수 있는 황홀감에 젖어들 수 있다.

이럴 땐 화전민들이 이 곳에 불을 놓고 불렀을 법한 정선 아리랑 한 소절 불러보자. 유장한 아리랑 가락에 맞추는 바람 따라 억새가 쓰러졌다 일어선다. 이따금 밭 아래에서 기적소리가 아련히 들려온다. 미둥산 억새는 보통 10월 초순부터 하순 사이에 피어난다. 남면 주민들은 매년 10월 중순 이곳에서 억새축제를 연다. 한편, 민둥산 억새꽃은 1999년 가을에 한 환경단체가 수여하는 '풀꽃상'을 받기도 했다.


가을 경치 좋은 화암 8경

민둥산 억새를 감상하고 내려와 증산초교에서 421번 지방도를 타고 10km쯤 달리면 정선의 대표적 절경인 화암8경 중 하나인 몰 운대. 하늘나라 선인들이 학을 타고 내려와 노닐며 시흥을 즐겼다는 전설과 함께 정선을 들렸던 수많은 시인묵객들의 체취가 남아있는 곳으로, 몰운대 정상의 너럭바위에 앉아 발아래 펼쳐진 강원도 산골의 가을 정취를 감상하는 맛이 일품이다.

몰운대를 내려와 굽이도는 동대천 물줄기를 따라 내려가며 암벽에 그늘을 드리운 아름다운 단풍을 감상하다보면 기암괴성이 무리를 지은 소금강, 깎아 세운 듯 높다란 돌기둥 화표즈, 금을 캐다가 발견한 석회동굴인 화암동굴, 가을의 단풍이 장관인 전설의 거북바위 등 화암8경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낸다.

화암8경의 중심엔 화암약수가 있다. 이 약수는 1910년 무렵 가난하지만 착하게 살던 문명부라는 정선 사람이 산신령의 계시로 발견했다고 한다. 그런데 부정한 사람이 이 약수를 마시려 하면 큰 구렁이가 물밑에 똬리를 틀고 있는 것처럼 보여 물을 먹지 못한다고, 탄산성분도 많아 톡 쏘는 맛이 좋는 이 약수는 위장병과 안질, 피부병 등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약수터 뒤쪽에 물을 마신 사람들이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며 쌓아놓은 돌탑이 셀 수 없이 많다. 낙엽이 뒹굴어 다니는 가을 숲을 거닐다가 시원한 약수 한 모금 들이키고 돌탑에 돌을 얹는다. 소박한 가을날의 소망도 하나 담아….


민둥산 억새산행

증산초교~발구덕 마을~정상 ~증산초교 회귀코스가 3시간30분쯤 소요. 정상에선 30분쯤머문다고 봤을 때 4시간이면 다녀올 수 있다. 민둥산 동쪽의 421번 지방도상의 능전마을 앞에서 승용차를 이용해 발구덕 마을 주차장까지 들어가면 산행시간만 1시간 30분쯤 걸리지만 사람이 몰리는 휴일엔 불편하다.


▲ 교통 청량리역→증산역은 태백셩 열차 1일 8회운행. 08:00(무) 08:25(새) 10:00(무) 12:00(무) 14:00(무) 17:00(새) 22:00(무) 23:00(새). 3시간~4시간 소요 승용차로는 영동고속도로 하진부 나들목→59번 국도→나전→정선→남면 삼거리(좌회전)→38번 국도→4.8→증산초교 삼거리에서 421번 지방도를 타고 10km쯤 달리면 된다.


▲ 숙식 증산역 앞에 현대여관(033-591-1052) 숙박 업소가 몇 곳 있다. 증산초교 정문 근처의 민둥산 가든(033-592-3000)은 민둥산에서 채취한 취나물. 곤드래 나물을 반찬으로 내놓는다. 비빔밥 5,000원. 막국수 4,000원. 정선군청 전화 033-569-2365.

민병준 여행작가


입력시간 : 2003-10-09 15:19


민병준 여행작가 sanmi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