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 시닥나무


이즈음 가을 하늘은 청명하기만 하다. 비와 태풍으로 얼룩진 지난 계절의 고난쯤은 이미 잊은 듯 얄밉도록 푸르고 시리다. 주변의 나무들은 아직 대부분 초록이지만, 이미 퇴색하기 시작하였고 성급한 나무들은 하나, 둘씩 단풍이 들고 있다. 언제쯤 온 숲이 붉어지려나.

좀 더 빨리 잎 끝으로 가을을 만나고 싶다면 북쪽으로 산행을 한다. 남쪽에서 올라오는 꽃소식과는 달리 북에서 시작하는 단풍소식은 이제 서서히 그 출발을 시작한 듯 하다. 지금쯤 드문 드문 변색과 낙엽을 시작한 나무들 사이에서 한 나무의 잎 모두가 이미 붉은 빛으로 변했고 그 잎이 단풍나무를 닮긴 했지만 그 보다는 덜 갈라졌고, 그래서 그 잎이 플라타너스를 닮았다고 하려니 작고 더 예리하여 조금 낯설지만 단풍빛만은 붉고 곱고 완전하다면 시닥나무 일지 모르겠다.

시닥나무는 잎에서 주는 느낌과 빛깔로 짐작할 수 있지만 단풍나무과 단풍나무 속에 속하는 그 집안 식물이다. 비교적 높은 산에 가면 쉽지도 그렇다고 어렵지도 않게 만날 수 있는 나무이다. 낙엽이 지는 큰 키 나무여서 잘 크면 10m 정도되는 나무들도 있지만 보통은 숲에서 여러 나무들과 섞여 자라고 7~8m 정도 크는 것이 보통이다.

꽃은 6월쯤에 핀다. 암꽃과 수꽃이 따로 있고, 단풍나무 집안의 꽃 치고는 가장 큰 편이어서 확실하게 구별되는 5장의 꽃잎들로 이루어진 꽃송이는 지름이 1㎝까지도 되고 이 꽃들이 다서 길게 꽃차례를 만들어 보기에 좋다. 하지만 꽃색이 연두빛이 나는 노란색이어서 두드러지게 눈에 들어오지는 않다. 그 꽃의 아름다움은 다가서서 보는 사람들의 몫이다.

3~5갈래의 둥근 잎, 특히 앞자루가 붉은 색이어서 그 조화가 독특하다. 가을이면 가장 먼저 붉게 물들고 그 가시 사이에서 차곡차곡 하지만 엇방향으로 달리는 날개있는 열매들도 멋스러워 가을이 특별한 나무인가 싶다가도, 추운 겨울 흰 눈속에서 드러나는 어린 가지들의 붉은 빛깔이 멋지기도 하다. 여러모로 좋은 특징이 있어서 조경수 특히 풍치수로 좋지만, 오염이 심한 도심의 나무가 되기에는 너무 청청한 숲에서 살던 나무여서 그 특징을 잘 나타내기 어려울 수 있다.

이 가을, 단풍을 만나러 길을 떠났다면, 단풍나무 집안의 나무들을 한번 찾아내어 이름을 불러주는 재미를 가져봄직 하다. 중부지방에서 가장 흔히 만나는 나무는 그 갈라진 갈피를 세어보면 9~11갈래일 것이다. 당단풍나무이다. 만일 한라산 같은 남쪽의 산이며 5~7갈래로 갈라진 나무를 보았다면 그것이 바로 단풍나무이다.

5갈래(간혹 3갈래)로 앞의 두 나무처럼 잎이 아주 깊지 않고 잎의 중간정도 갈라진 나무라면 오늘 이야기한 시닥나무이거나 부게꽃나무인데 줄기의 붉은빛으로 시닥나무를 골라내면 된다. 역시 5갈래이지만 결각이 잎의 1/4정도만 갈라진 나무라면 줄기를 보자.

초록 줄기에 흰줄이 멋질 것이다. 그렇다면 산겨릅나무이다. 아예 3개의 작은 잎이 모여 달린다면 복자기나무이거나 복장나무일터이고, 잎 3갈래로 갈라진 가운데 조각이 가장 큰 나무는 신나무, 잎이 5~7갈래로 갈라진 결각에 다시 작은 톱니가 없고 노란색으로 물든다면 고로쇠나무이다.

말로만 단풍나무 집안 식구들의 특징을 읽자니 감이 오지 않을 것이다. 이 설명부분을 오려 두었다가 산에 갈 때 가져가고, 퍼즐하듯 잎과 특징을 맞추어 보면 멋진 가을 산행에 또 하나의 재미를 보태는 것이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입력시간 : 2003-10-10 10:08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