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여자들의 출산 거부

[2003 딩크족] 이유있는 그녀들의 '출산파업'
기고/ 여자들의 출산 거부


번듯하게 키울 여건 안될 바에 "성공 뒤 입양", 사회적 책임 인식 필요

결혼의 장점은 정정당당하게 합법적으로 부모가 될 수 있다는 것인데 그 혜택을 거부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또 아직은 부모가 될 자신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둘이 벌며 아이는 낳지 않고 가정생활보다 개인의 인생과 즐거움을 만끽하는 ‘딩크족’이 우리 주변에 급증하고 있다. 이들은 부부만의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다 보니 지금 상태로는 아이를 낳아 기를 처지가 안돼 아이 낳기를 거부ㆍ보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이 ‘출산 파업’에 가담하는 이유도 다양하다. “둘이 함께 번다고 하지만 대출 이자며, 각자 차량유지비 등 생활비가 만만치 않아요. 아이를 낳자마자 분유 값이며 기초비만 40만~50만원, 또 아이 돌봐 줄 사람에게도 100만원 이상 줘야 한다는 데 자신 없어요. 외식은 커녕 영화 한번 구경가지도 못하고 청춘을 궁상맞게 보내기 싫어요.”

“능력도 없이 아이만 무턱대고 낳는 것이 더 문제가 아닌가요. 요즘은 분유도 명품이 있고 맞춤배달 이유식은 월 100만원 정도에요. 두 살 때부터 사교육이 시작된다는데 제 아이만 원시인처럼 촌스럽고 무식하게 키울 수는 없잖아요.” “이제 호주제도 폐지되니 반드시 아이 낳아서 대를 이을 필요가 없죠. 내 아이 봐 달라고 친가 외가에 구걸하거나 열악한 환경의 유아원에 보내는 것도 싫구요. 앞으로 평균 수명도 늘어나니까 열심히 일로 승부해 내가 성공한 다음에 입양할까 해요.”


"희망없는 시대, 아이는 뭘…"

이들은 선진외국처럼 출산휴직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 엄마가 충분히 아이를 키운 후 사회에 복귀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양질의 보육을 해주는 공공보육기관을 찾기는 더더욱 어렵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또 고소득 맞벌이 부부가 외동아이들을 거의 귀족처럼 키우는 ‘듀크족’이 늘면서 아이들에게도 명품으로 도배하고 고개를 가누자마자 영어학원에 보내는 풍조에서 자기 아이에게 태어나자마자 빈부격차, 삶의 쓴맛을 보게 하기 싫단다.

남성들의 의식변화도 일조했다. 과거엔 무조건 아빠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요즘은 아이 없이도 괜찮다, 심지어 ‘아무런 희망 없는 시대에 아이를 던져놓기 싫다’며 정관 수술까지 한 이들도 있다.

결혼이 필수가 아니라 선택인 시대에 출산은 더더욱 선택 사항이다. 자신들만 아는 이기주의라고 나무라기 전에 출산 거부가 자신의 상황이나 의지가 아니라 열악한 보육 환경과 우리나라에 희망이 안 보여서 라면 그건 우리 모두가 나서서 책임져야 하지 않을까. 부실은행이나 기업에 쏟아 부은 공적자금의 일부만이라도, 아니 로또복권의 기금만이라도 탁아 및 보육시설에 투자하고 모든 아이들의 부모 경제수준에 상관없이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면 왜 부모가 되는 기쁨과 은총을 마다하겠는가.

그 동안 살면서 나의 가장 탁월한 업적(?)은 딸을 낳은 일이라고 확신한다. 물론 내가 버는 돈의 대부분이 딸아이의 교육비 및 품위유지비로 들어가 가슴이 쓰리긴 하지만….

유인경 경향신문 여성팀장


입력시간 : 2003-10-10 13:56


유인경 경향신문 여성팀장 alic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