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스 인터내셔널 윤철수 사장

여자의 가슴에 인생 건 '괴짜'
에이스 인터내셔널 윤철수 사장


의학도에서 사업가로 변신, 기능성 브래지어로 '대박' 행진

“의사가 할 일이 없어 여자들의 브래지어 만드냐. 의사 면허가 아깝다”는 비아냥에서, “편한 길을 포기하고 어려운 결정을 내린 용기가 대단하다”는 찬사까지.

여성의 가슴을 커 보이게 하는 일명 ‘실리콘 브라’를 생산하는 ㈜에이스인터내셔널 윤철수 사장(27)에게 쏟아지는 비난과 격려다. 2001년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인턴까지 마친 의학도였다. 해외의 인기 상품에서 착안, 자신의 독창적 상품으로 만들어 낸 그의 여정은 창업의 열풍에 또 하나의 장을 개척해 낸 것이었다.

올 3월 창업에 나선 윤 사장의 동기는 아주 명쾌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의사보다 기업가가 사회적으로 더 영향력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대학 시절 전공(의학)책 못지않게 경영학 서적을 탐독했어요. 특히 GE 잭 웰치 전(前) 회장과 피터 드러커가 쓴 책을 읽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경영인이 되는 꿈을 품게 됐어요.”

심지어는 인턴 기간중에도 틈틈이 경영 서적을 뒤지며 기업가로서 기초 지식을 쌓을 정도였다. 서울대 경영학과 석사 출신의 형(윤동수ㆍ29)과 토론하며 사업 구상을 펴나간 것도 이때의 일이었다. 미국의 뉴스 전문 채널 CNN과 일본 방송 NHK 등을 통해 ‘여성’ 관련 상품이 전망이 있다고 판단, 사업판으로 나섰다.

‘실리콘 브라’는 당시 국내엔 알려지지 않았지만, 해외 여성들에겐 선풍적인 인기 몰이를 하고 있던 제품이었다. 가슴을 커 보이게 한다는 면에서 일명 ‘뽕’브라와 비슷하지만, 실제 피부처럼 자연스럽게 가슴선을 잡아주는 것이 특징이다.

아이템이 선정되자 사업 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인턴하면서 받은 월급에, 대출금을 보태니 얼추 사무실(서울 관악구 신림동)을 낼 자본금이 만들어졌다. ‘세계적으로 도약하는 미래 기업을 꿈꾼다’는 뜻에서 현재의 회사명을 지었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은 괴리가 있는 법. 부푼 꿈이 깨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6월, 국내 실리콘 업체에 브래지어 제작을 의뢰하고 제품 출시를 준비하던 때 당혹스런 일이 벌어졌다. 미국ㆍ중국ㆍ대만 등지에서 실리콘 브라 제품이 대량 수입됐던 것. 순식간에 TV와 인터넷 홈쇼핑에서 수백억 원 어치가 팔려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한 발 늦었구나 하고 가슴을 쳤죠. 게다가 품질이 떨어지는 제품도 마구잡이로 수입되다 보니 고객들의 항의가 빗발쳐 ‘실리콘 브라’는 쓸만한 게 못 된다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했어요.”

윤 사장의 첫 제품이 세상에 빛을 보기 전에 ‘반짝 인기’가 사그러 들 판이었다. 출시를 늦추고, 수입 제품의 문제점 분석에 매달렸다. 접착력이 약해 수명이 짧다는 고객들의 불만 사항에 주목해 접착력을 크게 높이는데 주력했다. 또 의학을 접목시켜 항균ㆍ탈취 성분, 유방암 항암 물질, 비타민 등을 첨가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것이다. “실리콘 브라의 핵심은 높은 접착력과 통기성을 유지하는 것인데 처음엔 실패했어요. 계속 연구하면서 폐기를 반복했죠. 그렇게 50여 회 반복 끝에 브라의 수명을 높이는 방법을 개발했습니다.”

지난달 출시된 윤 사장의 실리콘 브라 ‘라프라’는 한 달 만에 4만 개 이상 팔렸다. 현재 밀려드는 주문에 비해 생산량이 달려 인터넷 홈페이지(www.lapra.co.kr)의 구매창을 잠시 닫아둔 상태. 약간 무거운 느낌이 있는 실리콘의 단점을 없앤 신제품 브래지어를 곧 출시할 예정이다.

이처럼 브래지어를 붙들고 산 지 5개월. 여성을 위한 상품에 관심을 쏟다 보니 오해를 받는 경우도 있다. “자꾸 여성의 가슴을 보게 돼요. 몰래, 몰래. 이젠 대충 봐도 A컵인지 B, C컵인지 척 알 수 있어요. 자칫하면 ‘변태’ 취급을 받을 수 있겠죠. 또 외판원이라고 여겨 천대를 당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중요한 것은 소비자의 욕구를 정확하게 꿰뚫으려 노력한다는 사실이죠.”

윤 사장은 여성용 속옷에 이어 침구류 생산에도 뛰어 들었다. 소위 ‘양길승 파문’으로 유명해진 국화를 소재로 한 고급 베개 ‘국화 옆에서’를 판매한다.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이 즐겨 찾는다는 점을 감안, 한방 약재 처리를 했다. 추석 직전, 홈쇼핑 방영 30분 만에 수천만원의 매출을 올리는 등 ‘대박’ 행진 중이다.

국화 베개는 홈 페이지인 ‘국화 옆에서(www.ikukhwa.co.kr)를 통해 해외 주문도 들어 와, 수입을 원하는 일본과 동남아의 백화점 및 소ㆍ도매 체인점과 계약 협상 중이다.

그를 포함한 직원은 모두 11명. 평균 연령은 24세. 고졸이니 대졸이니 하는 ‘학벌’을 철저히 무시하고 뽑았고, 대우에서도 차별하지 않는다. 대신 전원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발로 뛰고 있다. 큰 돈을 들여 대규모 유통망을 갖추는 대신 온라인으로 주문을 받고, 공장도 외부 생산 설비를 이용한다.

외주 업체에 대한 철저한 사전 검증은 필수 사항. 해당 회사의 기존 생산품은 물론 재무 구조까지 예리하게 파악한다. 업체의 부실이 제품의 부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시범적으로 두 가지 아이템만 선보였어요. 내년에는 이들을 중심으로 여성 속옷과 침구류 생산을 확대할 계획입니다.” 윤 사장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일에 빠져 하루 한 끼를 못 챙겨먹을 때도 있어 몸무게가 3kg가 줄었다면서도 기운이 넘치는 모습이다.

그는 “올 매출 목표가 50억, 내년엔 100억”이라며 말을 맺었다. “사실 작은 회사라 책에서 본 경영 방식을 현실에 적용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아요. 그래도 소비자 위주의 기본을 지키는 건전한 경영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겁니다.”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 2003-10-10 14:05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