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맛이 바로 영광 굴비의 참 맛"

[맛이 있는 집] 영광 새깍두기식당
"이 맛이 바로 영광 굴비의 참 맛"

영광굴비는 영광 전역에서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말해 법성포에서만 난다. 요즘 웬만한 조기는 영광굴비라는 가짜 옷을 입고 있는데, 자그마한 법성포에서 나는 굴비가 얼마나 되길래 우리나라 전역에 넘쳐나는 지 모를 일이다.

지난 추석 때, 영광굴비라며 한 마리에 만원 하는 굴비 맛을 보게 되었다. 특별한 맛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영광굴비라고 하니 그런가 보다 싶었다. ‘소문만 대단하지 별맛은 아니네’하는 감상을 남겼을 뿐이다.

얼마 전 취재차 고창과 영광을 돌아다니다가 초저녁 즈음 법성포에 도착했다. 어둑어둑해지는 하늘에는 구름 몇 덩어리가 엉겨 있고, 포구에는 차례로 불이 켜지고 있었다. 칠산 바다에서 강 같은 물길을 따라 한참을 거슬러 올라와야 법성포에 이른다. 다른 포구가 바로 바다를 앞에 두고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바다에서 멀어질수록 물이 얕아지니까 뻘을 파서 물길을 낸 것이 마치 강처럼 보인다. 낯설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끄는 이상한 힘이 이 포구에는 있다.

포구를 따라 도로가 나 있고 도로변을 따라 상점들이 들어섰다. 미처 도로변에 터를 구하지 못한 주택들은 비탈진 언덕 위까지 촘촘하게 자리를 잡았다. 둥그런 포구와 나지막한 집들이 푸근한 저녁 풍경과 잘 어울렸다.

칠산 앞바다에서 잡히는 씨알 굵은 참조기를 법성포로 가지고 들어와 이곳에서만 분다는 하늬바람에 말려 천일염으로 염장한 것이 옛날식 영광굴비다.

요즘은 예전처럼 오래 말리지 않고 물기만 뺀 다음 바로 냉동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단, 고추장 굴비(굴비장아찌)를 만들려면 예전과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말려 껍질을 벗기고 가시와 내장을 제거해 손가락 크기로 찢어서 사용한다. 말리는 시간과 손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말리지 않은 굴비에 비해 더 비싸게 친다.

영광에서도 법성포까지 왔으니 저녁 식사는 당연히 굴비정식이다. 소문을 듣고 찾아간 곳은 마침 확장 공사 중이라 영업을 하지 않고,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서 알아낸 곳은 새깍두기 식당. 법성포라고 해서 굴비정식을 다루는 집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 편인데 해안 도로를 따라 몇 집에서 하고 있다. 대신 굴비판매점은 셀 수 없이 많다.

굴비정식을 시키면 굴비도 굴비지만 상을 가득 메우는 남도의 반찬 가짓수에 놀란다. 굴비구이와 굴비 매운탕, 고추장 굴비 외에 간장게장, 고추장게장, 생선구이, 젓갈, 김치, 나물무침 등 거하게 차려준다.

굴비는 숯불에 구워 껍질이 바삭하게 익힌다. 간간하면서도 속살이 부드럽게 씹힌다. 살은 물론 껍질까지 알뜰하게 발라먹고 나니 접시에 남은 건 가시와 내장뿐이다. 자꾸만 젓가락이 가게 되는데, ‘이것이 제대로 된 굴비 맛이구나'’싶다. 추석에 맛보았던 것은 영광굴비가 아니었다.

서해에서 잡은 조기 가운데 좀 큰 것만 골라서 배에 노란빛이 돌게 만들어 영광굴비로 둔갑시키는 일이야 어렵지 않겠지만 그 맛을 흉내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법이다.

굴비구이만큼 맛있는 것이 고추장 굴비다. 이것을 더 좋아하는 이도 있는데 밥반찬으로도 좋지만 술안주로 제격이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상에 놓인 고추장 굴비를 보고도 도라지 무침이나 명태 무침 정도로 생각하고 손을 대지 않기도 한다는데 꼭 챙겨먹어야 한다. 쫄깃하게 말린 굴비와 매콤한 고추장이 입맛을 돋군다.


▲ 메뉴 :

굴비정식 1인분 15,000원(中), 20,000원(大), 간장게장 18,000원, 꽃게탕은 크기에 따라 30,000∼50,000원 061-356-7944


▲ 찾아가기 :

서해안고속도로 영광 나들목으로 나간 다음 23번 국도를 타고 영광읍 소재지로 간다. 22번 국도를 따라 북서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법성포에 이른다. 영광읍에서 약 15분∼20분 정도 거리. 법성포에 도착해 포구를 따라난 해안도로를 천천히 달리다보면 포구 중간쯤 오른편에 새깍두기 식당의 노란 간판이 보인다.

김숙현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3-10-10 15:30


김숙현 자유기고가 pararang@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