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재즈와 정통 국악의 교감

[재즈 프레소] 김애라 첫 앨범
현대 재즈와 정통 국악의 교감

‘Always Somewhere’. 1980년대를 풍미했던 그룹 스콜피언스의 노래가 아니다. 해금 주자 김애라(37)의 신곡이다. 애절한 해금 선율에 재즈와 세미 클래식적 반주가 아취를 물씬 풍긴다. 그녀의 첫 앨범 ‘In Loving Memory’에는 새로운 서정이 그득하다. 특히 해금의 두 줄을 동시에 소리내는 겹음 연주(double stop)은 좀처럼 듣기 힘들었던 소리를 선사했다.

김영동이나 김수철 등 창작 국악계에서 일가를 이룩한 사람들의 애절한 정취도, 창작 국악 그룹 슬기둥식의 신명도 아니다. 김애라가 그리는 진폭은 상당히 크다. 통속적이다 싶을 정도로 기존 창작 국악의 선율을 이어 가는 듯 싶다, 어떨 때는 전위의 첨단에 서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정통 국악의 세계를 고수하려 한다.

“내 발전의 모습으로 긍정해요. 더욱이 국악계 어른들한테 음반 발표에 대해 찬성한다는 말씀까지 얻었으니, 감사할 일이죠.” 궁중 음악(정악)으로 출발해 놓고 속악, 그것도 서양 음악과 깊숙이 들어 가는 것이라 좌고우면한 흔적이 역력하다.

이 앨범은 국악을 기조로 한 현대적 어법의 대중 음악을 담고 있다. 나아가 살아 있는 현장에서 다른 장르의 음악 양식과 기꺼이 교감할 준비가 돼 있다는 점에서 그것은 광의의 현대 재즈이기도 하다. 정통 국악의 세계에서 출발, 전혀 이질적인 최신 음악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까지 김애라가 걸어 온 길은 그래서 많은 것을 시사한다 .

진해에서 태어 난 그녀는 가야금 병창이 취미였던 모친의 영향으로 7세부터 가야금과 바이올린을 손에 달고 살았다. 그러나 가야금은 맞지 않았다. “왼손가락이 너무 물러 기교가 불가능했죠.” 해금으로 바꾼 것은 국립국악고 1학년때. 바이올린을 했으니 비슷한 현악기인 해금이 어울릴 것이란 판단때문이었다. 그러나 쉬운 일은 없었다.

3개월을 매달렸지만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가야금으로 돌아서려 했다.그러던 어느날, 거짓말처럼 소리가 틔었다. 그 소리에 매료당한 그는 하루 8~10시간씩 해금에 매달렸다.

“새벽 4시면 학교 연습실로 달려가 3시간 연습하며 하루를 열었어요.” 그러던 그녀가 15분짜리 ‘상영산’을 완주한 것은 고1때였다. 이어 중영산, 세령산, 염불 도드리 등 ‘영산회상’ 전바탕을 외워 연주한 것은 국립국악고등학교 무형문화재 제 17호 이수자의 조건을 차곡차곡 쌓아 갔던 것이다.

“옆길로 샐 생각을 이후 10년 동안 해 오고 있어요.” 25세 이후 KBS 연주회나 크리스마스 콘서트 등에서 그에게 국악 아닌 것을 연주해 달라는 요청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그런 활동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정악과 민속악을 겸해 연주하던 학교 활동의 연장선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방송 출연이나 퓨전 작업을 많이 할 때는 머리를 노랗게 염색하고 다니기도 했다. ‘“중앙대 최태현 선생님은 니가 연예인이냐며 꾸짖으셨고, 박범훈 선생님은 매니큐어를 지워버리겠다고 으름짱이셨어요.” 윤문숙(국립국악원),이기설(서원대), 조운조(이대) 선생도 만나면 당시 이야기를 종종한다. 음악적으로 진폭이 큰 삶이다.

신보는 그 같은 예술적 궤적이 선택한 절충안이다. 대중이 듣기 쉽게, 바이올린 흉내는 내지말고 해금 특유의 시김새(음색과 연주법)로, 전통 5음계를 써서 이뤄낸 것이다.

그는 “타장르와의 병행 작업은 계속될 것”이라 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들은 다른 사람들 역시 좋아할 것이라 생각해요. 피할 수는 없는 일이죠.” 적어도 내년까지는 이 같은 작업이 이어질 것이라는 답이다. 동기 동창의 면모를 보면 수긍이 가는 대답이다. 자신에게 많은 기회를 부여한 원일, 음반과 공연에 참여해준 김용우, 타악 그룹 푸리의 권성태, 부지런한 거문고 주자 허윤정, 그리고 해금 주자이자 절친한 친구인 강은일 등 국악의 쇄신에 청춘을 바치고 있는 자들이다.

10월 1일 세종문화회관 야외 분수대에서 갖기로 한 10월 첫날의 연주는 예기치 않게 비가 내리는 바람에 무산됐다. 가을비로 무산된 이번 공연은 10월말께 다시 올려질 계획. 같은 시기에 그의 2집 ‘찬란한 슬픔’도 빛을 볼 예정이다.

장병욱 차장


입력시간 : 2003-10-10 16:19


장병욱 차장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