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와 잭 다니엘, 그리고 삶의 향기

[문화 속 음식이야기] 영화 '여인의 향기' 버번 위스키
탱고와 잭 다니엘, 그리고 삶의 향기

지난 추석, 명절 스트레스에 시달린 사람들이 꽤 많았을 것이다. 차라리 명절을 홀가분하게 혼자 보냈으면 하는 기분이 든 사람도 적지 않았을 터이다. 그러나 정작 혼자 지내게 되면 오히려 고통스러운 것이 명절이다. 함께 있을 사람도 없고 마땅히 할 일도 없다. 때문에 독거 노인이 많은 서구에서는 명절 무렵에 자살률이 늘어난다고도 한다.

우리나라도 핵가족화, 가족 해체 현상이 가속화하면서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노인들의 숫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경찰청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 매일 7명의 노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고 한다. 영화 <여인의 향기>는 명절에 홀로 남게 된 노인과 소년의 이야기이다.

미국의 명문 고등학교에 다니는 모범생 찰리에게는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고민이 생겼다. 우연히 친구들의 장난을 목격한 것이 화근이 되어 교장의 은근한 협박을 받게 된 것이다. 교장은 찰리에게 사실대로 말하면 하버드 추천서를 써 주겠다고 회유한다. 가난한 고학생인 그로서는 솔깃한 제안이지만 친구들을 배신할 수는 없다.

추수감사절 휴가가 시작되자 찰리는 집에 가는 대신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역시 명절에 홀로 남게 되는 퇴역장교 프랭크를 돌봐주게 된 것이다.


자살 여행서 얻은 새로운 삶

그러나 이 괴팍한 노인과 사흘이나 같이 지내는 일은 만만치 않아 보인다. 프랭크는 불의의 사고로 눈을 잃고 과거의 화려했던 영광을 뒤로한 채 조카 집에 얹혀 쓸쓸히 살아가고 있다. 그의 유일한 낙이란 ‘잭 다니엘’을 홀짝홀짝 마시며 시거를 입에 달고 사는 일이다. 프랭크는 막무가내로 찰리를 뉴욕까지 데려가고, 찰리는 뜻밖에 화려한 여행을 한다. 지적이면서도 우아한 프랭크에게 감탄하게 되는 찰리. 그러나 그 여행의 진짜 목적은 자살이었다.

프랭크는 호텔에서 권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겨냥한다. 달려와서 만류하는 찰리에게 프랭크는 “내가 살아야 할 이유를 하나만 대봐.”라고 한다. 그러자 찰리는 이렇게 말한다.

“중령님은 누구보다 멋지게 탱고를 추고, 페라리를 모시잖아요?” 생을 포기했던 프랭크가 훨씬 어린 찰리에게서 삶의 의미를 배우는 모습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프랭크에게 살아갈 용기를 준 보상으로 찰리는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는다.

이 영화를 인상깊게 기억하는 사람들은 알 파치노가 카페에서 만난 여인과 멋지게 탱고를 추는 장면과 그가 마시는 단 한가지 술, ‘잭 다니엘’이라는 이름을 떠올릴 것이다. 영화가 개봉될 당시(1992년)만 해도 ‘잭 다니엘’은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그 당시만 해도 고급 위스키 하면 ‘시바스 리갈’이나 ‘조니 워커’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잭 다니엘’이 지금은 그래도 양주 대열에 오른 것을 보면 영화가 준 영향도 상당히 컸으리라고 생각된다.

미국의 대표적인 위스키 중 하나인 잭 다니엘은 분류상 버번 위스키에 속한다. 미국산 위스키 중 거의 대부분을 이루는 버번은 1789년에 태어났으며 켄터키 주의 한 지명에서 유래했다. 버번 위스키는 옥수수를 주 재료로 하여 증류한 위스키를 다시 내부를 태운 오크통에 넣어 2년 이상 숙성시킨다. 이때 오크통에서 나는 스모크향이 독특한 풍미를 준다.


올드 넘버7 테네시 위스키

잭 다니엘을 만든 ‘재스퍼 뉴턴(잭) 다니엘’은 이 버번 위스키를 가공해 새로운 맛의 테네시 위스키를 만들어냈다. 사탕단풍나무로 만든 숯으로 위스키를 한 단계 더 정제시키는 것으로, 이를 ‘링컨 카운티 과정(Lincoln County Process)’이라고 부른다.

1904년 ‘잭 다니엘’은 올드 넘버 7 테네시 위스키 (Old No.7 Tennessee sipping whiskey)라는 이름으로 미주리 주 세인트 루이스에서 열린 세계박람회의 위스키 품평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면서 명성을 얻게 된다.

영화에서 프랭크가 혼자서 위스키 온더락을 마시는 모습은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낯선 풍경이다. 아무래도 동양 문화권에서는 술이란 저녁 시간에 여럿이 모여 마시는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술이 음료처럼 생활화되어 있는 서양에서는 낮술을 마시는 일이 자연스럽다. 대신 이들은 술은 어디까惻?즐기기 위한 것이라는 통념을 가지고 있어 취하도록 마시는 데에는 상당히 엄격하다고 한다.

서구인들에게 우리의 폭탄주 문화는 그래서 충격적인 것으로 비친다. 폭탄주는 서부 개척시절 당시 알콜 중독자들이 적은 양으로 빨리 취하기 위해 만들어진 방법이라고 하니 술을 ‘즐기기 위한’ 방법은 아니다. 어떻게 마시건 개인의 취향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값비싼 위스키이니만큼 기왕이면 느긋하게 즐기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원액 자체의 맛을 즐기기 위해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사람들도 많지만 향을 오래 음미하기 위해서는 온더락이 이상적이다. 온더락으로 마실 때에는 미리 술잔을 차갑게 하고, 위스키가 얼음에 희석되어 천천히 퍼지는 향을 느낀다. 위스키 자체가 독하다 보니 위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우유나 콜라, 사이다 같은 각종 음료를 타서 마시는 것이 좋다.

위스키를 마실 때에는 한 가지 알아둬야 할 점이 있다. 백인들이 종종 위스키를 아무리 마셔도 멀쩡한 것은 알콜에 대한 저항력이 동양인보다 훨씬 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국 영화에서처럼 무작정 스트레이트로 몇 잔씩을 마시는 일은 삼가해야 한다.

장세진 맛 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3-10-10 17:17


장세진 맛 칼럼니스트 sejinjeong@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