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균 개그펀치] 재신임이 능사인가


며칠 전 지하철을 탔는데 3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여성 두명이 온갖 화제를 주제로 올리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육아문제에서부터 남편의 장래, 배우들의 사생활이 도마에 오르고 부동산 가격 폭등문제를 얘기하다가 과연 정부가 집값을 잡을 수 있을 것인가를 심각하게 토로하던 중 한 여성이 뜬금없이 물었다.

“얘, 대통령 된지 1년 됐나?”

“무슨 소리야, 이제 겨우 반년 넘었지.” 순간 두 여성은 약속이나 한 듯이 서로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우연찮게 이들의 대화며 모습을 훔쳐보게 된 나는 속으로 조금은 놀랐다. 흔히 생각하기에 여자들은 정치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386세대임이 분명한 이들이 보여준 언행은 확실히 정치권에 대한 나름대로의 의식표출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랬다. 분명 노무현 대통령 정부가 출범한지 채 1년도 되지 않았는데 국민들은 마치 몇 년이 지난 것처럼 혼란과 지겨움 속에 빠져 있다. 여론조사에서 자신들이 보수라고 생각하는 대학생들이 급격히 늘어났다는 기사를 보면서 대학생들을 보수로 이끈 주 요인이 바로 불안한 지금의 시대상황이 아닐까 싶다.

대통령의 인기와 신임은 점점 떨어지고 국민들은 연이어 터지는 정치권의 비리에 한숨을 내쉬고 있다. 이러던 판국에 대통령이 느닷없이 ‘재신임을 받겠다’고 선언해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임기 말도 아니고 초반에 대통령 스스로가 나서서 국민에게 재신임을 묻겠다고 하니 국민들은 당혹스럽기도 하고 그 진의에 의혹도 간다.

확실히 지금 대통령은 사면초가다.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안희정, 염동연씨의 금품수수 논란, 양길승 전 청와대 부속실장의 향응 파문, 386핵심 측근인 이광재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의 금품 수수 의혹, 노무현의 집사로 통하는 최도술 전 비서관의 금품 수수사건이 터지면서 국민의 의혹과 불신이 증폭됐다. 거기다 재독학자 송두율씨 문제로 인한 보수와 진보세력간의 이념논쟁, 이라크 추가파병, 민주당의 분당과 통합신당의 출범으로 인한 지역주의의 심화가 대통령을 괴롭히고 있다.

엎친데 덮치는 식으로 연이어 터지는 문제들 앞에서 국민적 불신이 높아지고 있으니까 국민의 재신임 과정을 통해서 실추된 국정운영 능력을 복원하겠다는 강한 의지표현이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정치 일각에서는 이러한 노 대통령의 재신임 발언을 놓고 특유의 승부수를 던졌다는 해석과 더불어 임기 초부터 ‘대통령 못해먹겠다고 운운하더니….’ 등등의 넋두리 토로라고 몰아붙이기도 한다.

물건을 사면 특별한 훼손이 없는 한 30일 이내에 교환하거나 환불할 수 있다. 사람들은 샀던 물건이 마음에 들지않으면 오랜 시간 심사숙고 한 뒤에 교환하거나 환불을 한다. 물론 신나서 환불과 교환을 하는 사람은 없다. 선택의 실패에 따른 찜찜함이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기 마련이다.

대통령직은 결코 철밥통이 아니다. 과거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국민들에 의해 하야했던 것을 돌이켜보면 노 대통령의 재신임 발언은 국민들을 엄청난 혼란에 빠뜨렸다는 것이 자명하다. 설마 대통령이 기분 때문에 한마디 울컥하고 던진 것이 아닌 다음에야 국민들은 대통령의 이 발언에 대해 구체적인 시기와 방법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다.

야당은 벌써부터 재신임의 방법은 국민투표 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정말 대통령에 대한 재신임이 이루어져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국민들이 교환을 원할지 환불을 요구할지 아무도 모른다.

대통령이 던진 재신임이란 국가적인 중대사가 국민들 사이에서 해프닝으로 남지않길 바랄 뿐이다. 이제는 룸살롱에 가더라도 마담이 ‘정말 교양있고 예쁜 아가씨를 불러드릴께요. 마음에 안들면 재신임 받을께요.’ 하는 일이 벌어지지ㅍ않을까? 대통령도 힘들다고 재신임을 운운하는데 나라고 못할소냐 싶어서 아무데서나 재신임을 운운하는 철딱서니없는 국민들이 제발 나타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입력시간 : 2003-10-15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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