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섭의 한의학 산책] "살찌고 싶다"


가을은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다. 오곡백과가 주변에서 유혹하고, 여름철의 다이어트에 대한 의지도 이미 식었다. 무더위로 잃었던 입맛도 되살아났고, 몸도 추운 겨울을 준비하여 칼로리 소비를 줄이고 있다. 살집이 좀 있는 사람들은 가을이 되면 걱정이다.

그런데 다이어트 열풍에 가려져 있지만 너무 야위어서 고민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너무 야윈 것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고민이 될 수 있다. 인터넷 모 카페에 ‘살찌고 싶은 사람들의 모임’의 회원이 3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살찌기 위해서 자기 전에 라면이나 초콜렛 등 고칼로리 음식을 먹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속만 불편할 뿐이다. 살이 찌지 않는 사람은 비위의 기능이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과식을 한다든지 지방이 많은 음식을 먹으면 오히려 소화기능을 악화시켜 살이 찌는 것을 방해한다. 마른 사람일수록 한꺼번에 많이 먹기보다 소화가 잘 되는 음식을 규칙적으로 소량씩 자주 섭취하는 등 위장을 잘 다스려야 한다.

먹는 것은 남보다 많이 먹는데 살이 찌지 않는 사람은 속에 열이 많은 사람이다. 음혈(陰血)이 부족하여 화(火)를 꺼줄 수 없으므로 몸에 열이 생기는 것이다. 먹는 것을 바로 바로 태워 없애기 때문에 살로 갈 영양분이 없다. 한방에서는 ‘식역’, ‘소갈(消渴)’ 등에 해당한다. 소갈은 당뇨병과 유사한데 상소(上消), 중소(中消), 하소(下消)로 증상에 따라 나누게 된다.

특히 중소(中消)는 많이 먹어도 마르고 땀을 많이 흘리며, 변비가 생기고 소변을 자주 보는 증상이 있다. 하소(下消)는 소변이 시원하게 나오지 않으면서 얼굴이 윤택하지 않고 검어지며 마르는 증상이 있다.

마른 사람은 폐의 정기(精氣)가 부족하여 폐에 구멍이 뚫려 흉곽에 공기가 차는 기흉(氣胸)이 생기기 쉽다. 특히 마른 체격에 키가 큰 사람에게 잘 생긴다. 마른 여성들은 자궁에 혈(血)이 부족하여 조기 폐경이 올 수 있고 불임이 될 수 있다.

원래 마른 체격이 아니고 체중이 갑자기 줄게 되면 한번 건강을 체크해보는 것이 좋다. 최근 6개월 이내에 자기 체중의 10% 이상이 감소되거나 한달 정도 사이에 갑자기 3㎏이상 줄어들게 되면 질병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식욕이 증가했는데도 체중이 줄어들 때에는 당뇨병이나 갑상선 기능 항진증을 의심해야 한다.

식욕이 없거나 먹을 수가 없어 체중이 줄어드는 경우는 보통 위장 계통에 병이 있어 제대로 먹지 못하거나 신경성 식욕부진, 다른 약물의 부작용 때문일 경우가 있다. 몇 달이나 몇 년에 걸쳐 서서히 야윌 경우에는 만성 호흡기병을 비롯해 만성위염, 만성 소화성 궤양 등 만성질환 때문일 수도 있다. 특히 중년 이상의 연령층에서는 각종 암의 초기 증상일 수도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몸이 말랐어도 오랜 기간 몸무게의 변화가 없고 피부에 윤택이 있다면 병이 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옛 문헌에서도 마른 것이 살찐 것 보다 낫다고 하였다. 그렇지만 살이 찌고 싶은 사람은 우유를 많이 먹는 것이 좋다. 우유는 몸을 살찌게 하고 희고 윤기가 나게 한다. 허약하여 살이 안찌는 사람은 닭고기, 양고기를 찌거나 삶아서 먹어도 된다.

산약이나 하수오 15g을 삶아서 찌꺼기를 버리고 그 즙과 맵쌀 50g을 죽을 끓여 매일 1, 2회 복용하거나 참깨로 죽을 끓여 먹으면 기혈이 부족하고 신체가 허약하고 마른 사람들에게 좋다. 평소에는 구기자와 오미자에 설탕을 적당히 넣어 차로 마신다.

살이 찌지 않는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불규칙적인 생활이다. 마른 사람은 성격이 급하거나 예민한 경우가 많아서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며,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낙관적이고 낙천적인 마음을 갖고 규칙적인 생활로 바꾸는 것도 중요하겠다.

강남경희한방병원 이경섭병원장


입력시간 : 2003-10-15 11:46


강남경희한방병원 이경섭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