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적이고 지적인 캐릭터, 동양화 전공한 '충무로 키드'

[스타탐구] 감우성

감성적이고 지적인 캐릭터, 동양화 전공한 '충무로 키드'

낙엽 수북한 공원 벤치에 앉아 커피 한잔을 나누고 싶은 남자, 감우성. 오죽하면 그의 팬클럽 이름도 ‘커피 향기’일까? 뜨거운 커피 위에 찬 아이스크림이 얹혀진 비엔나 커피처럼 냉정과 열정 사이를 오가는 복잡미묘한 매력을 내뿜는 그를 이 가을이 가기 전에 불러 세웠다.


신선하 연기 변신

어떤 이는 감우성의 얼굴에서 ‘햄릿의 진회색 우수와 아마데우스의 재기어린 눈빛이 읽혀진다’고 말한다. 햄릿이고 아마데우스이고 간에 분명한 건 그는 섣불리 한가지 색채로 규정짓기 힘든 배우라는 사실이다. 때론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나올듯한 냉혈인으로 때론 망가질대로 망가진 코믹연기로 화면 속에서 재생한다.

감우성 만큼 은근히, 그러면서도 신선하게 연기 변신하는 배우도 드물다.

시작은 TV 브라운관이었다. 1991년 MBC 탤런트 공채로 연기를 시작해 ‘우리들의 천국’ 납량특집 편으로 데뷔했다. 그 후 ‘폭풍의 언덕’, ‘산’, ‘예감’, ‘사랑해 당신을’, ‘메디컬 센터’ 등의 드라마에 출연했는데 과장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연기는 꾸준한 인기를 모았다.

특히나 얼마 전 김민선과 열연한 ‘현정아 사랑해’에서 보여준 재벌 2세 김범수 역은 남자도 이토록 사랑스러울 수 있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뭇 여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남 등쳐 먹는 사기꾼이나 삐끼, 험한 산을 타는 등반가 역할도 해봤는데 유독 사람들은 저의 부드럽고 달콤한 이미지만을 기억하는 것 같아요. 저 그렇게 말랑말랑하기만한 인간은 아니에요.”

하긴 그를 따라붙는 부드러운 미소, 지적인 남자라는 수식어도 이제 지겨울 만하다. 미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는 백그라운드와 나직한 목소리톤 때문인지 그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분위기 있는 남자’로 대중들 사이에 군림했고 대중들도 그에게서 고급스런 귀공자풍의 이미지만을 찾았다.


동료 탤런트와 10년 열애중

데뷔 10년이 넘은 관록의 배우지만 그의 필모그래피엔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 한편만이 호젓하게 올라와 있다. 애초 TV로 데뷔를 했지만 그의 영화사랑은 학창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며 그는 꽤 오랜 기간 영화를 위해 호흡을 가다듬었다.

각종 미술대회를 휩쓸며 그림으로 이름을 날리던 중ㆍ고교 시절에도 틈만 나면 극장을 드나들었고 로버트 드니로가 열연한 ‘디어 헌터’는 그의 가슴에 영화배우에 대한 꿈을 불지폈다. “왜 그 영화에 보면 러시안 룰렛 장면이 나오잖아요. 그거보고 너무 멋져서 잠을 못 잤잖아요. 당시에는 치기어린 동경이었을지 모르지만 영화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만들어준 최고의 작품이에요.”

충무로에서의 활약을 꿈꾸고 있을 무렵, 유하 감독이 시나리오를 내민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최고의 기회였다. 아직은 ‘보따리장수’라 방 하나 얻을 돈도 없을 만큼 무능력하지만 ‘테크닉’ 하나 만큼은 뛰어나 연희(엄정화)에게 사랑받는 시간강사 준영 역은 획일적인 결혼제도를 비트는 영화의 주제와 더불어 언론의 집중 관심을 받았다.

한 여자에게 얽매이기 싫어 결혼을 부정하는 준영의 쿨한 냉소주의는 사회적으로 싱글족들을 부추기는 결과까지 낳으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영화 속에서는 평생 한 여자만을 사랑할 자신이 없어 결혼을 거부하지만 실제의 감우성은 1991년 탤런트 입사 동료로 만난 강민영과 10여년째 열애 중이다. 친구처럼 오누이처럼 한결같은 사랑을 지키고 있는데 매년 가을이면 강씨와의 결혼설이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것이 부담스러운지 ‘때가 되면 할테니 제발 기다려 달라’고 신신당부다.

낡고 오래된 골동품 모으는 것을 좋아하는 그의 취향은 사람관계에서도 드러난다. 어렸을 때부터 혼자 그림을 그리면서 익숙해진 성격 탓인지 많은 사람들을 두루 사귀기보다는 몇몇의 사람들을 오래도록 만나는 편인데 탤런트 입사 동기(20기)인 한석규와는 각별한 사이다. 대중 목욕탕은 물론 피트니스 센터도 같이 다니는데 주변인들의 말로는 친형제 이상으로 그 사이가 돈독하다고 한다.

한석규가 결혼하기 전에는 둘이서 곧잘 낚시하러 다니기도 했는데, 지금은 둘 다 시간이 없어 엄두도 못 낸다. 감우성이 술을 즐기는 반면, 한석규는 술은 아예 입에도 대지 않아 ‘만나면 남자 둘이서 밥 먹고, 차 마시고 썰렁하게 헤어진다’고.

감우성은 그 이름에서부터 자연스레 ‘감수성’이라는 단어를 떠오르게 한다. 지금은 ‘당분간’ 그림을 중단하고 있지만 책과 그림을 사랑하는 그는 아직도 감수성 충만한 사춘기 소년같다. 세심하면서도 드라마틱한 연기는 어딘가 동양화적인 데도 있다.

“연기는 몸으로 하는 예술이라는 생각에 시작했어요. 배부른 소리일지 모르지만 배고픈 건 참아도 삭막한 환경에서 일하는 건 정말 못 견뎌요. 결혼을 하게 되면 마당 있는 집에서 살고 싶어요. 채소도 심고, 밭도 갈면서.”


겉과 속 꽉 찬 신뢰의 배우

최근엔 송일곤 감독의 미스터리 스릴러 ‘거미숲’에 주인공으로 캐스팅되면서 또 다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시나리오를 받은 당일 날 저녁에 출연 의사를 밝혀 제작진을 놀라게 했는데 혼란스러운 상황에 빠진 캐릭터를 표현한다는 점이 욕심났다.

TV 프로그램의 PD가 유령이 나온다는 거미숲에 취재갔다가 의문의 살인사건에 연루된다는 내용으로 국내 개봉에 앞서 내년 5월 프랑스 칸 영화제에 먼저 출품할 계획이다. 상대역은 영화 ‘섬’으로 스타덤에 오른 서정이다.

“요즘 최고 관심사는 제 인생의 주제 파악이에요. 아직도 무엇을 쫓으며 하루일과를 보내고 있는지 의문스러울 때가 있어요. 지금까지는 제 능력을 확인하면서 시간을 보냈고, 능력만큼의 대접만 받기를 바랬어요. 능력 이상의 대접을 받으면 그 이후의 시간을 감당하지 못할 것 같거든요.” 연기를 철저히 자아실현의 수단으로 즐기고 있는 그이기에 가능한 말이다.

연예계에 일단 발을 딛으면 정작 중요한 ‘자신’은 잃어버린 채 돈과 명예만을 쫓는 이들이 태반인 요즘 같은 시대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말이다. 지금껏 보다 앞으로 보여줄 것이 더 많아 그래도 다행이고, 이름만으로도 신뢰감을 주는 배우이고 싶다는 감우성. 깊어가는 계절만큼이나 겉과 속이 꽉찬 믿음직한 배우다.

김미영 자유기고가


김미영 자유기고가 minju@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