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균의 개그펀치] 살인미소


확실히 요즘 어머니들은 내가 어렸을 때의 어머니들과는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우리 어머니들 세대만 하더라도 아들에게 집안일을 시키는 일은 좀 드문 경우였다. 나만 하더라도 집안일은 으레 어머니 아니면 여동생 차지였고 그것이 완벽하게 몸과 마음으로 굳어져서 남자는 바깥일만 해야지 절대 부엌에 들어가면 안된다는 그릇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와 남편들의 독단과 가부장적인 권위에 눌려 살았던 요즘 어머니들은 아들들에게 좀더 탄력적이고 합리적인 자세로 대하고 있다. 아들이라고 무조건 오냐오냐 하면서 받드는게 아니라 남자로서의 의무를 강조하고 있다. 남자이기 때문에 특권을 누리는 게 아니라 남자이기 때문에 약한 여자를 보호해주고 양보하라고 가르친다.

남매를 둔 한 집안을 가정해보자. 어머니는 맏아들에게 ‘힘없는 여자를 때리는 것은 비겁하다, 힘 센 네가 져주어라’ 고 말하고 딸에게는 ‘여자는 남자와 동등하다. 절대로 지지 마라, 힘으로 밀리면 이빨로 물어서라도 이겨라’ 고 조언해준다.

지난 명절에 온 가족들이 모였을 때 아들 형제만 둔 사촌 형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사내 아이들의 수난사를 털어놓았다. “말도 말아요. 남자애하고 여자애하고 싸움이 붙잖아요. 여자애들이 여자 화장실로 도망가면 남자애들은 안까지 못쫓아가요. 근데 여자애들은 틀려요. 남자 화장실까지 쫓아들어가서 문을 차고 끌어내오죠. 그래서 고학년 남자 화장실 문짝이 성한 게 없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과장이야 좀 있겠지만 어쨌든 요즘 아이들은 어머니의 훈도 아래 남자 아이들은 매너있고 부드럽게, 여자 아이들은 씩씩하게 자라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가. 요즘 인기있는 남자들의 주류를 보면 ‘넘치는 힘’의 상징인 이대근류가 아닌 한없이 부드럽고 귀여운 스타일이 손에 꼽힌다.

무식하게 힘만 세고 터프한 남자들은 인기가 별로 없다. 대신 귀엽고 밝은 미소를 가진 남자들이 여자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연예계에서도 새로운 스타가 뜨면 ‘꽃미남 등장’ 이라는 타이틀 아래 소개되고 있다. 터프함의 상징이던 운동선수들도 우락부락한 스타일이면 팬들의 인기도에서 밀려나게 마련이다.

거친 운동을 하는 선수라 할지라도 꽃미남이라는 명칭이 붙어야 여자들이 열광한다. 월드컵이 전 국민을 흥분의 도가니로 밀어넣었을 때도 꽃미남의 대명사라 불리는 안정환이나 베컴이 기술보다는 스타일 위주로 더 화제가 되기도 했다.

꽃미남들이 또 갖추어야 할 게 바로 ‘살인 미소’이다. 작가 입장에서 따져봐도 이토록 절묘한 표현은 찾기 힘들 것이다. 살인 미소라니, 꽃미남들이 날리는 살인미소에 수많은 여자들이 죽고싶다고 난리다.

몇몇 가수와 탤런트의 팬들이 ‘살인 미소’라는 명칭의 원조를 주장하며 공방전을 벌이기도 할만큼 살인미소는 꽃미남들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 아닌게 아니라 나 역시 젊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가진 꽃미남들이 살인미소를 날리는 걸 보면 여자들이 왜 쓰러지는지 알 것도 같다. 상쾌하고 수줍고 부드러운 미소는 같은 남자가 봐도 분하지만 멋있다.

얼마 전엔 여자 개그맨 하나가 살인 미소를 가진 남자랑 사귀고싶다는 희망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개그맨 정형돈이 대뜸 나서는 것이다. “내가 살인 미소 하나 아는데, 소개시켜줄까?” “정말? 정말? ” “그럼. 법으로 인정한 살인미소야.”‘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이 달려드는 그녀를 비롯해 주위에 있던 우리 모두 호기심을 감추지 못했다. 정형돈은 잠깐만 기다리라며 컴퓨터를 두드려대기 시작했다. “봐, 여기 살인 미소잖아. ” 모니터에는 웬 남자의 현상수배 사진이 떠 있었다. 야비한 웃음을 머금고 있는 현상수배범의 이력은 이랬다.

‘강도살인 위 자를 보시는 분은 가까운 경찰서로 신고해주십시오.’

입력시간 : 2003-10-21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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