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신임 발언 이후 재결집, 회원수 9만명으로 급증

'노무현 구하기' 팔 걷었다
재신임 발언 이후 재결집, 회원수 9만명으로 급증

10월14일 저녁 서울 여의도공원 야외광장. 땅거미가 내려 앉을 즈음 직장인, 학생들이 하나 둘 몰려들기 시작했다. ‘신당으로 뭉쳐 노무현을 살리자’ ‘Again 2002, Let’s go 2004’ 등이 적힌 노란 스카프를 한 손에 든 채. 강한 바람이 부는 쌀쌀한 날씨였지만 족히 500명은 넘는 이들이 내뿜는 열기는 뜨거웠다.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 발언 이후 조금씩 꿈틀대기 시작했던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대선 10개월 만에 다시 ‘광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또 한번 위기에 빠진 노무현을 살리기 위해 힘을 결집하기 시작한 것이다.

‘재신임 정국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 네티즌 비상 시국 대토론회’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이날 행사는 배기선, 임종석, 유시민(개혁당), 정동영 등 통합 신당 의원들을 거쳐 한때 노사모 대표였던 명계남씨의 연설에 이르면서 열기가 극에 달했다. “대통령이 됐으면 인정을 해줘야지 툭하면 시비를 건다. 유아기적 특성이다.

우리가 그 사람(최병렬 한나다랑 대표)보고 제1당 대표감이 아니다. 한나라당 대표 잘못 뽑았다고 하면 기분이 어떻겠느냐.”(유시민) “오늘 1년 전에 쓰고 처박아 놓았던 노란 셔츠와 스카프를 꺼내 입고 왔다. 우리는 그(노 대통령)의 지원군이 돼야 한다. 홍위병이 돼야 한다.”(명계남)

연사들의 자극적인 발언이 나올 때마다 노사모 회원들은 노란 스카프를 흔들며 열렬히 환호했다. 마치 1년 전 그 때로 되돌아간 듯한 분위기였다.


다시 꿈틀대기 시작했다

침체에 허덕이던 노사모가 다시 꿈틀대기 시작한 건 10월10일 노 대통령의 재신임 발언이 나오면서부터 였다. 하루 100~200건에 불과했던 노사모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하루 평균 800건이 넘는 글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반성과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던 글들도 점차 단결과 재신임 지지, 내년 총선 승리를 다짐하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신호는 회원수의 급증이었다. 8만~8만3,000명을 오가던 회원 수는 불과 일주일 새 7,000명 이상 폭증하며 사상 처음 9만명을 넘어섰다.

“이제 노사모가 다시 뛰어야 할 때인가 봅니다. 다시 가입했습니다.” (tjs169) “어려운 상황에서 힘을 잃지 않고 열심히 분투하시는 대통령님께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자 새로 가입했습니다.” (kodj02) “순수 하나만 가지고 저 거대한 이무기들과 싸울 때 미미한 힘이라도 거들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에 오늘 작심하고 가입했습니다” (bmshin11)….

대선 이후 탈퇴했던 이들도, 그간 노사모 활동을 제3자 입장에서 지켜보기만 했던 이들도 모두 하나가 됐다. 한때 대표 일꾼을 지냈던 영화배우 명계남씨도 재가입 대열에 동참했다. 최근 치러진 노사모 제6기 대표 일꾼 선거에서 전체 선거인단 8만2,756명 중 투표 참여 회원이 1,161명(1.4%)에 불과했던 것과는 너무 대조적이었다.

만성 적자에 시달리던 재정에도 숨통이 트일 조짐을 보이고 있다. 매월 400만~500만원씩 쌓이는 적자를 감당치 못해 8월 초 회원들을 상대로 자동이체 방식의 CMS 모금을 시작했지만 2개월 가량 모금액이 고작 700만원에 그치며 여전히 빈곤에 허덕여야 했다.

하지만 10일 이후 믿기 힘들 만큼 CMS 신청자가 급증했다. 16일 현재 모금액은 2,300여만원. 7일 동안 무려 1,600만원이 모였다. 일부 회원들은 ‘희망 돼지’가 다시 살아난 것이라며, 노사모의 저력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것이라며 환호했다.


반 노사모 여론도 비등

노사모의 재결집 행보가 마냥 가벼운 것만은 아니다. 노사모의 결집력이 강해질수록 역풍도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부정적 여론에 불을 지핀 것은 이른바 ‘친서 파문’이었다. 노 대통령이 재신임 발언 직후 광주 노사모 오프라인 모임인 ‘사람 사는 세상’ 개소식에 보낸 친필 편지가 화근이었다.

노 대통령은 친서에서 “강물은 굽이쳐 흐르지만 결국은 바다로 갑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여러분도 함께 가고 있습니다”고 적었다. 또 “많은 사람이 이기고, 지고, 환호하고, 낙담하는 가운데도 나라와 국민은 언제나 이기는 길로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가뜩이나 재신임 발언으로 시끄러운 정국에?대통령의 친서는 야당에게는 공세를 펼 수 있는 좋은 ‘재료’였다. 한나라당 김영선 대변인은 “친서는 노 대통령의 재신임 발표가 국민 기만극임을 드러낸 것”이라며 “민심에는 국정 혼란을 빌미로 벼랑 끝 협박술을 쓰는 것이며, 한편으로 친위 세력인 노사모를 동정심으로 결집시켜 천하대란을 일으켜 혼란을 가중시키려는 양수겸장의 술수”라고 퍼부었다.

단지 야당의 일방적 공세라고 보기만은 어려웠다. 14일 열린 행사는 여당이 위기 국면에서 노사모를 활용해 세를 결집시켜 보겠다는 의도가 다분히 깔려 있었다. 이날 행사는 노사모 일부 지부를 통해 회원들에게 ‘노사모 긴급 번개 모임’의 형식으로 통보됐지만 실은 통합신당이 기획한 행사였다.

노사모가 재신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며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지, 또 자기 비판을 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는 전혀 없었다. “신당으로 뭉치자” “노짱의 홍위병이 되자”는 전투적인 구호만 있었다.

노사모 게시판에도 신중한 자기 비판의 목소리는 강경론에 파묻혀 점차 설 자리를 잃고 있다. 회원 심병모씨는 “최근 일련의 상황들이 우리 ‘노짱’이 개혁을 이루기 위한 기로에서 기득권 세력의 발목잡기에서만 비롯된 것이냐”며 “물론 대통령을 흔드는 데는 반대하지만 참여정부는 노사모 9만 회원들과만 정치를 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노사모도 지금은 재신임을 하되 잘못된 정책에 대해선 과감히 비판을 해야 한다”며 “모두 한 목소리를 내며 비판에 대해서는 비난이라는 말로 귀를 닫는 독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일갈했다.


또 한번의 돌풍을 일으킬까

노사모는 18일 대전에서 각 지역 간부들이 참석하는 확대운영위원회를 열었다. 지난해 대선이 끝난 후 처음 마련한 자리였다. 100여명이 참석한 이날 회의의 핵심은 이른바 ‘노무현 일병 구하기’. 한 참석자는 “재신임 정국을 원만히 돌파하기 위해 노사모 내에 비상 기구를 출범시키고 노 대통령의 통치 철학과 시대 정신을 제대로 알리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고 했다.

노사모가 과연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최근 제6기 대표 일꾼으로 선출된 심우재(42)씨는 이런 말로 답을 대신했다.

“신당의 행사도 회원 개개인이 그야말로 자발적인 참여를 한 것 뿐이죠. 그간 대통령이 대단한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호들갑인데 구체적인 정책에서 반민주적인 것은 어느 것도 없었습니다. 노사모에 무슨 의도가 있느니 어쩌니 하는 구시대 정치 프레임으로 보면 노사모는 절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바로 그것이 지난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패한 이유이기도 하고요.” 노사모는 이번에도 그 순수한 힘을 다시 한번 발휘할 거라는 강한 자신감이었다.

창사랑도 부활 몸짓
   

노무현 대통령에게 '노사모'가 있었다면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에게는 '창사랑'이 있었다. 노 대통령의 재신임 발언은 지난해 이회창 후보의 낙선 이후 숨죽이고 있던 창사랑 사이트에도 불을 지폈다. 평상시 하루 30~40건에 불과하던 게시판은 10일 이후 하루 200건이 넘는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노통이 불신임 받을 경우 역시 정치적 연륜과 대쪽같은 도덕성을 가진 창님(이회창)외에는 마땅한 후보가 없지 않을까요?"(vincents) "재신임이 아니라 하야를 선언해라."(hpkim) 등 재신임 정국을 '위기이자 기회'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특히 대부분 여론 조사에서 재신임 우위로 조사되자 "단순히 재신임을 묻는 투표에 반대한다. 차기 대통령을 같이 선출하는 소환 투표를 실시하자"는 입장이 주류를 이뤘다.

조직을 추스리기 위한 준비도 한창이다. 재정 빈곤에 허덕이는 창사랑을 살리기 위해 19일 비상대책운영위원회를 개최한 데 이어 22일에는 "도탄에 빠진 나라를 구하자"는 깃발 아래 창사랑 회원 집회도 열 계획.

한 회원은 "그간 노 대통령의 행보를 그저 지켜 봐왔지만 국가를 담보로 위기를 돌파하려는 얄팍한 술수를 더 이상 방관하기 힘들다"며 "지금 많은 국민들이 이회창 전 총재의 정계 복귀를 간절히 희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영태 기자


입력시간 : 2003-10-21 18:04


이영태 기자 yt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