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화밭'으로 인기 만개 의리의 음악인생 이어가

[추억의 LP여행] 이경우(下)
'목화밭'으로 인기 만개 의리의 음악인생 이어가

지구레코드 상무의 권유를 받아 팀 이름을 '더벅버리'에서 '하사와 병장'으로 바꾸어 5곡을 수록한 데뷔음반 <하사와 병장-그리움.지구.76년 6월>을 발표했다. 하지만 음반사의 무관심으로 대구에서 음반 발매 기념 '하사와 병장' 첫 리사이틀을 열었다. 게스트로 이정선과 해바라기 등 포크 가수들을 초청해 앨범 홍보에 나섰지만 반응은 그저 그랬다. 기대가 컸던 탓에 실망도 컸다.

이에 대구 기독교방송 김원상 PD는 달구벌 음악 학원을 운영했던 작곡가 진남성을 소개해주었다. 바로 '목화밭'의 작곡가다. 원래 '목화밭'은 단순하고 느릿한 컨트리 풍의 곡이었다. 자꾸 들어보니 멜로디만은 좋게 느껴져 스윙 풍으로 편곡했다. 라이브 무대에서 불러 보자 제법 반응이 좋아 청계천 오아시스로 재상경했다.

마장동 스튜디오에서 3시간 반 동안 14곡을 녹음했다. 하지만 단돈 2,000원을 받고 장욱조가 편곡을 떠 맡아 녹음은 성의 없이 진행되었다. 대구에서 반응을 얻자 그들은 부산 서면의 '조약돌' 레스토랑으로 내려갔다. 오디션에서 '목화밭'과 팝송을 불러 대구 시절의 6배가 넘는 23만원에 계약을 했다.

부산 나이트 클럽 무대에는 당시에는 무명에 가깝던 조용필, 최백호, 이택림, 장재남, 최진희, 박은옥 등이 활동하고 있었다. 부산 시절 이병장의 결혼 문제로 팀이 깨질 뻔했다.

당시 이경우는 서면 대아호텔 커피숍에서 노래를 하다 검은 피를 쏟았다. 오랜 무명 가수 생활동안 라면으로 연명을 해 영양 실조에 걸렸던 것. 부모님이 계시는 속초로 갔다. 진찰 결과 다행히 혈관에만 균이 있어 요양 후 서울 MBC로 무작정 올라갔다.

방송국PD들은 납작 모자(도리구치)를 쓴 건장한 두 청년의 모습이 눈에 박혀 왔다. 다음은 TBC 신광철PD를 만나 김만수의 청소년 음악 프로에 출연했다. CBS에서는 김진성PD를 만나 양희은이 진행한 '우리들'에 나갔다. 또한 최백호의 소개로 이용복, 홍민, 남궁옥분, 노사연, 이동기가 출연하는 명동 '오라오라' 생맥주 집에 나가 노래를 하게 되었다.

효과가 있었다. 갑자기 '목화밭'이 라디오 가요차트에 오르는 인기를 얻자 오비스 캐빈과 무교동 '꽃잎'등 에서 출연제의가 왔다. 이때 서판석을 매니저로 삼고 서유석의 주선으로 남산 리라초등학교 근처에 있던 킹레코드의 킹박을 만났다. 킹박은 "얼마를 원하냐"며 백지 수표를 꺼냈다. 순진했던 그들은 “키워만 주세요”하고 떨리는 목소리도 대답했다. 킹으로 둥지를 옮겼다.

당시는 75년 가요 정화 사건 이후 포크와 록이 통제 받던 시기. 최헌, 최병걸, 조경수, 윤수일 등 록커들이 이 시기에 대거 트로트 가수로 전향했다. 목포MBC에 출연하기 위해 해남으로 가는 도중 이병장이 트로트 곡 '해남 아가씨'를 만들었다.

이 음반은 5만장 이상 나가고 가요차트 베스트10에 드는 대박이 터졌다. 하사와 병장도 트로트 부르는 포크 가수로 변신을 꾀했다. 한꺼번에 여러 방송을 탈 만큼 반응은 대단했다. 대부분 앉아서 노래하는 통기타 가수들과는 달리 서서 율동을 곁들여 노래한 것이 적중했다. 하사와 병장은 절정기를 구가했다.

해남에서는 그곳 출신 가수인 박우철도 하사와 병장의 인기에는 못 미쳤다. 지금도 하사와 병장의 '해남아가씨'는 해남군가처럼 대접받고 있다.

이후 음악적인 발전이 없어 83년 해체되었다. 속초로 내려간 이경우는 카페 '목화밭'을 운영하며 84년 은행원 김희정과 중매 결혼을 했다. 속초 생활에 적응해 가던 중 유니버샬에서 음반 제작을 제안해 와, 트로트 솔로 앨범 '인생은 바람이라며'를 냈다. 결과는 참담했다. 내친 김에 86년 이동근과 재결합을 시도, 몇 장의 음반을 발표했지만 예전의 인기를 회복하지는 못했다.

89년 발표한 자작곡 '블루스맨'은 비로소 음악성을 갖춘 아티스트로 변신을 꾀하게 해준 모멘트였다. 박중훈 주연의 SF '바이오맨'의 영화 음악을 만들면서 낸 음반이 '블루스맨'이었다. 사실 '블루스 맨'은 화장실에서 갑자기 악상이 떠올라 3분만에 작곡한 노래였다.

MBC 라디오 '2시의 데이트'의 DJ 김기덕은 이례적으로 한 달에 세 번씩이나 팝송이 아닌 가요 곡 '블루스맨'을 틀어주었다. 시나리오 작가 최성호가 연극을 제의해 와 손창호와 함께 모노형식의 연극을 신촌 뼝캬耐蔓恙【?50일간 열며 대단한 반응을 몰고 왔다.

당시 이경우는 신촌블루스와 함께 블루스 열풍을 몰고 온 총아로 떠올랐다. 그 바람에 음악 영웅 박인수와 함께 KBS TV <연예가 중계>에 함께 출연하는 운명적인 만남도 가졌다. 하지만 그를 지지해 주던 PD들이 뇌물 사건에 연루되면서 딜레마에 빠졌다. "내 음악인생에 있어 가장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다시 속초에 내려가 부친의 수산물 가공 사업과 함께 재즈카페 블루노트를 운영했다. 사업에 싫증이 날 즈음 미사리 포크 붐을 타고 다시 상경해 쉘브루에서 통기타 노래를 잠시 했다. 이후 원래의 음악고향인 재즈 가수로 돌아갔다. 작년엔 일산에 <하사와 병장>음치 클리닉을 오픈했다.

"노래 때문에 고통을 받는 사람들에게 나의 작은 재주가 큰 도움을 주고 있는 것 같아 보람을 느낀다." 그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병색이 짙었던 선배 박인수를 위해 자선 콘서트를 마련해 수술비 마련에 도움을 주었다. 그는 스타 기질보다는, 남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과 의리를 잊지 않는 사람이다. 89년 이후 오랜 기간 음반을 내지 못하고 있는 이경우가 언제쯤 '블루스맨'을 능가하는 자신의 진짜 음악을 다시 내놓을까?

최규성 가요탈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3-10-22 18:31


최규성 가요탈럼니스트 kschoi@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