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SK· 일본 한신, 전통의 강호와 진검승부

돌풍의 팀 '가을의 전설'에 도전
한국 SK· 일본 한신, 전통의 강호와 진검승부

현해탄을 사이에 두고 한일 양국의 야구 열기가 쌀쌀한 가을 날씨를 무색케 하고 있다. 올 시즌 두 나라 프로 야구의 진정한 챔피언을 가리는 한국 시리즈와 일본 시리즈가 각각 17일과 18일 개막해 야구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정점으로 치닫는다.

한국에선 현대 유니콘스와 SK 와이번스가, 일본에선 다이에 호크스와 한신 타이거스가 맞붙은 이번 양국 시리즈는 닮은 꼴들의 진검승부로 한층 호기심을 자아 내고 있다. 한일 진검 승부의 신화를 재현해 낼 주역들을 미리 점검해 본다.


전통강호 vs 돌풍주역

전통의 강호와 올 시즌 돌풍의 주역이 챔피언 자리를 놓고 맞붙은 형국이다. 먼저 한국시리즈.

현대 유니콘스는 96년 창단 이후 98시즌, 2000시즌 두 차례나 등극한 신흥 명문팀이다. 올해도 현대는 탄탄한 전력으로 삼성 기아 등과 시즌 내내 선두 다툼을 벌이다 막판 뒷심을 발휘하며 1위로 정규 리그를 마쳤다. 영원한 우승 후보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셈이다.

반면 SK 와이번스는 2000년 창단해 줄곧 하위권을 맴돌다 올해 처음 포스트 시즌에 턱걸이 해 파란을 일으키고 있는 주인공. 전문가들의 예상을 비웃듯 올스타 브레이크 이전 한때 1위를 질주하기도 했지만, 이후 팀 전체가 슬럼프에 빠지며 아슬아슬하게 포스트 시즌행 티켓을 거머 쥐었다.

그러나 막상 포스트시즌의 뚜껑이 열리자 SK는 시즌 초 돌풍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강호 삼성과 기아를 내리 연파하며 파죽지세로 한국시리즈에 올라온 것. 시즌 상대 전적에서 앞선 현대 입장에서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일본시리즈를 벌이고 있는 두 팀도 한국의 경우와 매우 흡사하다. 퍼시픽 리그 우승팀 다이에 호크스는 99년 일본시리즈에서 우승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전통의 명문팀. 근년에는 늘 리그 상위를 놓치지 않았을 만큼 막강한 전력을 자랑하고 있다.

이에 반해 맞상대인 센트럴 리그 우승팀 한신 타이거스는 80년대 이후 꼴찌를 도맡다시피 해온 팀. 하지만 지난해 4위에 오른 데 이어 올해 18년 만에 리그 정상에 깃발을 꽂으면서 열도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주인공이다. 한신 신드롬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질 정도로 일본 사회 경제에 미친 파급 효과가 엄청났다.

한신과 SK 두 팀의 돌풍이 말 그대로 한바탕 각본에 그칠 지, 아니면 태풍이 되어 명가(名家)를 날려 버릴 지 섣불리 예측하기 힘들다. 올해 한일 양국의 시리즈를 아우르는 관전 포인트의 핵심을 미리 짚어 본다.


사령탑 대결

현대 김재박 감독(49)과 SK 조범현 감독(43)은 40대의 젊은 감독이면서 뛰어난 용병술과 작전 능력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닮은 점이 많다. 96년 부임 첫해 신생팀 현대를 준우승으로 이끈 김재박 감독이나 올해 사령탑 데뷔를 하자마자 만년 꼴찌팀을 단숨에 한국시리즈로 인도한 조범현 감독이나 둘다 야구판의 ‘40대 기수’로 불릴 만한 자질을 갖고 있다.

이처럼 지도자로 화려한 출발을 했다는 점에서 닮은 두 사람이지만 선수 시절은 너무나 달랐다. 김 감독은 국가대표와 프로에 걸친 현역시절 내내 공수 양면을 모두 갖춘 한국 최고의 유격수로 평가받으며 특급 스타로 군림했다. 반면 조 감독은 수비형 포수로 역량을 인정받기는 했지만 팀내에서 확고한 주전 자리도 꿰차지 못했던 평범한 선수에 불과했다.

선수 시절의 명성이 지도자 생활로까지 이어질 지, 혹은 화려한 부활 신화를 만들어 낼 지, 현재로선 섣부른 예단은 금물이다. 확실한 것은 지금 두 사람은 최고의 사령탑 자리를 두고 양보 없는 각축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

이웃 일본의 경우도 비슷하다. 다이에 호크스의 왕정치 감독(63)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아시아 홈런왕 출신이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뛴 22년 동안 그는 항상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대스타였다. 이에 반해 그와 맞서는 한신 타이거스의 호시노 센이치 감독(56)은 ‘열혈남아’라는 별명에 걸맞게 지도자로서 강한 카리스마를 뽐내고 있지만, 선수 시절의 명성으로 보자면 왕 감독에 한참 뒤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선수 시절 ‘안티 교징’(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적대시하는 야구인과 팬들을 일컫는 말)의 선봉에 섰으나 번번이 분루를 삼켜야 했던 호시노는 이제 지도자로서 영웅이 되어 요미우리 전성시대의 영웅 왕정치를 상대로 ‘패자부활전’의 칼을 다듬고 있다.


U턴파 정민태와 이라부

한국의 명가 현대 유니콘스와 한신 타이거스의 마운드에는 큰물을 경험하고 돌아온 백전노장 투수들이 버티고 있다. 정민태(33)와 이라부 히데키(34)가 그 주인공이다.

한국 최고의 우완투수로 성가를 높이다 일본에 진출했던 정민태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이렇다 할 이름을 얻지 못한 채 친정팀 현대로 불명예 복귀한 경우. 이라부 역시 시속 158km에 이르는 강속구를 앞세워 메이저리그에 뛰어들었다가 뉴욕 양키스, 몬트리올 엑스포스 등을 전전하며 2류 투수 딱지만 붙은 채 일본으로 귀환하고 말았다.

때문에 전문가들이나 야구팬들은 당초 이들에게 큰 기대를 걸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그 뿐 아니다. 투수로는 환갑을 지난 나이도 이들의 재기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부추겼다.

하지만 복귀 첫해 이들의 성적표는 어떤가. 정민태는 선발 21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당당히 다승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고, 이라부 역시 13승으로 팀내 기둥투수로서 톡톡한 활약을 펼쳤다. 전문가들은 두 투수 모두 큰 무대에서 산전수전을 겪으며 익힌 경기 운영 능력과 공의 완급조절 능력이 빛을 발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국시리즈와 일본시리즈 같은 큰 경기에서 두 노장 투수의 비중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점쳐진다. 정민태는 이미 SK와의 1차전에서 선발로 나와 상대의 돌풍을 잠재우는 관록 피칭을 과시했다. 김재박 감독도 정민태를 이번 시리즈에서 마운드 운영의 축으로 삼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호시노 감독의 전폭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한결 성숙한 모습을 보여준 이라부 역시 일본시리즈에서 복귀 첫해의 유종의 미를 장식하고자 한다. 강속구에만 의존하던 단조로운 투구 패턴을 완전히 벗어난 이라부는 메이저리그 6년 경험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마운드에서 피칭으로 보여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김윤현 기자


입력시간 : 2003-10-23 14:16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