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비자금 연루 정치권 전방위 사정은 "재신임저욱 뒷받침" 의혹 제기

SK 회오리는 盧·검찰 기획?
검찰의 비자금 연루 정치권 전방위 사정은 "재신임저욱 뒷받침" 의혹 제기

SK비자금 사건에 연루된 ‘양최’(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최돈웅 한나라당 의원)씨로 정치권이 폭풍전야에 빠졌다. ‘최도술 게이트’에 내심 미소짓던 한나라당은 ‘최돈웅 게이트’라는 역풍에 내홍 조짐마저 보이고, 민주당은 사정 칼날이 언제 자신들을 향할 지 몰라 잔뜩 웅크린 상태다.

한나라당은 최 의원이 검찰에서 SK로부터 받은 100억원을 당에 전달했고, 김영일 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책임이라고 자인하고 나섰지만 서청원 전 대표나 이회창 전 총재도 ‘최 게이트’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태다. 자칫하면 한나라당은 ‘부패정당’으로 낙인찍혀 ‘총선 제1당’이라는 기대가 물거품이 되는 것은 물론, 그 전에 당이 와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가 '사정음모설' 제기

이처럼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 정국에 이은 검찰의 전방위 정치권 사정은 정국 지형을 완전히 뒤바꿀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 한나라당이 갑작스레 수세 국면으로 몰리면서 정가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과 검찰의 ‘기획설’ ‘연출설’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노 대통령이 ‘재신임’ 카드로 위기 국면을 정면돌파하는데 검찰이 ‘사정’으로 화답하고 있다는 것.

노 대통령의 참여 정부는 역대 정권과 달리 보복성을 띤 사정 대신 ‘정치 개혁’을 모토로 국정운영을 해나갈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노 정권이 내세우는 도덕성과 개혁의 이면에는 사정의 칼바람이 내재돼 있다는 사실을 진작에는 간파하지 못했다.

칼바람은 지난 6월18일 밤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현대로부터 150억원을 받은 혐의로 서울구치소에 구속 수감되면서 현실로 나타났다. 그가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며 조지훈의 시 ‘낙화’를 인용해 소회를 밝힐 즈음 노 정권의 숨은 칼날이 어슴프레 모습을 보였다는 게 정계인사들의 이야기다.

그 사연은 DJ 정부 막바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DJ 정부가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꺾기 위해 이인제 후보 대신 노무현 후보를 선택하고, 지난해 3월 ‘광주 돌풍’을 시작으로 순조롭게 ‘노풍(盧風)’을 점화시켰지만 3개월 뒤 노풍이 곤두박질하자 생각이 달라졌다.

노무현 카드로는 어렵다고 판단한 민주당 동교동계를 중심으로 한 DJ세력은 정몽준 후보(국민통합21)를 대타로 띄우는 작업에 들어갔다. 이런 움직임을 눈치 챈 노무현 캠프는 ‘청와대가 노무현 죽이기에 나섰다’며 분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여곡절끝에 12월 대선에서 승리한 노무현 캠프는 대선 과정에서 등을 돌렸던 동교동계와 청와대 인사들을 ‘제거’ 대상으로 지목했고, 그 명분은 ‘도덕성’과 ‘개혁’이었다.

이는 지난 6월초 ‘열린 우리당’ 핵심인사이자 노 대통령의 측근인 모 인사가 작성해 청와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 문건 ‘신당정국 분석과 전망’ 에서도 엿볼 수 있다. A4 용지 40페이지 분량의 이 문건 내용 중 ‘신당 로드맵’ 부분을 보면 총선 승리와 노 정권의 원만한 국정 운영을 위해 신당 창당이 불가피하고 여타 정당을 ‘부패 정당’으로 규정짓는데 검찰 사정이 수반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검사와의 대화'는 고도의 전략

이와 관련, 주목되는 것은 지난 3월9일 열린 대통령과 평검사와의 대화다. 당시 정가와 검찰 주변에서는 노 대통령이 검찰을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으로 만드는 빌미를 제공했다는 ‘자충수론’을 제기했다. 측근이었던 안희정 염동연 등이 장수천 문제로, 친형 건평씨와 정계 후원자 들이 부동산 투기혐의로 곤경에 처할 때만 해도 ‘자충수론’은 사실인 듯했다.

그러나 검찰 사정이 ‘양최 게이트’로 방향을 바꾸면서 ‘검사와의 대화’는 노 대통령의 고도의 전략에서 이뤄졌다는 시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즉 정치 검찰을 앞세워 사정 정국을 조성하고 정권 자체 비리는 은폐하는 역대 정권의 초기 정권 운영 방식은 더 이상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한다고 보고 노 대통령은 검찰에 실질적인 힘을 실어주는 방식을 택했고, 그 계기를 ‘검사와의 대화’로 삼았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2000년 총선 및 12ㆍ19 대선 자금 문제에서 노 진영은 크게 다칠 게 없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 궁극적으로 집권 여당이었던 민주당과 거대 야당인 한나라당이 정치자금 문제로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인적 포석도 환상적이라는 평가다. ‘개혁’을 명분으로 코드가 맞는 강금실 변호사를 법무부장관에, 기가 센 안대희 검사를 대검 중수부장에 발탁한 것도 노 진영의 주도면밀한 포석으로 해석되고 있다.

노 대통령의 선택은 정권 출범 8개월여만에 효과를 발휘해 검찰은 종래 ‘권력의 시녀’ 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으며 사정 정국을 주도하고 있다.

지난 7월 굿모닝시티 사건에서 여당 대표였던 정대철 의원이 노 대통령을 찾아가 항의할 정도로 검찰 수사를 문제삼았지만 노 대통령은 “검찰 수사에 청와대가 관여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검찰에 힘을 실어줬다. 검찰이 여당 대표를 사전 통지없이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진 것이 정 전 대표의 애매모호한 행보로 ‘신당’창당의 동력이 떨어지고 있던 시점이어서 당시 청와대와 검찰의 ‘신당 띄우기’ 합작품이란 추측이 무성했다.

SK비자금 사건에 측근인 최도술 전 비서관이 연루됐을 때 노 대통령이 꺼낸 ‘재신임’ 카드는 ‘기획설’ 의혹을 증폭시켰다. 야당은 노 대통령이 최 전 비서관 문제를 안 것은 9월 이전으로 사소한(?) 문제에 ‘재신임’이라는 초강수 카드를 꺼낸 것은 불리한 정치지형을 일거에 바꾸겠다는 것이라고 공격했다.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은 “신당 띄우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으로, 민주당 박주선 의원은 “사정 정국을 조성해 신당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책략”이라고 비난했다.


한나라 다음은 민주당이 타깃?

정가에서는 노 대통령이 ‘재신임’ 카드라는 대 국민 충격 요법으로 측근 비리에 단호한 모습을 보여준 뒤 검찰에게는 성역없는 수사를 압박하는 고도의 전략을 쓴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성역없는 수사에 가장 당황한 측은 한나라당이다.

한나라당의 한 고위 당직자가 “노 정권이 최도술을 희생양 삼아 야당을 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비판한 것은 당황한 한나라당의 모습을 보여준다. 고위 당직자는 나아가 “대선자금에 관한 한 한나라당은 불리할 수밖에 없고 아직 ‘이회창 당’이라는 이미지가 남아 있어 총선을 앞두고 타격이 매우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선자금 수사로 한나라당이 만신창이가 되면 민주당은 2000년 총선자금 문제로 다음 타깃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야당이 최근 ‘최도술게이트’를 확산시키고 노 대통령의 대선 자금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수사를 촉구한 것은 노 대통령과 검찰간의 커넥션 의혹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방증한 것이다.

‘재신임’ 정국과 ‘SK태풍’ 이 휘몰아치고 있는 현 정국에서 노 대통령을 ‘아마추어’ 라고 하는 소리는 어느 곳에서도 들리지 않고 있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3-10-29 15:05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