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총서 외자유치·경영권 놓고 LG 상대로 개미들 완승

하나로통신 쇼크, 통신시장 지각변동 임박
주총서 외자유치·경영권 놓고 LG 상대로 개미들 완승

통신시장에 대지진이 임박했다. 이 지각변동은 통신업계 차원을 넘어 파장 정도에 따라 재계구도마저 뒤흔들 수 있는 강력한 위력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로선 그 결과를 누구도 단언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새롭게 재편될 통신시장 구조조정 과정에서 낙오하는 사업자는 상당 기간, 아니 영원히 탈락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진원지는 10월21일의 하나로통신 주총이다. 외자 유치와 경영권 문제를 놓고 하나로통신과 LG가 맞붙은 주총은 ‘10·21 이변’으로 불릴 만큼 뜻밖의 결과를 낳았다. 재계 ‘넘버 2위’그룹인 LG와 ‘일개’ 하나로통신의 대결은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었지만, 승리는 구약성서처럼 다윗(하나로통신)의 몫으로 돌아갔다.

하나로통신 주총은 회사측이 뉴브리지-AIG 컨소시엄으로부터 도입키로 한 11억달러(5억달러 증자+6억달러 신디케이트론) 외자 유치안의 승인 여부를 결정짓는 자리였다. 외자 유치가 성사되면 뉴브리지-AIG 컨소시엄은 39.6%의 지분을 확보, 종전 최대 주주였던 LG를 밀어내고 하나로통신의 경영권을 거머쥐게 된다. LG로선 사활을 걸고 외자 유치를 저지해야 할 입장이었다.


하나로 통신, 사활 건 위임장 모집

사실 주총 표대결은 찬성측(하나로통신과 2,3대 주주인 삼성전자 SK텔레콤)보다 반대측(LG)이 유리했다. 하나로통신이 외자 유치안을 통과시키려면 전체주식의 3분의1, 참석주식의 3분의2 이상 찬성을 얻어야 하지만, LG는 참석주식의 3분의1 이상만 확보하면 주총 통과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로통신처럼 소액주주가 대부분인 기업은 통상 주총 참석 지분율이 50%도 넘기 어렵다. 이미 18.03%의 지분을 보유했던 LG는 여유만만했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LG의 승리를 점쳤다.

하지만 21일 주총의 막이 오르자마자 모든 예상은 빗나갔다. 이날 주총에 모인 지분은 무려 87.7%. 상상을 초월하는 출석률이었다. LG가 외자 유치안을 저지하려면 약 30%의 지분(87.7%의 3분의1이상)이 필요했지만, LG는 출석률이 최대 70%를 넘지 않을 것으로 보고 24%정도의 지분만 갖고 온 상태였다. 참석률이 집계되는 순간, 한달여에 걸친 하나로통신과 LG의 싸움은 끝나버렸다.

출석률을 높여 하나로통신의 손을 들어준 것은 소액 주주들이었다. 정상적 표대결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하나로통신은 9월말부터 소액주주들을 상대로 전사적인 위임장 모집 작업에 들어갔다. 불특정다수에 가까운, 침묵하는 소액주주들을 상대로 외자유치 지지 위임장을 모으는 것은 무모한 작업이었지만 하나로통신 직원들은 말 그대로 몸을 던졌다. 하나로통신 윤창번 사장은 “이번 승리는 소액주주를 상대로 발로 뛴 결과”라며 몇가지 단적인 사례를 소개했다.

사례1: 10만주를 가진 외국 거주 개인주주의 귀국 날 하나로통신 직원들은 인천공항 입국장에서 피킷을 들고 5시간을 기다린 뒤 2시간을 설득해 위임장을 받아냄.

사례2: 2,000주를 가진 소액주주 집을 방문했다가 개에게 다리를 물렸고, 치료비 대신 위임장을 달라고 졸라 결국 성공함.

사례3: 1만주를 갖고 있는 주주집을 방문했으나 경영난과 주가 하락에 대해 야단만 맞은 채 문전박대당하자 눈물로 호소하는 편지를 문틈으로 넣었음. 편지 내용에 감동한 주주가 위임장을 허락함.

하나로통신 임직원들은 10%도 어려울 것이라는 소액주주 위임장을 결국 26%나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LG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었다. 하나로통신이 소액주주들을 훑고 지나가자 맞불작전을 내놓았지만, 전략 열성 성과 모두 완패였다. 방심한 골리앗이 다윗의 ‘발품’에 처절히 무너지고 만 것이다.


LG '통신 3강'꿈 무산

자업자득이지만 하나로통신을 놓침으로써 LG는 값비싼 대가를 치를 수 밖에 없다. 유선분야의 KT, 무선부문의 SK텔레콤 등 두 공룡기업의 독주속에 통신시장에서 LG의 설 땅은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

LG로선 시내전화와 초고속인터넷서비스 사업을 갖고 있는 하나로통신을 흡수해야만, 기존 데이콤(시외·국제전화) 파워콤(통신망) LG텔레콤(이동전화) 등 통신계열사와 시너지 효과를 통해 통신시장내 입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하나로통신은 LG가 ‘통신 3강’셉┯?유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안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LG는 하나로통신을 놓쳤고, 결국 통신 3강의 꿈을 접을지도 모르는 상황을 맞고 있다. LG측은 “통신사업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새로운 전략을 모색하겠다”고 밝혔지만 통신업을 지속하든 중단하든, LG의 통신사업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 바야흐로 통신시장은 KT, SK텔레콤의 과점체제에서 후발사업자들이 좀처럼 도약 기회를 잡지 못하는 ‘2강 다(多)약’ 국면을 맞고 있는 상황이다.

LG에게 하나로통신 다음의 차선책은 법정관리기업인 두루넷이다. 초고속인터넷시장의 11.4%를 점하고 있는 두루넷을 흡수한다면, 재도약의 기회를 엿볼 수 있다는 게 LG의 판단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하나로통신 또한 두루넷 인수에 팔을 걷어붙였다는 점이다.

외자 유치를 통해 당장의 유동성 위기는 모면했지만, 하나로통신이 거대 KT와 싸움에서 자력 생존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때문에 두루넷을 인수할 경우 하나로통신은 초고속인터넷 시장점유율이 40%대에 육박, KT(48%)와 일전을 겨뤄볼 만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결국 LG와 하나로통신은 올해안에 실시될 것으로 보이는 두루넷 입찰에서 또 한차례 맞대결을 벌일 운명이다.


합종연횡 가능성도

그러나 LG든 하나로통신이든 KT, SK텔레콤과 경쟁하려면 서로 손을 잡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란 점을 잘 알고 있다. 주총 직후 하나로통신 윤 사장도 “LG와 협력”을 얘기했고, 정홍식 LG 통신총괄사장도 “하나로통신과 제휴” 가능성을 언급했다.

주총과정에서 빚어진 감정의 골로 인해 당장은 기대하기 어렵지만 가까운 장래에 양측은 전략적 제휴를 위한 물밑 접촉에 나설 공산이 크며, 두루넷을 잡는 쪽이 협상의 주도권은 갖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혀 새로운 ‘짝짓기 시나리오’도 고려해 볼 수 있다. 하나로통신이 SK텔레콤과 손을 잡는 경우다. 무선사업만 갖고 있는 SK텔레콤으로선 하나로통신의 유선사업이 커다란 매력일 수 밖에 없고, 하나로통신 역시 무선통신의 절대 강자인 SK텔레콤 우산속에 들어가는 게 안정적이다.

“유선서비스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 SK텔레콤의 공식입장이지만, 업계에선 SK텔레콤이 뉴브리지 외자 유치에 가장 앞장섰던 점을 지적하며 “뉴브리지측이 장차 SK텔레콤에 하나로통신 지분을 넘기기로 사전 합의가 되어 있다”는 미확인 소문이 이미 나돌고 있다.

‘SK텔레콤+하나로통신’의 막강 유·무선 연대가 출범한다면 LG의 입지는 사실상 사라지게 되며, KT도 심각한 위협을 받게 된다. 이는 자연스럽게 ‘KT+LG’의 또다른 매머드급 동맹 출범을 촉발시킬 것으로 보인다.

아직은 모든 것이 설(說)이고, 시나리오다. 그러나 10월21일 이후 통신시장은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두고 있다. 첫 단추가 두루넷, 그 다음이 LG와 하나로통신의 행보, 마지막으로 KT와 SK텔레콤의 움직임 순으로 따라가다 보면 시계제로 상태속에서도 그나마 통신시장의 진로를 짚어볼 수 있을 것이다.


■ 하나로통신 경영권 공방 일지

·2003년 6월24일 4억5,000만달러 외자 유치안 이사회 상정(LG반대로 의결연기) · 7월3일 이사회, 외자 유치안 부결 7월8일 이사회, LG 제시한 5,000억 유상증자안 승인 8월5일 주총, LG 유상증자안 부결(SK 삼성측 부결 주도) 8월29일 이사회, 뉴브리지 컨소시엄 외자 유치안 승인 9월2일 SK텔레콤 1,200억원 지원, 하나로통신 부도위기 모면 9월9일 뉴브리지 컨소시엄과 11억달러 외자 유치 계약 체결 9월27일 하나로통신, 외자 유치 가결 위한 소액주주 위임장 모집 개시 10월2일 LG, 외자 유치 저지를 위한 소액주주 위임장 모집 시작 10월15일 LG-칼라일 13억4,000만달러 투자양해각서 체결 10월21일 임시주총, 외자 유치안 통과

이성철 기자


입력시간 : 2003-10-29 15:57


이성철 기자 sc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