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사 성향·지역현안 꿰뚫고 있는 '지역전문가'

[정치 신인시대-지방자치 단체장] 주민 자치시대 열 다크호스
유권사 성향·지역현안 꿰뚫고 있는 '지역전문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현역 국회의원과 지방자치 단체장간에 생사가 달린 ‘게임’이 진행 중이다. 게임의 단초는 9월25일 헌법재판소가 선거일 180일 전 단체장 사퇴 조항에 대한 위헌 판결. 단체장에게는 ‘날개’를, 선량들에게는 ‘비수’가 되는 판결이었다.

이 판결에 따라 국회는 10월16일 단체장의 공직 사퇴 시한을 종전 선거일 전 180일에서 120일로 단축하는 내용의 선거법 개정안을 신속히 통과시켰다.

선량들이 단체장들의 거취에 지나칠 정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내년 총선에서 자신들을 위협할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기 때문이다. 단체장들은 지역 주민들의 기대와 현안들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전문성’마저 갖춘 인물도 적지 않아 국민이 주인되는 ‘주민자치시대’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게다가 기존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내년 총선에서 단체장의 경쟁력을 더욱 높여주고 있다. 주목 받는 단체장들의 출사표를 들어봤다.


김충환 강동구청장


""참신성·전문성으로 승부""

김충환 강동구청장은 서울의 구청장 25명중에서 여의도 금배지 도전에 가장 적극적이다. 3기 연임 구청장인 데다 이부영 의원이 한나라당을 탈당, ‘열린 우리당’으로 옮겨 가는 바람에 도전의 공간이 크게 넓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최근 사고지구당 조직책 선정에서 이 지역을 보류지역으로 분류, 김 구청장은 한발 뒤로 물러선 상황이 됐지만 그의 출마 의지는 여전하다.

그는 총선 출마와 관련, “주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 죄송하지만 새로운 지구당 위원장을 선출해야 하는 상황에서 누구보다 지역민의 기대와 지역 현안을 잘 아는 사람이 그 자리를 이어받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대 국민 봉사라는 측면에서 구청장직을 접고 총선에 나선 데 대해서는 “구청장은 주어진 법 테두리에서 구정(區政)을 수행하지만 입법기관의 경우 주민(국민) 실정에 맞는 창조적 입법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며 “새로운 측면에서 주민에게 봉사하기 위해 총선에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김 구청장은 그의 정치 입문과 구청장 연임에 도움을 준 이부영 의원과 정치적 행보를 같이 하지 않은 데 대해 구청 일각에서 제기하는 ‘정치적 배신’이란 시각에는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개인적으로 이 의원을 깊이 존경하지만 정치적 노선이 달라 동행하지 않았다. 인간적 소의(小義)보다 정치적 대의(大義)를 택한 것이다.” 그는 이 의원이 탈당하려고 할 때 ‘만류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주었다.

김 구청장은 “정치적 선택에 있어 당원과 지역 구민의 뜻도 중요하다”며 “이 의원의 탈당은 대국민 약속을 위배하는 것으로 정당민주주의, 책임민주주의에도 반하는 것”이라고 이 의원을 겨냥했다. 이 의원 탈당시 구 의원 8명 중 단 2명만이 이 의원을 따라 갔을 뿐이고, 지역 여론도 한나라당 잔류 쪽이 대세였다고 그는 전했다.

김 구청장은 자신의 총선 출마에 대해 “강동구민 중에 행정 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강동구를 위해 더 큰 봉사를 해달라’는 격려가 더 많다”고 소개했다. 총선 출마에 따른 행정공백 문제에 대해서는 “지난 8년간 강동 구정을 시스템화해 운영해 왔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며 “부구청장이 본인의 행정 철학을 원칙대로 뒷받침 할 것”이라고 했다.

김 구청장은 이부영 의원과 격돌해야 하는 총선 전망에 대해서는 아주 조심스러워했다. “이 의원은 정치 경륜과 지명도를 갖고 있어 쉽지 않은 승부가 될 것이다. 그러나 주민에 대한 봉사도나 이 의원에 비해 10년 이상 젊은 나이, 행정 전문성 등이 나의 강점이다.”


김희철 관악구청장


"새 정치로 정치불신 씻을 것"

2002년 6ㆍ13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이른바 ‘3홍 게이트’(DJ의 3형제 비리) 여파로 전국에서 처절하게 ‘쓴맛’을 봤다. 특히 서울은 25개 구 가운데 22개 구를 한나라당에게 내주고 단지 3개 구(관악, 성동, 중구)만을 지키는 데 그쳤다.

민주당의 이 같은 참패에도 불구하고 관악구는 ‘최고 득표’라는 이변을 연출, 주목을 받았다. 당사자는 2기 연임의 김희철 구청장. 그런데 최근 김 구청장이 고민에 빠졌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역 주민들 사이에 그의 출마를 놓고 찬반 의견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찬성 의사를 밝힌 주민들은 구정을 잘 이끌어온 구청장이 기존 정치인보다 나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반면 반대하는 측에서는 무엇보다 구정 공백을 우려했다.

이 때문에 김 구청장 자신도 아직 출마 여부를 최종 확정하지 못한 상태다. 그는 “주민의 뜻을 존중하면서 어느 쪽이 더 국가와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것인지 심사숙고해 결정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와 관련, 10월10일 김 구청장의 출판 기념회에서는 김 구청장이 좀 더 큰 무대에서 일해주었으면 하는 지역 주민들의 기대가 크게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청소구청장’이란 닉네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김 구청장은 지난 5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에 청소 순찰을 해온 ‘성실성’과 ‘몸 낮추기’로 일관해 왔다. 그가 국회에 입성할 경우 ‘정치도 달라질 것’이라는 게 주민들의 기대다.

김 구청장은 지역민들의 정치적 기대에 대해 “최근 대선자금 문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치권은 국민의 신뢰를 잃어온 것이 사실”이라며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새로운 정치를 기대하게 됐고, 주민의 피부에 와 닿는 봉사행정이 나름대로 평가를 받은 것 같다”고 평가했다.

실제 관악구는 김 구청장이 98년 제2기 관악구청장으로 부임한 이래 많은 변화를 이뤘다. ‘달동네’ 이미지를 벗어난 게 가장 큰 성과. 관악구는 지난 한해 동안 주택보급율이 74.2% 증가, 전국 최고 기록을 세웠는가 하면 지난 5년간 지자체 평가 항목 67개 부분서 전국 최우수 평가를 받아 시로부터 58억원의 인센티브 지원을 받기도 했다.

김 구청장의 총선 출마 여부와 함께 관심을 끄는 것은 출마 지역과 간판이다. 김 구청장은 민주당 출신임을 거듭 강조해 간판은 정해진 셈이지만, 출마 지역에 있어서는 관악 갑은 같은 당 이훈평 의원 지역구이고, 관악 을은 4선의 열린 우리당 이해찬 의원(4선)이 버티고 있어 모두 녹록치 않는 상태다.

김 구청장은 “정치적 변수가 많고 12월 중순(사퇴 시한)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어 구정에 충실하면서 ‘출마’에 관해 신중한 결정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출마 가능성이 높고, 관악구 을 지역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주변의 지적에 대해 그는 “주민의 의사, 국가와 사회를 위한 봉사라는 큰 기준에 따라 결정하겠다”고 원론적으로 답변했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3-10-30 14:18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