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드 재즈는 또다른 '얼굴'

[재즈 프레소] 'Hardway' 낸 이태원
스무드 재즈는 또다른 '얼굴'

“연주든 편곡이든, 미국의 수준을 못 따라잡으면 이제는 외면당한다는 평소 신념의 결과물”이라고 이태원(31)은 압축했다. 그의 첫 작품, 앨범 ‘Hardway’는 많은 것들을 함축하고 있다(S&I).

무엇보다, 한국 최초의 스무드 재즈, 재즈오테크(jazzotheque) 앨범을 표방했다는 점이다. 스무드 재즈란 재즈 장르는 없다. 음반사에서 재즈를 응용한 새로운 유형의 음악에 붙인 이름이다. 하긴, 이런 유형의 음악이 재즈라는 이름을 빌고 계속 등장한다면 언젠가는 하나의 장르로 인정받을 지도 모를 일이지만.

재즈오테크란 이름은 솔직하다. ‘재즈 오브 디스코테크’라는 말을 줄여 쓴 것이다. 곧, 춤추기 좋은 재즈라는 뜻일 터. 비슷한 이름으로 2000년을 전후해 선보였던 ‘애시드 재즈(acid jazz)’라는 게 있었다. 직역한다면 톡톡 쏘는 재즈라는 정도의 뜻일텐데, 역시 댄스용 재즈였다. R&B를 주조로 한 이 작품 역시 춤을 염두에 두긴 했지만, 보다 느긋한 리듬감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미국의 재즈를 다분히 의식한 결과물이지만, 서른을 갓 넘긴 이태원이 이 작품에 기울인 열과 성은 특기할 만하다. 본인의 말이 궁금하다.


-어떻게 받아 들여지길 바라나?

가요와 팝 애호가들이 재즈에 대한 거부감을 불식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만들었다. 정통 재즈팬들이 보기에는 상업적이라는 딱지를 붙일 수도 있겠지만, 재즈의 한 장르로 받아들여 주길 바란다.


-시대에 따른 재즈의 변신이라는 말로 들리는데?

세련된, 고급스런 감각이 요점이다. 인터넷으로 글로벌화 되면서 우리 청중의 수준도 그만큼 변해 간다. 음악도 그렇지 못 하면, 외면당한다는 믿음이다. 연주와 편곡에서 본토 수준을 따르려 노력했다.


-작업에서의 글로벌화란 실제 어떻게 이뤄졌나?

인터넷이란 가교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앨범이다. 내가 악보와 데모 음악 등을 MP3 파일로 먼저 보내 주었다. 이후, 똑 같은 시간에 서버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다음, 나는 채팅창을 통해 카메라로 영상을 체크해 가며 미국측의 연주 진행 상황을 지켜 보았다. 예를 들어, 미국 트럼펫 주자가 솔로 연주를 서버에 올려 놓으면 내가 다운 받은 다음 들어 보고, 특정 부분을 고치라는 등 지시를 하는 식이었다.

단 한 곡, ‘Need For Speed’는 채팅만으로 안 돼 국제 전화의 힘을 빌긴 했지만. (이번에 이용한 서버는 인터넷 녹음 전문 관리 회사인 ‘로킷 론처(Rocket Launcher)’사의 것이었다)


-그런 방식의 녹음은 가요에는 더러 있었다. 그러나 재즈로서는 처음이다. 매순간 마다 뮤지션 사이의 상호 교감(interplay)이 특히 중요한 재즈에서, 무리한 시도는 아니었나?

물론 현장감의 묘미나 재즈 특유의 거친 맛은 없었다. 잡음이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테이프 녹음 방식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선입견으로는 불만스러울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흔히들 말하는 ‘인간적인 맛’을 가미시키기 위해, 나는 마스터링 작업은 아날로그화 했다. 엘튼 존이나 밴 헤일런 등 수퍼 팝스타들과의 음반 작업으로 유명한 엔지니어 캐빈 바틀러에게 일임했다.

그는 워낙 고가라 큰 레코드사에만 있는 마스터링 기기인 네브(Neve) 콘솔로 작업을 마쳤다. “아시아권 뮤지션과는 처음 작업하는 것”이라며 반기던 그가 기억에 남는다. 하루에 한 곡씩, 모두 1주일 걸렸다. 아주 기억에 남는 사람이다. 요즘은 국내에도 고가의 최신 녹음 장비가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 같은 노하우가 축적되지 못 했다는 점이다.

이태원은 최근 대중적 재즈로 부쩍 주목 받고 있는 색소폰 주자 대니정과 중앙대 연극영화과 동창이다. 이 앨범에 대니정이 참여한 것은 그래서 당연한 일이다.

그밖의 한국측 연주자는 곽윤찬ㆍ임미정(피아노), 서영은(보컬), 전성식(베이스) 등 신세대 재즈의 선두 그룹이다. “평소 잘 알고 지내던 형과 누나들이예요.” 한편 미국측 참가자들은 마이클 잭슨이나 머라이어 캐리 등 스타들의 앨범에 참여한 게리 그랜트(트럼펫), 퀸시 존스나 조지 벤슨 등과 작업했던 존 로빈슨(드럼) 등. 미국의 팝 시장에서는 일가를 구축한 사람들이다.

그는 “음악 작업 외에도, 제작자까지 내가 섭외했던 1집을 손에 들고 보니,그 많은 일들을 어떻게 해 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너무 힘을 들인 탓에, 후속 작업은 충분한 휴식을 가진 뒤에나 할 생각”이라고 피로감을 대신했다.

장병욱차장


입력시간 : 2003-10-30 16:49


장병욱차장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