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이 있는 집] 고창 동백식당 풍천장어


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 민물과 짠물이 한데 섞이는 곳에서 사는 뱀장어를 풍천장어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풍천장어는 고창 선운사 앞에서 나는 것이다. 다른 곳에서도 풍천장어가 나지만 그 맛이 고창에서 먹는 것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유난히 고소하고 담백한 맛, 살이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고창의 풍천장어 맛은 특별한 데가 있다.

어쩌면 고창의 명물인 복분자술과 어우러지면서 그 맛이 더 유명해 진 것인지도 모른다. 깊은 산중에서 자란 산딸기를 일일이 손으로 따서 담근 복분자술은 와인 같이 붉은 빛깔이 매혹적이며 과일 향이 풍부하게 느껴지는 술맛이 일품이다. 달콤한 첫 맛에 자꾸만 잔을 비우다보면 어느새 한 병을 비우게 되곤 한다.

고창 풍천장어 맛이 유명해 짐에 따라 선운사 입구에 서너 군데였던 장어집이 지금은 스무 개도 넘는다. 대부분이 최근 몇 년 사이 새로 생긴 식당들이다. 그 가운데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동백호텔의 동백식당이 제일 낫다. 동백장여관에서 동백호텔로 승격된 이곳은 40여년이나 된 곳이다.

미당 서정주를 비롯해 선운사를 찾던 문인들이 꼭 묵어갔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동백식당의 여주인은 미당의 시 ‘선운사 동구’에 나오는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라는 부분의 여자가 자신일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1층에 자리한 식당은 풍천장어구이는 물론 산채정식, 백반 등 여러 가지 메뉴를 준비하고 있다. 적당히 양념이 스며든 풍천장어를 고루 구워 뜨거울 때 한 점 입에 넣으면 첫 맛은 고소하고 끝 맛은 쫄깃하다. 담백하면서도 감칠맛이 있어 자꾸만 젓가락질을 하게 된다. 일반적인 장어구이에 비교해 보자면 비린 맛은 전혀 없고 훨씬 담백해 더 많이 먹게 된다. 껍질 부분도 더 쫄깃거린다.

옛 문인들은 어째서 선운사 동백만 노래하고 풍천장어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은 것인지 모를 일이다. 동백이야 봄철에만(선운사 동백은 늦게 피기 때문에 동백이 아니라 춘백이라고 해야 마땅하다) 볼 수 있지만 장어 맛은 사시사철인 데다가 그 맛이 뛰어나니 시 한 수 정도 남겨도 좋을 법하다.

동백식당은 풍천장어 구이도 잘하지만 다른 메뉴도 모두 기본 이상이다. 아침식사로 좋은 백반은 반찬만 스무 가지에 뜨거운 국과 달걀찜까지 곁들여 보기에도 아주 푸짐하다.

고창에서 풍천장어 맛을 보지 않고 발길을 돌리는 것도 가당치 않지만 선운사와 선운산을 그냥 지나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동백식당이 바로 선운사 입구에 있으므로 절을 먼저 구경한 다음 느긋한 마음으로 장어 맛을 보는 게 좋겠다.

선운사는 입구에서 절까지 이르는 길이 일품이다. 왼편에서 계곡을 끼고 늙은 가로수가 우거진 길을 따라 들어가는 데 운치가 좋아 발걸음이 저절로 느려진다. 지금 한창 물들기 시작한 단풍으로 길은 봄철의 동백만큼이나 붉고 매혹적이다. 계곡물에 드리운 단풍나무 그림자며 물 위에 떨어진 붉은 단풍잎들이 가을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선운사 대웅전 뒤편의 상록수들이 바로 동백나무인데 수령이 500~600년이나 된 고목들도 많다. 경내에 자리한 찻집에서 판매하는 복분자 주스나 솔잎차, 선운산 작설차 등도 그윽한 맛이 그럴 듯 하다. 시간이 넉넉하면 선운산 중턱에 자리한 도솔암까지 다녀오는 것도 좋다. 왕복 1시간 반 정도는 잡아야 한다.

선운사에서 차로 10여분 거리에 미당 서정주의 생가와 문학관이 자리한 질마재 마을이 있으므로 문학에 관심 있는 이들은 들러보는 것도 좋겠다.


메뉴 : 풍천장어구이 13,000원(1인분), 백반 6,000원, 산채정식 7,000원 063-562-1560,1 563-3488


찾아가는 길 : 서해안고속도로 선운산IC로 나간 다음 22번 국도를 따라 고창 방면으로 간다. 15㎞정도 가서 선운사 표지를 따라 좌회전해서 들어가면 선운사 입구의 상가단지가 나온다. 동백식당은 단지의 오른편 안쪽에 있다.

김숙현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3-10-31 10:48


김숙현 자유기고가 pararang@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