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균의 개그펀치] 공범 된 복덕방 할아버지


이제는 지구상에서 담배를 피우기가 점점 불가능해지는 것은 아닐까? 정부가 내년부터 담뱃값을 선진국 수준인 3,000원 선으로 올리겠다고 발표하자 흡연가들이 발칵 뒤집어졌다. 그렇지않아도 반갑지않은 금연운동의 확산으로 인해서 담배 한 대를 피우더라도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건물 구석까지 찾아 들어야 하는 게 말도 못하게 억울한데 거기다 담뱃값까지 인상한다고 나서니 마치 흡연가들은 이 시대의 말종쯤으로 전락하고 만 것 같은 우울함을 떨칠 수 없을 것이다.

담뱃값 인상을 놓고 흡연자와 비흡연자들 사이에서는 열띤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비흡연자들은 물론 쌍수를 들어 환영을 하고 있지만 흡연자들은 ‘너무 화가 나서 담배를 더 피우게 된다’ 며 강한 반발을 보이고 있다.

흡연자들 역시 금연을 함으로써 얻어지는 건강상의 이득과 가족의 평화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야말로 내 인생은 나의 것인데 왜 이 사회가 나서서 개인의 자유 인 흡연권을 위협하는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정부가 담뱃값을 인상한다고 발표하자 갑자기 그토록 풍부하게 공급되던 담배들이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고 있는 것이다.

내막은 소매상들이 인상 이후 차익을 노리기 위해 사재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가 어렵고 난리가 나도 그 틈바구니에서 돈을 버는 사람이 생기는 것처럼 정부가 건강증진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담뱃값 인상에 필요한 법률 통과에 몰두하고 있는 사이에 소매상들은 이틈에 한몫 챙기겠다는 야무진 결심을 굳힌 듯 하다.

나 역시 흡연가이지만 비흡연가들이 담배 연기에 대책없이 노출됨으로써 인체에 해악을 당할까봐 미안한 마음이 든다. 담뱃값이 크게 올라가면 아무래도 지금처럼 가뿐한 마음으로 담배를 피기는 힘들어질 것이다. 가뜩이나 경기도 안 좋고 일도 안 풀리는데 그나마 마음을 달래기 위한 작은 위안으로 담배를 피우던 서민들은 금값처럼 뛰어오른 담뱃값을 걱정하며 한 개비에도 덜덜 떠는 소심함에 더욱 위축될지도 모른다.

나도 한때는 담배를 끊어보겠다고 나름대로 노력도 해봤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건강에 좋고 나쁨을 떠나 담배는 어쩌면 내 인생에서 복잡한 애증관계로 뒤얽혀 살아온 동반자같은 존재이다.

고등학교 때 할머니의 담배를 몰래 훔쳐 피우던 첫경험을 떠올려 본다. 고등학교 때 절대금연을 외치는 교칙에 반발이라도 하듯 맛도 제대로 모르면서 일부러 학교 안에서 숨어서 담배를 피우기도 했다. 친구들과 담력을 내기한다고 엉뚱한 호기가 발동해서 상담실에 몰래 숨어 들어가 선생님들이 피우던 담배를 빼내와서 으스대던 기억도 있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한번은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선생님에게 걸렸다.

어머니를 모시고 오라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담배를 피다 걸렸다는 사실을 어머니가 안다면 난 그야말로 요새 애들 말로 ‘죽음’이었다. 전전긍긍하며 고민을 하다가 기막힌 묘안이 떠올랐다. 동네 골목에서 작은 복덕방을 하던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나를 아주 이뻐해 주셨다.

나는 담배 두갑을 사가지고 복덕방 할아버지에게 가서 친할아버지인 것처럼 하고 학교에 와달라고 부탁을 했다. 담배 두갑에 흐물흐물해진 복덕방 할아버지는 범죄의 공범자처럼 은밀한 미소까지 지으며 흔쾌히 허락을 하셨다.

다음날 날아갈듯한 두루마기 차림으로 학교에 행차하신 복덕방 할아버지는 아주 능숙한 연기자 같았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담배를 피우다 걸렸으니 뭐라 할말이 없소. 철딱서니 없는 손자녀석 때문에 선생들이 욕 보십니다.” 마지막으로 내 머리통을 한 대 쥐어박는 마무리까지 완벽하게 해주신 덕분에 나는 절대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어느새 어른이 되고 사는 게 바빠 태어나고 자란 그 동네를 오래 전에 떠난 이후로 그 복덕방 할아버지를 까맣게 잊고 살았다. 아직도 건강하게 계시는지 담뱃값이 오르기 전에 담배라도 사들고 찾아뵈야 할 것 같은 마음이 간절하다.

입력시간 : 2003-11-04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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