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어필·순수·모성애 코드로 패션계 새로운 흐름 주도

[패션] 누드 미학… 섹스를 판다
섹스어필·순수·모성애 코드로 패션계 새로운 흐름 주도

요즘 한국 연예계는 ‘벗자’판이다. 예술이네 외설이네 말도 말고 탈도 많지만 한번 벗고 카메라 앞에 서는 것만으로 돈도 벌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으니 톱스타 건 한물간 스타 건 ‘벗어볼까?’하는 유혹에 흔들리는 것은 당연하다.

‘아름다운 몸’이 최우선인 패션은 누드를 어떻게 이용하고 있을까? 완벽한 예술로, 혹은 자극적이고 외설적인 이미지로 상품의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패션브랜드의 광고 비주얼 속에 나타난 ‘누드’의 세계를 들여다보자.


아름다운 몸과 패션의 만남

90년대 용감하게 벗었던 스타들은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피하지 못했었다. 유연실이 그랬고 서갑숙이 그랬다. 그런데 왜 이제는 벗는 스타들도 많고 벗었다하면 대박을 치는 예술품으로 ‘누드’가 공인되는 것일까? 근엄하던 한국사회가 ‘아름다운 몸’을 인정하고 순수한 눈으로 그녀들을 바라보기 시작한 걸까?

톱탤런트 김희선이 멋모르고 찍었던 누드가 공개될까 노심초사하며 법정을 오가느라 2년 7개월을 허비하는 동안 세상은 참 많이 변했다. 일본이 미야자와 리에의 <산타페> 이후로 헤어누드를 허용했을 정도로 예술품이 된 누드가 있기에, 상업성이 가미된 예술로의 누드에 많은 이들이 군침을 흘리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O양 비디오 이후 실제정사 장면을 관람한 대중들은 벗은 몸에 대한 거부감에서 해방됐다.

한국영화도 한몫을 했다. <해피엔드>에서 전도연이 파격 정사 신을 연기해 누드가 외설이 아닌 예술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이다. 여러 여성(혹은 남성) 가수들이 새 앨범을 발매할 때 세미 누드 집을 사은품으로 자랑스럽게 증정했고 덩달아 필수가 돼버린 뮤직비디오를 통해 벗은 등과 가슴 언저리를 팬서비스라도 하듯 살짝살짝 공개했다.

성현아가 올 초 용감하게 누드집을 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마약사범의 전과기록을 딛고 복귀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됐지만 그에 대한 시비가 채 가려지기도 전에 건강미 만점의 여배우 권민중과 30대지만 여전히 섹시한 여가수 김완선이 뒤이어 옷을 벗음으로 누드열풍이 몰아치기 시작한 것이다.

‘헐벗은 연예인을 먹여 살린다’는 누드가 패셔너블한 이미지로 승격된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패션리더 이혜영이 ‘100억대 누드 프로젝트’에 동참하면서 부터다. 이혜영은 결혼을 앞둔 공개된 애인도 있는데다가 스타일리스트로, 패션피플로 다달이 온갖 잡지를 장식한 경력이 있기 때문에 그녀의 벗은 몸은 충분히 패셔너블한 변신전략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부와 명성, 변신의 책략으로 비즈니스 대열에 오른 누드는 언제나 새롭게 탈바꿈해야 하는 패션의 중요한 아이콘이다. 사실, 브라질 출신의 아찔한 8등신 모델, 지젠번첸의 여신 같이 타고난 ‘퍼펙트 바디’에 대한 동경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일관된 패션 이데올로기는 지속적인 소비욕구를 자극할 수 없었다.

또 노력에 의한, 건강한 몸에 대한 대중적인 욕구가 팽창해 있는 시점에서 패션이 보여주는 여성누드는 가을/겨울 시즌에도 계속되고 있다.


원초적 본능 일깨우는 마력

벗은 몸을 앞세운 의류광고는 속옷뿐만 아니라 여성복, 캐주얼, 스포츠웨어에도 등장한다. 그러나 의류보다 먼저 누드를 앞세운 패션아이템은 향수였다. 원초적인 본능을 일깨우는 향수의 마력을 표현하기 위해서 누드는 어쩌면 절대적인 선택일지도 모른다.

글래머 모델 소피달이 올 누드로 등장해 화제를 모은 이브 생 로랑의 향수 오피움은 이브 생 로랑의 ‘섹스&파워’를 대변했다. 미국광고협회까지 손을 내저었던 이 광고는 향후 이브 생 로랑의 모든 광고는 협회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는 규정까지 생길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제니퍼로페즈를 뮤즈로 삼은 랑케스터의 첫 번째 향수 ‘Glow by JLO’의 광고 비주얼도 만인의 Ю?제니퍼 로페즈의 100만 달러 짜리 허리와 힙라인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관능미를 뽐내고 있다.

겔랑의 새로운 향수 광고의 누드는 부드럽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준다. ‘렝스땅 드 겔랑’의 비주얼에는 X자의 가느다란 끈으로 연결된 등과 힙의 위선이 드러난 백리스(backless)드레스를 걸친 여성이 등장한다. 아래쪽에서 허리를 어루만지고 있는 남성의 손이 아니더라도 이 여성은 성교의 환희에 젖은 듯한 표정과 손동작을 보여주고 있다.

조향사 모리스 루쎌의 말에 따르면 “단순한 섹스어필의 수단인 동물적인 머스크 향이 아닌 따뜻하고 달콤한, 신선한 관능미를 추구했다”고 하니 보다 고급스러운 성적 매력에 한발 다가가 있는 향수의 이미지를 표현한 것이리라.

패션에서 보여지는 노골적인 성교의 메시지는 충격적인 비주얼로 새로운 세대에게 어필되고 있다. 이 메시지는 ‘솔직함’과 ‘자유’이다. 영캐주얼 여성복인 시슬리가 지난봄부터 선보인 광고 비주얼은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은 누드를 앞세웠다. 시슬리는 우유를 얼굴에 뿌리는 소녀, 거의 맨 몸으로 애무하고 있는 남녀 모델들, 성기를 노출한 것 같이 연출된 장면 등 외설적인 지면 광고로 충격을 주었다.

국내에는 소개되지 않았지만 포토그래퍼 테리 리처드슨이 직접 옷을 벗어 던지고 팬티만 달랑 걸친 여성모델과 해변을 달리는 장면은 자극적이라기보다는 누드의 자유로움으로 다가온다.

테리 리처드슨은 “섹스라고 하면 거북한 느낌을 갖지만 쉽고 편하게 웃어넘길 수 있는 장면을 담았다. 보기에는 야하지만 포르노는 아니다”는 말로 자신의 작품을 이해시켰다. 모델이 벗으면 자신도 누드로 촬영에 임한다고 하니 그의 누드작품은 자연인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되겠다.


강력한 여성상 제시

섹스어필 외에도 여성의 몸은 힘이 있다. 단순히 여성스러움을 강조하거나 유혹적인 수단이 아닌 파워풀한 자극을 주기도 한다. 루이비통의 모델로 활약 중인 제니퍼 로페즈 역시 섹시한 몸으로 승부하는 스타. 루이비통 광고 비주얼에 등장하는 제니퍼 로페즈는 근육질의 벗은 남성을 밀어내거나 짓누르는 듯한 인상으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섹시함으로 변신했다.

금발의 글래머 모델이 몸을 꽉 조이는 미니드레스를 입고 꽃무늬 가방을 선전하던 봄/여름의 핀업걸 시리즈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이 광고 컷은 단순히 섹시한 여성의 몸으로 승부하던 패션이 재능과 카리스마를 지닌 새 뮤즈를 선택함으로 보다 강력한 여성상을 제시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여성의 몸에서 느껴지는 파워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여성의 가장 강력한 힘. 바로 모성애가 드러났을 때 진실한 힘이 발휘된다. 한 광고에서 슈퍼모델이 부른 배를 드러낸 장면은 벗은 몸의 관능미보다는 모성애와 따뜻한 가정의 이미지가 느껴졌다.

깡마른 어린 남자아이 같던 모델 케이트 모스, 드라마 <섹스&시티>의 히로인 사라 제이슨 파커 등 스타일리시한 임산부들이 대거 등장하며 패션계에 한동안 베이비붐이 일었을 정도로 패션모델과 여배우들이 잇따라 아이를 갖고, 출산하더니 이제는 패셔너블한 아기엄마가 새로운 트렌드로 떠올랐다.

지난 시즌, 음모에 G마크를 새긴 비주얼로 충격을 준 구찌는 새 광고에서 벗은 아기를 소품으로 내세웠다. 완벽한 가죽 모피 재킷에 날씬한 공단 펜슬 스커트 차림에 올백 헤어를 한 모델은 차갑고 이지적인 인상이지만 건강한 아기를 한 손에 안고 있다.

아름답고 능력 있는데다가 모성애도 지극한 완벽한 여성의 자태다. 파격적인 패션쇼를 보여주는 장폴 고띠에의 패션쇼에도 아기 인형이 소품으로 사용될 정도로 빈틈없는 옷차림에 어우러지는 누드의 아기는 슈퍼우먼을 꿈꾸는 모든 여성들의 새로운 목표가 됐다.

패션 비주얼에서 여성은 팔, 다리를 보여주고 어깨를 드러내는 것은 예사다. 등과 가슴, 배, 심지어 엉덩이 라인까지 등장한다. 그것도 모자라 교묘하게 몸을 비튼 올 누드의 향연까지. 개방적일 것 같은 미국에서도 누드와 섹스어필 광고에 대한 논란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섹스를 팝니다(sex sells)’의 명분 아래 아슬아슬한 예술과 외설의 사이를 넘나드는 패션업계의 누드는 역시 ‘보고싶다’는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충격제로 계속될 것이다.

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3-11-04 15:44


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suzanpark@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