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력·전문성·지역 인지도 앞서, 낙선돼도 '이름 알리기' 성과

[정치 신인시대-법조인] "법대로" 앞세운 전문가 집단
자금력·전문성·지역 인지도 앞서, 낙선돼도 '이름 알리기' 성과

‘금배지’를 향한 선량 후보들의 직업군 중 가장 빈도수가 높은 분야가 법조계이다. 법조인들은 타 후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금력과 전문성, 지역 인지도 면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는 데다 무료 변론 및 법률 강의 등을 통해 유권자들과 자연스레 접촉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비록 낙선이 되더라도 지역 주민들에게 이름을 알려 잠재 고객을 보다 많이 확보할 수 있다는 현실적인 계산도 변호사들의 총선 출마를 부추기고 있다.

여야 정당들도 총선을 앞두고 부족한 인재풀 충원을 위해 늘 법조계에 눈독을 들인다. 실제 2000년 16대 총선 당선자중 변호사 출신은 40여명에 이를 정도로 단일 직종 중 단연 1위다. 일개 특정 집단만을 위한 이익 대변이 우려될 정도로 높은 비율을 보이고 있지만 이런 분포는 좀체 낮아질 기미가 없다.

내년 총선에서도 노무현 대통령과 친분이 두터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민변) 출신이 열린우리당 간판으로 대거 출마를 준비 중이라 법조인들의 출마 러시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 강민구 한나라당 금천지구당 위원장


"당당함으로 정치정의 구현"
패기있는 영파워, 올바른 국정에 온힘 쏟을 터

내년 총선은 대부분 상향식 공천으로 출마 여부가 결정될 전망이다. 예전처럼 현직 판ㆍ검사 출신의 명망가들이 당 지도부와의 친분으로 낙하산 공천을 얻어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밑에서부터 예선을 거쳐야 하기에 현직들이 ‘가운’을 벗고 나오는 데에는 부담이 따른다.

이런 부담에도 불구하고 현직 중에서는 처음으로 강민구(37) 전 안산지청 검사가 17대 총선을 향해 출사표를 던졌다. 안산에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 뒤 곧바로 한나라당 사고지구당인 금천지구당 위원장 경선에 뛰어들어 연세대 윤방부 교수를 8표 차이로 제치고 ‘영 파워’를 과시했다.

“노무현 정권의 무능으로 각종 정책들이 표류하고 사회는 불안으로 치닫고 있어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구당 경선에서 30대의 정치 초년생인 제가 당선된 것은 이런 혼란스런 국정을 젊고 전문성 있는 후보가 패기있게 개선시켜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더구나 금천지역은 제가 초ㆍ중ㆍ고교를 나온 곳인 데다 수대째 내려오며 살아온 고향입니다. 이 지역 출신으로 법조인의 전문성도 살리면서 흔들리는 국정을 제대로 세워보겠다는 생각에 출마를 결심했습니다.”

강 위원장은 금천지역에서만 20년 가까이 살아온 보기 드문 ‘금천 토박이’다. 시흥초-문일중ㆍ고교를 나와 출신 학교별 총동문회 부회장직도 겸하고 있다. 이어 고려대 법대를 졸업한 뒤 사법고시를 패스해 서울지검 특수부 등 검사생활 10여년 만에 다시 고향인 금천으로 돌아왔다.

그는 서울에서 굳이 연고를 강조하는 것이 득표전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면서도 타 후보들이 갖고 있지 못하는 ‘비장의 카드’는 틀림없다고 강조했다.

“가족은 물론 검찰 내부에서도 총선 출마를 만류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습니다. ‘특수통’으로 소문난 검사로서 법 테두리 안에서도 사회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나름의 역할을 할 수도 있을 텐데, 왜 굳이 험한 길을 선택하느냐는 걱정어린 말씀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검찰 안에서의 개혁도 중요하지만 넘지 못할 한계점은 분명히 있고, 따라서 검찰 밖에서의 개혁을 시도해 보겠다며 설득했더니 수긍하며 격려하는 분위기로 바뀌더군요.”

강 위원장이 출마하게 되는 서울 금천구는 한나라당 출신으로 열린우리당에 합류한 이우재 의원의 지역구. 이 의원은 여기서 두번이나 당선됐고, 민주당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오랜 측근인 장성민 전 의원이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다. 정치 초년병인 강 위원장에게는 모두 버거운 상대인 것은 틀림없다.

“이우재 장성민 두 전ㆍ현직 의원이 인지도면에서 앞서 있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제가 뒤늦게 고향에 돌아온 점도 이름을 알리는 데에는 두세 발걸음 뒤처져 있긴 합니다. 하지만 이 의원이 열린우리당으로 옮겨 가면서 하부 조직원들은 모두 한나라당에 남아 당을 지켰습니다. 지역 여론도 철새 정치인에게는 그다지 좋은 평가를 내리지 않습니다.

또 당선만 되면 지역을 떠나는 다른 정치인들과 달리 저는 고향인 이 곳 금천에 머물면서 지역을 토대로 한 정치를 펼칠 생각입니다. 아직 조직 정비도 제대로 되지 않은 출발선상입니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부분은 해소될 것으로 믿습니다.”

강 위원장은 현역 의원들 중에는 같은 고려대 동문인 이해구 홍준표 의원과 충북의 맹주인 신경식 의원 등과 친분이 두텁다. 이들 선배 정치인들을 상대로 정치 수업을 쌓아가는 중이다.

인터뷰를 마친 뒤 사무실문 앞까지 배웅나온 그의 걸음걸이를 보고 기자는 순간 놀랐다. 그는 3세 때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에 부상을 입어 지금도 보행이 자유롭지 않은 3급 장애인이다.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눌 때도 몰랐고, 평소 TV 토론회 등에 나왔을 때에도 검사 출신답게(?) 거침없이 당당한 태도와 표정에서 장애가 있다는 느낌 등은 전혀 가질 수 없었기에 더욱 뜻밖이었다.

“우리 입법부에도 장애인이 몇 명은 필요하지 않겠어요? 적어도 의석 비율을 따져 몇 %는 있어야 장애인 관련 입법도 보다 적극적으로 진행되지 않겠습니까”라며 너털 웃음을 지어 보이는 그에게 신체 장애란 어두운 그림자는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열린우리당 윤영규 변호사(서울 마포 을 출마예정)

윤영규 변호사(40)는 법무법인 지평 출신으로 최근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개인변호사 사무실을 열고 총선 출마를 위한 준비 태세를 갖췄다. 강금실 법무장관과는 지평과 민변 등에서 함께 활동해 지금도 정기 모임을 갖고 있는 사이. 노무현 대통령과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선 출마시 노 대통령이 청년팀을 맡았을 때 그 일원으로 인연을 맺었다.

“정치개혁 없이는 국가발전도 없고 사회통합도 없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또 제가 걸어온 길도 사회적으로 공적인 분야에 속한다고 보고 그 틀 안에서 자아실현의 계획을 차근차근 수행하자고 마음먹고 있었죠. 그러다 노무현 정권이 출범하고 열린우리당이 정치개혁을 모태로 태동하는 것을 보고 정치개혁을 위해 현실 정치로 뛰어들자고 결심하게 됐습니다.”

윤 변호사는 열린우리당 출범 전인 통합신당 시절부터 발기인으로 참여해 현재 서울 마포 을 지구당위원장 후보에 올라 있다. 아직 중앙당 창당에서 지구당 정비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남아 있어 그때까지는 지금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선량 후보를 향한 준비를 하고 있다.

마포를 택한 이유는 이곳이 윤 변호사의 출신지이기 때문. 지역의 홍익초-경성중ㆍ고를 나온 마포토박이인 점에서 20년만에 고향지역을 찾아 왔다.

“앞으로 우리나라는 동북아의 허브국가가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서울을 세계적 도시로 발돋움시키는데 주요한 발판이 될 상암지구가 이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더 이상 낡고 부패한 정치세력에게 지역정치나 중앙정치를 맡길 수 없는 상황입니다.”

정치개혁을 유달리 주창하는 윤 변호사의 이력을 보면 법대 출신으로 사법고시를 거쳐 법조인이 되는 정규 코스와는 사뭇 동떨어져 있다. 그는 우선 서울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경제학도다. 학창시절 일찍이 학생운동에 전념해 반독재 투쟁의 선봉에 섰다. 이 같은 투쟁이력은 대학을 졸업해서도 계속된다. 노동현장을 두루 거치면서 30대 초반까지 한국노동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해 왔다. 이후 사법고시에 매력을 느껴 1996년 동료보다는 10년 가량 늦은 33세의 나이에 법조인이 됐다.

“1992년 김대중 대통령 후보의 선거를 돕기 위해 민주당에 입당하면서 정치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당시 청년팀에서 잠시 역할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노 대통령이 팀장을 맡으면서 조그만 인연이 시작됐죠.”

윤 변호사는 또 시민단체의 사회활동에도 참여해 삼성 주주총회에서 지배구조 개선 등의 소액주주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참여정부 들어서는 대통령 산하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가까운 정치적 선배로는 강금실 장관 외에 천정배 의원을 꼽는다. 본인의 정치출마에도 천 의원이 상당 부분 도움을 줬다.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과 민주당에 비해서는 인지도가 낮은 것도 사실이고 저에 대한 지역 인지도도 아직은 보잘 것 없는 수준입니다. 하지만 정치개혁을 바라는 민심은 새로운 정당에 쏠려 있고, 세대교체의 필요성도 나이가 많은 분들이 더 느끼고 계신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고정표가 분산돼 한나라당이 어부지리격으로 유리해 지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윤 변호사는 “마포 을 지역은 지난해 12ㆍ19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이회창 후보에게 10%포인트나 앞선 지역으로 이는 개혁에 대한 열망이 반영된 결과”라며 “개혁 민심을 총선으로 연계해 나간다면 승산이 있다”고 밝혔다.

법조인 정계진출 활발…판사보다 검사출신 많아
   

법조인의 정계 출마는 우리 정치사에서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그동안 대통령 후보에 나섰던 이회창 이인제 박찬종 이병호씨 등이 법조 출신이며 노무현 대통령은 법조인 출신 정치인중 첫 대통령으로 기록된다. 4개 정당에서도 2개 정당 대표가 법조 출신이다. 민주당 박상천 대표와 자민련 이인제 총재대행이 그들이다.

법조계 인사중 판사 출신보다는 대체로 검사 출신 의원들이 더 많으며, 판ㆍ검사를 거치지 않고 변호사에서 바로 정계로 뛰어든 인사들도 상당수다. 판사 출신으로는 노 대통령 외에 이회창 이인제 전 대통령 후보들이 있으며 한나라당에서는 황우여 목요상 박헌기 이주영, 민주당에는 추미애, 열린우리당에는 이상수, 하나로국민연합 이한동 의원 등이 있다.

검사출신은 여야 각 당에 고루 분포돼 있으며 한나라당에 가장 많다. 이중 한나라당 홍준표 정형근 안상수, 민주당 함승희 의원 등은 당내에서도 손꼽히는 율사 출신 전략가로 자리매김했다.

내년 총선에서는 민변 출신이 열린우리당 간판으로 대거 출사표를 던지는 등 젊은 변호사들을 중심으로 한 법조인의 출마가 줄을 이을 것으로 보인다. 임영화 이환권 장철우 신평 허진호 송철호 조성래 손광운 임종인 유정동 이종우 김정훈 손범규 홍일표 구충서 이충범 김동성 김기현 윤인섭 변호사들이 호시탐탐 금배지를 넘보고 있다.

염영남 기자


입력시간 : 2003-11-05 10:45


염영남 기자 libert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