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시절 능가하는 취업난, 몇백대 1의 좁은 문 뚫은 '인재'명문대·고학점·토익 고득점·공인자격증에 전문지식까지 갖춰

[취업전선 2060…절망하는 20대 절규하는 60대] 아주 특별한 그들 선택받은 1%
IMF 시절 능가하는 취업난, 몇백대 1의 좁은 문 뚫은 '인재'
명문대·고학점·토익 고득점·공인자격증에 전문지식까지 갖춰


벌써 열댓 번 째. 원서와 자기소개서를 들고 A기업으로 향하는 강모(27)씨의 발걸음은 무겁다. 언제 뽑을지 기약도 없는 수시 채용에 접수한 것까지 치자면 줄잡아 50여 곳의 회사에 원서를 낸 듯하다.

‘서울 소재 4년제 중위권 대학, 인문 계열 학과, 토익(TOEIC) 점수 830점 안팎, 특별한 자격증 없음.’ 지극히 평범한 이력 때문인지 첫 관문인 서류 전형을 통과한 기억조차 아득하다. 처음엔 대기업이나 금융기관을 고집했지만 이젠 뚜렷한 목표도 없다. 이리 저리 뒤적이다 어지간히 조건이 맞다 싶으면 원서부터 접수하고 보는 식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당시를 능가하는 사상 최대의 취업난 시대라는 요즘. 기업들의 채용 경쟁률은 100대 1이 기본이다. 심지어 400~500대 1까지 치솟는 경우도 꽤 흔하다. 대졸자들이 선호하는 대기업이나 정부 기관은 물론 어지간한 중견ㆍ중소기업도 취업의 좁은 문을 통과하기란 녹록치 않다.

확률로 따지자면 취업 문을 통과할 가능성은 기껏해야 1% 정도. 게다가 이건 어디까지나 제비 뽑기 수준의 단순 확률일 뿐이다. 수십 명의 신입 직원을 채용하는데 석ㆍ박사급이나 미 경영대학원(MAB) 학위자, 또 공인회계사(CPA) 등 공인 자격증 소지자가 수백명 씩 몰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영어 성적은 또 어떤가. 이름도 낯선 중소기업의 신입 사원 모집에 토익 900점 이상 지원자가 전체의 10~20%에 달하기도 한다.

이쯤 되면 강씨 같은 평범한 이력의 소유자들은 아예 자포자기의 심정이 된다. 그리고는 생각이 여기에 미친다. 과연 선택을 받는 1%는 어떤 이들일까. 최고 명문 대학 출신에 최고 학점, 토익 만점, 그리고 공인 자격증 1~2개 쯤은 갖고 있는 사람들일까.


명문대 출신 합격률 일반 지원자 4배

은행 등 금융기관은 여전히 대졸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장 중 하나다. 최근 90명의 합격자 선발을 마친 국책은행 산업은행의 신입 행원 모집에는 무려 1만22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경쟁률은 111.4대 1. 당초 은행측은 70명을 선발할 예정이었지만, 명문대 출신, 석ㆍ박사, 공인회계사(CPA), 토익 만점자 등 쟁쟁한 고급 인력들이 대거 몰리면서 합격 인원을 다소 늘렸다. 1차 서류 전형에서 7%(704명)만이, 2차 어학 시험 및 서류 전형 점수에서 다시 2.3%(235명)가 살아 남았다. 그리고 마지막 3차 면접에서 0.9%(90명)가 최종 합격의 영광을 안았다.

합격자 90명의 면면은 화려했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명문대 ‘빅3’ 출신자가 69명으로 76%를 차지했고, 토익 점수 900점 이상이 60명으로 67%에 달했다. 공인회계사(CPA) 6명, 미국 공인회계사(AICPA) 4명, 국제공인재무분석사(CFA) 1명, 금융위험관리사(FRM) 3명 등 공인 자격증 소유자는 14명이었다.

주목할만한 대목은 역시 학교 및 전공, 영어 성적, 자격증 등 사실상 1차 서류 면접에 주요 고려 사항이 되는 외형 요인들이 최종 당락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서울대, 연ㆍ고대 등 3개 대학 출신의 경우 지원자(1,781명) 대비 합격자 비율은 25.8대 1로 전체 경쟁률보다 4분의 1 가량 낮았다.

토익 900점 이상자들은 1,482명 중 60명이 합격해 경쟁률로 보면 24.7대 1에 불과했고, CPA의 경우 역시 135명 중 6명이 선택돼 경쟁률 22.5대 1이었다. 단순 확률로만 비교해 보자면 명문대 출신이냐 아니냐, 공인 자격증 소지자냐 아니냐, 또 영어 성적이 좋으냐 나쁘냐에 따라 각각 합격 확률이 4~5배 가량 차이가 난다는 얘기다.

셋 중 어느 하나도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합격 가능성은 단순 확률 1%에도 훨씬 못 미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채용 방식 달라져도 심사 기준은 대동소이

물론 이는 명문대 출신이라서, 혹은 자격증 소지자라서가 아니라 이들의 실력이 다른 지원자들보다 뛰어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전형 내용을 자세히 살펴 보면 이런 요인들이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산업은행은 90%가 넘는 지원자들을 탈락시키는 1차 서류 전형에서 학교 및 전공에 50%, 학점에 50% 가량의 배점을 부여하고 있다. 학교 및 전공의 경우 OO대학 XX과 100점, OO대학 YY과 98점, TT대학 XX과 97점 등의 방식으로 일렬로 줄을 세워놓고 있다. 여기에 학점 최저선인 B학점(4.5 만점에 3.0)을 넘는 이들을 대상으로 학점 별로 배점을 매겨 총점을 합산한다.

동일한 학점이라면 명문대 출신자들이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는 셈. 여기에 CPA 등 자격증 소지자나 토익 만점자 등 영어 실력이 특출하게 좋은 지원자들에게는 가점이 부여된다. 1~2점의 차이로도 당락이 결정되는 만큼 자격증이 든든한 배경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산업은행의 경우 2차 전형이 별도의 영어 시험이기 때문에 토익 점수는 아주 뛰어나지 않는 한 당락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학교나 학점, 자격증 등의 위력이 단지 1차 전형에서만 발휘되는 것은 아니다. 어학 시험이 치러지는 2차 전형에서도 단순히 시험 성적 뿐 아니라 1차 서류 전형 점수가 더해져 당락이 결정되고, 3차 면접 전형에서 역시 앞선 전형의 성적이 기초 자료로 제공된다. 산업은행 인력개발부 김복규 차장은 “워낙 출중한 인재들이 대거 지원을 하기 때문에 사실 기본적인 조건이 뒤처지는 지원자들은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다”고 인정했다.


대기업의 고압적인 심사 기준

채용 심사 기준 공개를 극히 꺼리는 대부분 대기업 역시 금융기관의 채용 기준과 크게 다르지 않다. “블라인드 면접 등을 강화해 채용에서의 차별 조항을 대부분 없앴다”는 것은 아직은 홍보성 멘트에 불과하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가 입수해 공개한 4대 그룹 중 하나인 A대기업의 하반기 입사 내부사정 기준은 외형 조건이 당락에 얼마나 결정적인 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내부사정 기준에 따르면 출신 학교가 가장 많은 35%의 배점을, 그리고 대학 성적과 어학 성적이 각각 30%의 배점을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 연령 점수 5%도 부여된다.

출신 학교의 경우 5개 그룹으로 나눠 100점에서 60점까지 배점이 이뤄진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KAIST 포항공대 등 5개 대학으로 구성된 1그룹은 100점, 서강대 한양대 성균관대 등 10개 대학이 포함된 2그룹은 90점이 부여되는 식이다. 5개 그룹에 구체적으로 명시된 55개 대학을 제외한 ‘기타 대학’출신 지원자에게 주어지는 점수는 명문대 출신의 절반인 50점에 불과했다.

남성의 경우 ‘1976년 이후 출생한 대졸자’를 응시 자격으로 정한 이 회사는 나이 역시 차별 대상으로 삼았다. 1977년생에게는 연령 점수 10점 만점을 준 반면, 76년생에게는 5점밖에 주지 않았다. 아예 야간대 출신자는 제외한다는 독소조항도 있었고, 우수대학 출신자라면 만 29세(74년생)까지 응시할 수 있는 특혜도 줬다.

이 기준에 따르면 만 27세(76년생) 응시자가 학점 만점(A), 토익 990점 만점을 받았더라도 지방의 ‘기타대’ 출신이라면 310점 만점에 255점에 불과한 반면, 만 26세(77년생)의 명문대 출신은 C학점에 토익 700점을 받았더라도 260점 가량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기타대 출신은 학점과 어학 성적이 아무리 뛰어나도 합격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한 대기업 인사 담당자는 “비단 A기업의 사례가 들춰졌을 뿐, 사실 대부분 대기업들은 아직까지 학력을 중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조업체 취업은 전문 지식 키워라

‘서울 중ㆍ상위 4년제 대학 및 지방 국ㆍ공립 대학교, 토익 850~870점 가량, 학점 4.5 만점에 3.5점 정도, 지원 분야별 전공 가산점.’ (위생용품 업체 유한킴벌리) ‘서울 4년제 대학, 토익 850점 정도, 학점 4.5 만점에 3.0점 정도, 지원 분야별 전공 가산점.’(인터넷 기업 NHN)

이들 기업의 인사 담당자가 밝힌 서류 전형 통과를 위한 기준선이다. 기업들마다 큰 골격에서는 엇비슷하다. 제조업체나 인터넷 기업들 역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학교, 전공, 학점, 영어 성적 등을 중요한 채용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나마 나은 점이 있다면 제조업체나 인터넷 기업들은 대기업, 금융기관 등과 달리 서류 심사만 통과하면 더 이상 학교나 학점, 영어 성적 등을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는 것. 이공계 출신 중심의 기술직 모집 분야가 압도岵막?많은 탓에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 지식이 최우선시되기 때문이다.

특히 분야별 수시 채용이 늘어나면서 경우에 따라 어학 실력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때론 필요 이상의 자격증이 합격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외형 성적에서 합격자들이 상위권에 속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반드시 최상위권은 아니라는 얘기다.

NHN 원덕관 인사팀장은 “학사보다는 석사나 MBA 학위 소지자가, 또 자격증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사람이, 토익 점수가 낮은 것보다는 높은 사람이 다소 우대를 받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과도한 자격증이나 능력은 오히려 회사 입장에서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일단 서류 통과 자격을 갖춘 이들이라면 토익 점수 10~20점을 더 올리기 위해, 혹은 불필요한 자격증을 따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지원 분야에 대한 폭 넓은 지식을 얻는데 주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인사 담당자들의 공통된 조언.

유한킴벌리 인사부 조승호 차장은 “서류 전형을 통과하면 자기소개서나 면접을 통해서 얼마나 지원 분야의 전문성을 보여주느냐가 당락의 관건이 된다”며 “지원할 회사가 어떤 인재를 원하는지, 또 지원 분야에 적합한 자질은 무엇인지를 꼼꼼히 분석하는 것이 단 1%라도 합격 가능성을 높이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빙그레 신성용 인사팀장 역시 “회사측이 서류 전형의 커트라인을 정해놓고 있다고는 하지만 절대적인 기준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학점이나 영어 성적 때문에 미리 포기할 필요는 없다”며 “제조업체의 경우 지원 분야가 아주 세분화해있기 때문에 입사 지원 시 목표를 정확히 설정하고 이에 대비해 전문 지식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영태 기자


입력시간 : 2003-11-06 11:01


이영태 기자 yt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