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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MC 이택림, 브라운관 컴백
iTV '성인가요 베스트 30' 새 진행자로 5년만에 방송 복귀





요즘 웬만한 방송 프로그램 MC는 인기 탤런트나 가수, 개그맨들의 몫이다. 시청률을 의식해 방송 진행 능력보다는 ‘스타성’을 우선하는 풍토 탓이다.

그러나 보니 방송의 저질(低質) 논란이 끊이질 않고, 전문성 있는 진행자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전문 MC 이택림(47)의 브라운관 복귀가 반가운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80~90년대 명 사회자로 이름을 날렸던 MC 이택림이 브라운관에 돌아온다. 그는 최근 가을 개편을 맞아 새롭게 단장한 iTV ‘성인가요 베스트 30(연출 유진영ㆍ토 오후 10시 20분)’의 새 진행자로 발탁됐다. 1998년 6월 막을 내린 K2TV ‘엄앵란 이택림의 사랑방’ 이후 5년 만의 컴백이다. 3년 전부터 부산ㆍ마산ㆍ울산ㆍ진주에 방송되는 ‘MBC 영남 주부가요 열창’을 진행해 왔으나 지역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가수출신 베테랑 MC



iTV의 ‘성인가요 베스트 30’은 성인 가요의 순위를 발표해 성인가요 보급과 대중화에 앞장 서온 가요 프로그램이다. 11월 1일 개편 후 첫 방송에서 이택림은 ‘가수 출신 베테랑 MC’라는 화려한 이력의 힘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는 지금까지 6장의 앨범을 냈지만, 이렇다 할 히트곡이 없어 가수로 그를 기억하는 이는 별로 없다.)

“가수 이름만 한 번 들어도, 데뷔 과정부터 최신곡까지 그에 관한 정보가 줄줄이 떠올라요.” ‘걸어 다니는’ 가요 백과 사전으로 통할 정도이니 대본이 따로 필요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랜만의 TV 출연에 대한 걱정도 기우였다. 이날 출연자인 장미화, 최헌, 진미령, 김범룡, 현숙 등과 가족 같이 어울리며, 시종일관 푸근하고 정감 넘치는 분위기의 방송을 이끌었다. 특유의 재치와 순발력으로 방송을 압도하는 것은 기본이다.

이 프로그램의 유진영 PD는 “마치 한 편의 코믹 버라이어티쇼를 보는 것 같았다”며 “세련되고 원숙한 진행에 거는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현재 청취율 최고의 인기 프로그램인 MBC 표준FM(95.9MHz) ‘즐거운 오후 2시 이택림, 노사연입니다’로 주가를 높이고 있는 이택림은 1978년 데뷔했다. 이화여대 가을축제에서 사회를 보다 방송국으로 스카우트돼 MBC TV ‘노래의 메아리’ 진행자로 처음 얼굴을 알렸다. MC 경력만 27년에 들어선 셈이다.

“토요일 토요일 밤에(MBC), 젊음의 행진(KBS), 영 11(MBC), 유쾌한 스튜디오(MBC), 신혼은 아름다워(KBS)…” 그가 진행해 온 주요 프로그램을 꼽는데도 한참 걸린다. 30대 이상이라면 이름만 들어도 ‘아!’ 할 만한, 장안의 화제였던 프로그램들이다. 특히 이들 프로그램의 초대 MC였으며, ‘젊음의 행진’과 ‘영 11’ 같은 양대 방송사의 간판 프로그램을 동시에 진행했던 이력도 이채롭다.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에 대한 질문에는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답변이 돌아왔다. “신혼은 아름다워”다. “결혼 2년차일 때 진행했던 프로그램이라 특히 재미있었죠. 때마침 저도 신혼이라 출연자들과 결혼 선배로서 터놓고 대화를 나누곤 했어요.” 이택림은 이처럼 낯선 사람들과 어울려 여러 가지 삶을 깨우칠 수 있는 시간을 가장 행복하게 여긴다고 한다.

30년 가까운 방송 생활에 겪은 에피소드는 일일이 풀어놓기도 어렵다. 생방송 ‘화요일에 만나요’를 진행할 당시엔 “내 귀에 도청 장치가…”하며 뛰어든 낯선 남자 때문에 곤혹을 치렀는가 하면, ‘토요일 토요일 밤에’란 쇼 프로그램을 맡았을 때는 담당 PD가 실수로 녹화한 테이프를 지워버려 간밤의 술도 덜 깬 새벽녘에 부랴부랴 다시 마이크를 잡기도 했다.

결혼 전에는 스토커 때문에 진땀 깨나 흘렸다. 기자를 사칭한 한 여자 스토커에게 뺨을 맞은 어처구니 없는 일도 있었다.


후배MC들의 벤치마킹 1호



이렇듯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방송 현장에서 삶의 절반 이상을 보내온 그는, 지금도 자기개발에 열심이다. 후배 MC들이 ‘벤치마킹’ 대상의 1호로 꼽는 그에게 원숙한 진행의 비결을 묻다가는 “공부하라”는 원론적인 얘기만 듣기 십상이다.

데뷔 초부터 신문이나 책에서 발췌한 오만 잡다한 사연들을 빼곡히 적어 놓은 MC노트가 10권이 넘는다. TV 뉴스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등 시사 정보나 교양을 쌓을 수 있는 프로그램도 빼놓지 않고 본다. 어떤 주제든 유연하게 이야기를 이끌어 가기 위해 그가 각별히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바쁜 스케줄에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기를 쓰는 것도 눈길을 끈다.

“하루를 돌아보며 자기성찰의 기회도 가질 수 있고, 생각을 간략 명료하게 정리하는 훈련도 되죠. 순발력이나 재치 같은 타고나는 재능도 중요하지만, 꾸준히 자기를 업 그레이드 하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이택림은 나날이 급변하는 방송 환경 속에서 오래도록 사랑 받는 진행자로 남으려면 끊임없이 공부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70년대 말 함께 방송 활동을 시작했던 동료 중에 아직도 현장을 지키는 사람은 배철수와 노사연 정도”라며 방송인들의 ‘반짝 활동’을 안타까워 했다. 덧붙여 ‘웬 엽기’ ‘한 장난’ 등 올바르지 못한 표현을 마구잡이로 사용하는 방송 용어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방송 채널이 많아지면서 오히려 방송 문화는 더 열악해지고 있다고 봅니다. 시청률에 급급해 저급한 방송도 서슴지 않죠. 아무리 시청률이 중요해도 사람들의 머리를 황폐화하는 방송은 절대로 하면 안됩니다.”

인터뷰 전 그의 재기 발랄한 입담을 기대했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방송인으로서의 자세와 방송의 역할을 강조하는 그의 자세가 너무도 진지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올곧은 방송인으로서 정도를 걷겠다는 이택림은 “한 시대에 기억될 MC로 남고 싶다”고 방점을 찍었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


입력시간 : 2003-11-06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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