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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탐구] 윤도현 밴드

음악에 미처 뭉친 그들, 월드컵 계기 '국민밴드'로 부상





그때가 ‘딱’ 저녁 먹을 시간이긴 했다. 일원동에 위치한 윤도현 밴드의 작업실 근처 식당에서 그들과 저녁을 같이 할 기회가 있었다. 보글보글 맛나게 끓는 김치, 동태찌개. 젓가락이 가기가 무섭게 반찬들은 동이 나고, 맘 좋아 보이는 주인 아주머니가 공기밥 몇 개를 거저 줬다.

그 중에 한명이 어묵 반찬을 ‘덴뿌라’라고 해서 박태희(베이스)한테 바로 욕을 얻어먹고, 다른 쪽 테이블에 앉은 윤도현(보컬)은 자기네만 동태찌개가 없다며 난동이라도 피울 자세였다.

‘거참, 이 사람들 밥 먹을 땐 도통 정신이 없네~.’ 기타리스트로 허준이라는 뮤지션이 새로 영입됐다하여 만난 그들은 당시만해도 추리닝(?) 바람에 마실나온 영락없는 동네 청년들 모습 그대로였다.


외인부대처럼 뭉쳤다



불과 몇 년 전의 일인데 그 사이 윤도현 밴드는 ‘동네 총각들’에서 ‘국민 밴드’로 급부상했고, 보컬 윤도현은 오래 사귄 연인 이미옥과 결혼했다. 아, 그리고 트레이드 마크였던 치렁치렁한 긴 머리도 박박 밀어 짧아졌다.

대한민국을 온통 붉은색으로 물들인 월드컵을 계기로 전 국민적인 그룹으로 거듭난 윤도현 밴드. ‘오~ 필승코리아’는 애국가 이상이었고, 거리의 수십만 관중을 호령하는 윤도현 밴드는 월드컵 열기의 상징이었다. 투박하면서도 거부감을 주지 않는 윤도현의 이미지는 CF모델 섭외 1순위가 됐고, 록 밴드로서는 10여년 만에 처음으로 방송사 연말 가요상도 받았다.

“월드컵때 갑자기 뜨니까 당시 월드컵 특수를 겨냥해 급조된 밴드인 줄 아시는 분들이 아직도 많아요. 밴드 이름은 알지만 정작 멤버 각자에 대해서는 모르는 분들도 많구요.” 때문에 ‘벼락스타’라는 말도 들었다. 그렇지만 순전히 음악이 좋아, 음악에 미쳐 식구들 반대를 무릅쓰고 밑바닥에서부터 차근차근 걸어온 이들에게 ‘급조’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싸구려 ‘빽판’을 들으며 가수의 꿈을 키우던 경기도 파주의 세탁소집 아들 윤도현, 속초에서 과일배달을 하던 청년 김진원(드럼), 룸살롱에서 양주 들고 이방 저방 돌던 웨이터 박태희, 경북 왜관 초가집 출신의 가출 소년 허준(기타)은 오로지 음악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알음알음 뭉쳤다.

돈도 안 되고 알아주지도 않는 음악, 가까이 하지 말자고 다짐 또 다짐했지만 무대에만 서면 끓어오르는 피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마치 만화 ‘외인부대’의 그들처럼.


진보적 음악성으로 대중과 거리감



사실 ‘오 필승 코리아’ 이전에 대중적으로 빅 히트한 곡은 없다. 그리고 이들의 음악에서 처음부터 대중성을 견지하고 만든 곡은 거의 없다.

1993년 ‘종이연’이라는 진보적 음악 동아리에서 활동을 시작한 윤도현은 무작정 나간 통기타 업소에서 ‘이등병의 편지’를 작곡한 포크 가수 김현성을 만났고, 그를 통해 노래는 사회, 현실과 닿아있어야 한다는 걸 배웠다.

그 후 지금까지도 대중성과 음악적 원칙 사이에서 매번 고민하지만 노래가 사회 속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2집 ‘이 땅에 살기 위하여’와 선거를 빗댄 3집의 ‘새로운 약속’, 6집의 미선이 효순이의 죽음을 애도한 ‘꽃잎’, 미국의 패권주의를 강하게 비판한 ‘죽든지 말든지’는 현실에 대해 발언해온 그들의 면모가 유감없이 드러나는 곡들이다.

그러나 이런 음악들에 이들은 ‘참여’나 ‘발언’이라는 거창한 표현 대신 ‘생활노래’라고 이름 붙인다. “록이라는 장르 자체가 무엇에든 억압된 인간의 숨결을 터트려주는 거잖아요. 특별히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애쓰지는 않아요. 그저 우리의 눈높이에서 보고 느낀 것을 소신껏 노래로 외칠뿐이죠.”

작년 9월엔 ‘2002년 남북예술인 평양공연’에 참′?남북문화 교류에도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공연도중 그만 눈물을 보여 보는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기도 했다. 양심수 석방을 위한 공연, 음반 사전심의 철폐 공연 등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리 역시 빠지지 않고 참여하고 있다. 최근엔 문화관광부가 주는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문화혜택 적은 지역 돌며 공연



사회성이 짙은 노래들 때문인지 정치 관련 구설수도 잦았다. 여기 저기 불려 다니고 때 아닌 오해와 근거 없는 소문들도 난무했지만 어디까지나 ‘노래하는 윤도현 밴드’일뿐이란다.

라이브 공연을 많이 하는 밴드로 유명하더니 얼마전 부턴 6개월간 전국 32개 도시를 돌며 문화 소외 지역민을 찾아가는 공연을 진행중이다. 그야말로 대장정이다.

“경기도 파주에서 자랐는데, 들국화나 송골매의 공연을 한번도 가까이에서 본 적이 없어요. 그때 우리 동네에서도 가수들이 공연하면 얼마나 좋을까 늘 아쉬워했죠.” 일부러 문화혜택이 적은 지역을 찾아가고 중소도시에서는 대도시 관람료의 70%만 받는다. 또 해당 지역의 장애인과 소년소녀가장 등은 무료로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진솔함이 있고 청순함이 있다



그들의 음악은 힘있고 진솔하다. 또 투박하지만 매력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완전한 아슬아슬함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움이 박하향처럼 시원하다. 참, 얼마 전에 우연히 지하철에서 윤도현 밴드의 기타리스트 허준을 만났다.

이름을 날리는 유명 밴드의 멤버가 지하철이라니 조금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더니, “예전보다 돈을 좀 더 번다고 달라질 건 없어요. 이젠 밥이 되는 음악을 안 해도 된다는 점에서 자유로울 뿐이지요. 음악도 결국 사람 얘기하는 거 잖아요. 사람들 사이에 있어야 음악이 보이죠.” 그 흔한 선글라스 하나 끼지 않은 채 얼굴 가득 웃음 지으며 말하는 그를 보고 있자니 그들 음악의 생명력이 어디서부터 기인하는지 대번에 짐작됐다.

시간과 함께 곰삭아서 더 귀해지는 오래된 술처럼 생각있는 록 그룹으로 더욱 값진 음악을 선사할 윤도현 밴드. 진정한 록을 향해 씩씩하게 달려가는 외인부대들의 거침없는 변주곡은 오늘도 계속된다.



글 김미영 자유기고가 minju@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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