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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균의 개그펀치] 팁 돌려 받은 딱한 사연


물론 요즘에야 경기 침체니, 장기 불황이니 하는 활자들이 신문 1면을 차지하고 있는 까닭에 남을 먼저 배려하는 것에 둔해졌는지 모르지만,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타국으로부터 인심이 후한 나라라는 평을 받아왔다. 내가 어릴 적 심부름으로 몇 번 오갔던 야채가게 아줌마가 늘 까만 봉지위로 콩나물머리가 뾰족뾰족 튀어나올 때까지 열심히 담아줬던 걸 생각하면 이 말이 거짓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어떻게 된 연유인지 이상하게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팁문화’에 낯설어한다. 사실상 ‘팁(TIP)문화’라는 말조차 사용되지 않는다. 해외여행을 한번쯤 다녀온 사람이 그렇듯 나 또한 해외여행을 갈 경우 팁을 위해 1달러 짜리 잔돈을 여유 있게 준비한다.

그러나 정작 우리나라의 호텔과 음식점 등을 이용 할 경우 팁을 주는 경우가 흔치 않다. 게다가 최근에는 호텔이나 괜찮다는 음식점에서는 서비스료나 봉사료가 10% 정도 의무적으로 포함되어 있으니 간혹 불친절한 서비스를 받아 약간의 불쾌감이 있더라도 내가 먹은 음식값에 10%를 더해 돈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경우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보통 외국에서 한번에 건네는 팁은 1달러 선을 넘지 않는다. 이를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1,200원 정도의 돈이다.

유명 외국 연예인이 우리나라에 여행을 와 하룻밤에 수백 만원이나 하는 특급호텔 스위트룸에서 숙박을 했다고 가정하자. 그가 팁을 위해 호화로운 룸 안에 있는 침대 머리맡에 가지런히 놓아둔 1,200원을 상상해보자. 조금 보태서 말하면 정말이지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떠올려진다. 아마도 호텔 청소원은 그 외국인의 쪼잔함에 욕을 해댔을 지도 모른다.

대개 우리나라의 유명 연예인이 음식점을 찾을 경우 먹은 음식값보다 더 많은 돈의 팁을 지불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연예인=부자’의 개념을 당연시 여기는 우리나라 사람들 때문인지 그들이 건네는 만 원짜리 몇 장도 단 한번 거절하지 않고 받아 챙기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만약 우리나라 연예인이 외국에 나가 100달러를 팁이라고 건넨다면 외국인들은 너무 놀라 그 연예인을 현지 경찰에 범죄단체 조직원으로 오해해 신고할 지도 모른다.

유명한 개그맨A가 팁 때문에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후배 개그맨이 식당을 개업, 축하차 방문한 음식점에서의 일이다. 그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자신을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하는 식당 종업원들에게 몇 만원씩의 팁을 주었다. 처음에는 홀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에게만 팁을 줬다가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는 주방에서 일하는 주방장에서부터 설거지를 하는 아줌마에게까지 팁을 줬다고 한다.

그리고는 개업 축하차 모인 동료 연예인들과 술을 깨자며 시작한 고스톱판에서 A는 지갑의 돈을 모두 털렸다고 한다. 그제서야 집에 갈 대리운전비가 없다는 것을 안 A는 체면 구겨질까봐 차마 후배들에게 돈 꿔달라는 소리도 못하고 안절부절 하다가 생각 끝에 주방으로 슬그머니 들어갔다고 한다.

그리고는 아주 점잖게 이렇게 말했다. “아주머니 좀 전에 드린 팁 다시 저한테 돌려 주시면 안될까요?” 그 후로 A씨는 아무도 모르게 몸 속 구석구석에 비상금을 꼭 지참하는 버릇이 생겼다고 한다.

나라마다 각각의 다른 문화가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니 우리나라에도 ‘팁문화’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겠다. 만약 우리나라도 이탈리아처럼 공공화장실을 사용 할 경우에도 팁을 내는 것을 법으로 정한다면 성격 급한 한국 사람들의 오줌보를 크게 만드는 수술이 시급 할테니 말이다. 다만 1달러에 해당하는 1,200원 정도의 팁을 받고 오히려 발끈할 수 밖에 없는 한국 사람들의 정서가 내심 씁쓸해질 뿐이다.

입력시간 : 2003-11-11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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