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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화살 정조준, 가위 눌린 정치권
심상찮은 대선자금, 수사행보에 정치판 전전긍긍
여야 득실 저울질, 청와대·검찰 사전 기획설도






두 개의 화살이 활 시위를 떠났다. 이젠 그 화살이 과녁에 얼마나 정확히 적중하느냐만 남았다. 중앙에 꽂히면 궁사(弓士)는 모두에게 칭송을 받지만 과녁을 비껴 가거나 가장자리에 걸리면 비난과 지탄의 대상이 된다. 지금의 정치현실이 그렇다. 궁사는 대선 자금을 수사하는 검찰이고 과녁은 정치권이다. 두개의 화살은 지난 대선의 노무현 이회창 두 선거 캠프의 심장부로 날아들고 있다.

검찰이 정치권을 향해 모질게 마음을 먹은 것 같다. SK 비자금과 관련, 한나라당 최돈웅 의원을 통해 100억원이 유입된 것을 밝히면서 당시의 핵심 실무자들을 향해 칼날을 겨누더니 이제는 노무현 캠프도 정 조준하고 있다.

그간 중립검찰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던 열린우리당이 편파수사라고 항의하는 수준이다. 강금실-송광수 검찰팀도 살아 있는 권력에는 손대지 못한다며 강한 불만을 제기했던 한나라당은 조금 누그러진 듯하지만 여전히 경계의 끈은 놓지 않고 있다.

검찰발 초강력 태풍의 눈은 송광수 검찰총장과 안대희 중수부장. 이들은 수사 방향을 묻는 질문에는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주문하고 있다. “기다리면 다 알게 될 것”이란 원론적인 의미보다는 “이번 사건을 간단히 끝내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지가 더 강하다. 이른바 한국판 ‘마니폴리테’ (Mani Puliteㆍ깨끗한 손)의 서막이 서서히 오르고 있는 것이다.


열린우리당, "앗 뜨거워!"



검찰은 11월6일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에게 거액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는 김성철 부산상공회의소 회장 자택과 회사 사무실에 대해 전격적으로 압수수색을 벌여 사과상자로 10개가 넘는 압수물품을 확보했다. 최씨는 대선 당시 부산지역 선대위 회계 책임자를 맡아 부산ㆍ경남지역 기업인들로부터 거액의 대선자금을 모금한 장본인격 인물.

여기에 김 회장도 부산지역 건설업자들로부터 관급공사 수주 청탁을 받고 300억원을 모아 최씨에게 전달했다는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의 의혹 제기로 주목을 받고 있는 상태였다. 이 때문에 검찰이 김 회장을 통해 노 후보 캠프의 불법 대선자금을 겨냥하고 있다는 분석이 검찰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노 후보 캠프에 대한 불법 대선자금 수사가 사실상 시작됐다는 것.

대검 중수부 관계자는 “부산지역 선대위에서 사용했던 계좌가 발견되지 않고 있지만 부산지역 선대위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통해 회계장부와 계좌 등을 확보하는 방안도 고려 중” 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당시 노 후보측 선거캠프에서 사용한 차명계좌가 2개 이상이라는 점을 밝혀내고 일부 계좌가 부산지역 선대위 자금관리에 사용됐던 계좌인지 여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검찰 수사선상에 올라 있는 김 회장의 경우 자신이 운영하는 K토건 건물 일부를 노 후보측 선대본부에 무상 임대해줬으며 최근에는 열린우리당 창당준비위 부산시사무실이 김 회장 회사 소유의 건물에 입주한 사실 등으로 한나라당 등 야당의 집중 의혹을 받아 왔다.

검찰은 김 회장이 대선 당시 부산 선대위 회계책임자였던 최도술씨와 부산지역 상공인을 연결, 대선자금을 모금했을 뿐 아니라 당선 이후에도 자금을 제공한 기업들의 청탁을 최씨에게 전달한 연결고리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가정에 무게를 두고 조사중이다.

물론 김 회장은 “최씨와 개인적 친분이 있어 용돈조로 100만원을 준 것이 전부이며 이외에 어떠한 불법 정치자금도 건넨 사실이 없다” 며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이상수 의원은 2개 이상의 차명계좌를 사용했다는 검찰 발표와 관련, “대선 때 빌렸던 차명계좌를 반환하면서 다른 명의로 바꿔 갖고 있었던 것에 불과하며 액수도 아주 미미하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검찰은 이들 계좌에 입금된 기업들의 불법 대선자금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일부가 비자금에서 흘러나온 단서를 포착하고 조만간 2∼3개 기업에 대한 계좌추적에 나설 방침이다. 안대희 중수부장도 “이상수 의원이 모르는 계좌가 있을 수 있다” 며 이 같은 수사배경을 우회적으로 밝혔다. 아직은 시작에 불과하지만 결과에 따라 열린우리당의 상당수 의원들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한나라당, 검찰수사 협조 쪽으로 급선회?



여권을 겨냥한 검찰수사를 둘러싸고 한나라당의 표정은 슬며시 바뀌었다.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가 형평성을 잃고 있다며 수사에 협조하지 않던 방침을 철회할 태세다.

심규철 법률지원단장은 “검찰소환에 불응하고 있는 재정국 실무자 2명을 검찰에 자진출두케 해 수사에 협조토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그동안 검찰수사에 협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검찰수사가 공정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취지로 대선자금 수사를 방해하겠다는 뜻이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심경 변화는 크게 두가지 이유에서다. 노 대통령의 측근 비리에 대한 특별검사제를 도입키로 한 마당에 당과 관련된 대선자금 수사를 기피할 명분이 없다는 점과 검찰 수사가 비단 한나라당만을 겨냥하지는 않을 것이란 판단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아직은 안심할 수만도 없다. 비록 노 후보 캠프로 검찰 수사가 조여들고 있지만 그 결과를 속단하기 어렵다. 한나라당의 편파수사라는 주장 때문에 억지 춘향식으로 형평을 맞추고 있는 듯한 의혹을 지우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한나라당은 일단은 검찰의 수사에 협조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동시에 진행되는 노 후보측 대선자금 수사과정에 더욱 촉각을 모으고 있다. 장광근 의원도 “한나라당의 의혹어린 시선을 피해가기 위한 검찰의 제스처일 수도 있다” 고 경계했다.

검찰 수사를 바라보는 한나라당 내부에는 이렇게 양 갈래의 시각이 존재하지만 대체로 검찰 수사를 지켜보자는 쪽이 우세한 편이다. 노 후보 캠프도 적법한 자금만으로 선거를 치렀을 것이라고는 믿기 힘들다.

검찰이 한나라당만 압박하고 여권에 대해서는 미진한 수사로 면죄부를 주는 듯한 태도를 보이면 오히려 검찰 스스로 명예를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에 한나라당은 검찰에 대해 편파수사 주장보다는 대선 자금의 엄중 수사를 주문하는 편이 낫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에 비해 더 큰 유탄에 시달릴지도 모른다. 불법자금의 규모와 과거 선거관행 등을 감안하면 마니폴리테의 주 타깃이 한나라당 쪽에 더 가깝게 보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측이 제기하는 청와대의 검찰과의 사전기획설도 여기에 기인하고 있다.


盧 '읍참마속'심정으로 정치개혁?



실제 청와대는 이탈리아의 마니폴리테 사례에 많은 관심을 갖고 사례를 연구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청와대가 주의를 기울인 부분은 마니폴리테 이후의 사회ㆍ경제적 변화였다. ‘검찰 발 정치개혁’을 기대하면서도 마니폴리테 이후의 이탈리아 경제 침체가 기업체의 정치자금 수사와 얼마나 연관성이 있는 지 여부에 대한 것들이었다.

때맞춰 노 대통령은 11월5일 청와대에서 각계 원로지식인을 초청한 자리에서 조선 태종의 이야기를 꺼냈다. 태종 이방원이 누군가. 왕권강화와 아들인 세종의 치세를 위해 공신과 측근들을 모조리 중앙정치에서 제거했던 인물이다. 노 대통령은 거듭 태종론을 강조한 것은 현재 진행되는 검찰 수사와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적군격인 한나라당은 물론 아군이자 최측근이라도 자신을 대신한 검찰 손으로 도려내겠다는 뜻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청와대와 노 대통령이 준비된 계획을 진행시키든 아니든, 검찰과 모종의 사전기획을 했던 안했던 간에 지금의 수사 상황을 보면 이미 노 대통령이 감놔라 배추놔라 할 상황은 아닌 것 같다. 최도술씨와 이상수 의원, 정대철 고문으로 향하는 검찰 수사는 브레이크 없이 내달리는 경주차와 같다. 옆에서 또는 위에서 제지할 수 있는 분위기도 되지 않는다.

이탈리아 마니폴리테처럼 현재 안대희 대검중수부 팀은 검찰 사상 유례없이 국민 지원과 호응을 얻고 있다. 더 이상 좌고우면 할 이유도 없다. 수사대상과 규모와 범위, 여야의 형평성 고려 등 모든 수사의 제약조건도 마니폴리테 앞에는 더 이상 용납되지도 않는다. 모든 것은 검찰 손에 달렸다.






■ 마니폴리테란?





이탈리아 부패구조 허문 '검찰 혁명'



1992년부터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마니폴리테' 캠페인은 검찰이 정ㆍ재계 전반의 부패구조에 대해 성역 없는 사정 칼날을 세운 세계 검찰사의 유례없는 일로 기록되고 있다.

마니폴리테의 시작은 2차대전 종전무렵부터 시작된 이탈리아의 부패 역사에서 기인했다. 종전 직후 구 소련의 지원을 받은 공산당 세력을 저지하기 위해 우파 정당들은 미ㆍ영 등 서방국가와 로마 교황청의 지원 아래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이 과정에서 연립 우파정당들은 거대 국영기업을 중심으로 한 경제계와 이들의 그림자 속에 숨어 있는 거대 마피아 세력과도 유착관계를 형성했다.

기민당과 사회당 등 우파 연합 세력이 40여년간 장기 집권하면서 정ㆍ재계의 부정부패는 고착화했으며, 정당들은 정치자금 조달과 조직 유지에 주요 대기업과 폭력조직을 활용했다. 그 대가로 불법행위에 눈을 감거나 오히려 후원까지 해주었다. 그러나 정경유착의 검은 연결 고리는 밀라노에서 시작된 한 정치인의 뇌물수수 사건을 기점으로 산산이 부서지게 된다.

92년 2월 밀라노지방검찰청이 밀라노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르던 사회당 간부를 뇌물수수혐의로 체포한 뒤 정치권 수사를 각 지방 검찰별로 확대했다. 밀라노의 피에트로 검사를 중심으로 수사는 급진전됐고 현직 총리는 물론 이탈리아 최대 국영기업체가 정기적으로 정치권에 상납한 뇌물 비리도 밝혀졌다. 1년이 넘는 수사과정에서 국회의원 150여명을 포함한 3,000여명의 유력 정치인과 기업인이 수사대상이 됐다. 이 가운데 무려 1,400여명이 체포돼 1,000명 이상이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성역없는 수사에 맞서 "더럽지 않은 손은 없다"며 역공세를 취했던 사회당 베티노 크락시 전 총리마저 약 300억원의 불법정치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받고 해외망명을 떠났고 최대석유그룹 ENI의 가브리엘 카그리아리 회장은 형무소에서, 페루자 그룹의 라울 가르디니 회장은 구속영장 집행 직전에 각각 자살했다.

마니폴리테 성공에는 국민의 전폭적인 성원과 언론의 협조가 주 요인으로 꼽힌다. 당시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예비구금제 폐지를 결정하자 피에트로 검사가 사표를 던지고 로마와 밀라노 등 대도시에서 수십만 항의시위로 맞서 정치권의 항복을 받아내기도 했다.

2년여에 걸친 대대적인 부패척결수사는 당시 이탈리아 경제에는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경제계 인사들의 무차별적 단죄가 경제활동을 마비시켜 경제성장률을 이례적으로 마이너스로 돌리는 부작용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국영기업 등 대기업체의 기업구조 투명화와 경영합리화 조치를 이끌어내면서 외국과 민간 자본 등의 투자의욕을 고취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와 함께 정치권에 대한 부패척결 캠페인을 사실상 국민과 함께 함으로써 국민의식을 한 차원 높이고 국가에 대한 자긍심을 높인 점도 향후 국가경쟁력 제고의 큰 자산이 됐다.




염영남 기자 liberty@hk.co.kr


입력시간 : 2003-11-12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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