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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통행식 강의 "하품만 나요"
교수·학생간 커뮤니케이션 실종, 토론없는 강좌식 수업에 한계



송석호 한양대 교수(물리학과)는 자신의 강의가 평소 어느 교수 못지 않게 학생들에게 멋진 감동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해 왔다. 강의 수준 역시 평균 이상은 될 것이라고 믿어 왔다. 그러나 아니었다. 지난 봄 학기 대한교육협의회가 한양대 물리학과를 대상으로 실시한 평가 작업을 통해 현실은 나타났다. 학과장을 맡고 있던 송 교수가 ‘강의 클리닉’을 자청했던 것이다.

‘강의 클리닉’이란 교수의 강의를 비디오로 촬영 한 후, 교육 전문 컨설턴트가 전문 지식의 정도, 강의 기법, 강의 태도 등에서의 장단점을 분석하고 그 약점에 대해 처방을 내려주는 강의 진단 서비스다. 클리닉을 받는 데에는 특별한 준비가 필요 없다는 교수학습개발센터의 조언에 따라 평소대로 강의에 나섰던 게 실수였을까?

강의실에 두 대의 카메라가 설치됐다. 한 카메라는 강의 시간 2시간 동안 자신의 모습을 촬영했고 또 다른 카메라는 학생이 반응하는 모습을 녹화했다. 또 분석 전문 요원은 강의실 중간에 앉아서 송교수의 말과 태도를 단 1초도 빠짐 없이 모니터링하는 등 강의 전체 분위기를 철저히 파헤쳤다.

얼마 후 비디오 테이프 1개와 두툼한 강의 분석 자료가 송 교수에게 배달됐다. 송 교수는 곧 바로 집에 가져 가서 식구들과 함께 TV앞에 앉아 비디오를 틀었다. 자신의 강의 모습을 보고 아들딸이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솔직한 말이 듣고 싶었던 것. 큰 아이는 아빠가 얼마나 강의를 잘하는 지 두고 보겠다고 작심을 한 듯 TV 가까이 앉아 강의를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테이프를 튼 지 채 10분도 안돼 가족들이 하나 둘씩 자리를 뜨면서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지루하다. 누가 누구를 가르치는지 모르겠다”, “강의할 때도 평소에 말하듯 일방적이고 우물우물 거린다”, “강의 준비 좀 잘해라. 학생들의 인내력이 대단하다” 등등 최악의 반응이었다.

송 교수는 얼굴이 후끈 달아오르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마침내는 송 교수 스스로도 자신의 강의 모습을 30분 이상 봐 줄 수 없을 만큼 지루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강의할 때는 잠시 머뭇거린 것으로 느꼈는데 그 간격이 지나치게 길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져 놓고는 2초도 못 참고 스스로가 대답을 해 버리는 성급함은 인내력 제로의 상태였다. 강의 역시 토론 중심으로 학생들의 관심과 참여를 북돋우는 게 아니라, 일방 통행식의 논리 전개와 지식 열거 뿐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닫게 됐다. ‘클리닉 비디오 감상 소감문’까지 송 교수가 쓴 데에는 사연이 있었던 것이다.


교수들 표현에 능하지만 대화는 취약



최근 한양대 교수학습개발센터는 2003년 1학기 동안 ‘강의 촬영 및 분석 서비스’를 도입해 교수 11명의 강의 내용을 영역별로 분석했다. 그 결과, 교수들은 프리젠테이션(표현)에 능한 반면 커뮤니케이션(대화)에는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화 중심의 토론식 수업 진행보다는 혼자서 일사천리로 ‘떠드는’ 일방 통행식의 진행이 주류를 이루는 것으로 조사됐다. 토론은 없고 강좌만 있을 뿐이다. 요즘 학생들의 감성에 비춰 봤을 때는 참여가 없는 편이 차라리 당연하다는 게 센터측의 전언이었다.

센터에 따르면 11명의 평균 점수는 5점 만점에 3.59점이었으며, 3개 영역 중 가장 우수한 영역은 프리젠테이션(3.79점), 가장 취약한 영역은 커뮤니케이션(3.29점)인 것으로 각각 조사됐다. 세부 분석 결과, ‘프리젠테이션’ 영역의 경우 언어ㆍ비언어적 표현은 우수한 평가를 받은 반면, 수업 중 학생들의 동기를 유발하거나 시청각 자료를 활용하는 기법은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커뮤니케이션’ 영역에서는 가장 중요한 지표인 ‘발문(發問:질문 유도)’과 ‘반응’에서 약점을 드러냈으며, 특히 토론의 분위기를 이끌어 내지 못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학생들의 이름을 불러 주거나 눈을 맞춰주는 등의 방식으로 친밀감을 형성해 질문과 대답을 자발적으로 유도하는 기능에서는 평균 이하인 것으로 평가됐다. 반면 새로운 개념을 기존 지식과 연관짓는 ‘학습촉진’ 기법은 우수한 편이었다. ‘수업설계’ 영역은 교수 역량이 다른 영역에 비해 고른 것으로 평가됐다.

그 결과, 낵層湧?3개 영 중 ‘커뮤니케이션’ 영역의 평가 점수가 최저에다 편차도 가장 큰 것으로 드러났다.


최고라는 교수 자의식도 토론수업 걸림돌



강단에서 토론식 수업이 안 되는 이유는 과연 무엇 때문일까. ‘참여정부’ 들어 토론 자체가 사회 대중문화의 주요 코드로 자리잡은 상황에서 유독 강단에는 왜 토론 문화가 시들한 것일까. 무엇보다 교수와 학생간의 세대차가 큰 것이 그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한 마디로 사제지간에 코드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권위 의식이 강한 아날로그 교수와 민주적 성향의 디지털 학생, 둘 사이의 사고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어 대화 소통에 장애 가 초래된다는 분석이다.

유영만 한양대 교수(교육공학과)는 “교수 대부분이 토론식 수업을 이끌지 못하는 것은 수년간 가르쳐 온 학과 내용에서만은 스스로 최고 권위를 가진 전문가라는 인식이 최대의 걸림돌”이라며 “학생들의 동의나 반론 등이 있을 수 없다는 자의식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학생들 역시 이 같은 교수의 권위적인 위세에 눌려 강의 시간에 토를 달 분위기가 아니다”며 “학생측으로 보자면 말을 꺼낼 틈을 주지 않고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강의에 그저 수긍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학생들에게도 문제점은 있다. 어떤 문제에 대해 보다 빠른 결론을 내리려는 인스턴트식 성향이 강해 교수가 물음과 답변을 동시에 던져주길 바라는 기대심리가 강하다.

따라서 스스로 한 번 더 고민하려는 경향이 적다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디지털 세대의 약점이 그대로 노정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다 빡빡하고 무리한 강의 일정 탓에 토론식 강의가 이뤄지기 어렵다는 실정도 곁들여 진다. 하루 동안 나가야 하는 진도가 무리하게 잡혀 있다 보니 학생들에게 토론의 여유를 줬다가는 거기에 맞추기 어렵다는 변이다.


사제간 코드 맞추기, '재미'에 포인트



그러나 최근 신세대 교수 사이에서 일고 있는 강의 스타일은 크게 변화하고 있다. 강의 진행 분위기도 사뭇 달라지고 있다. 이들 교수사이에서는 “N세대 학생들은 15초 간격으로 웃겨야 수업에 집중하고 강의 내용을 따라온다”는 말이 공공연할 정도다. 신세대 교수들의 강의에서 ‘즐거움(fun)’이라는 요소가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일로의 추세다.

특히 한 학기가 끝나고 다음 학기에 수강신청이 감소해 폐강하는 위기를 맞지 않으려는 신경전이 치열한 강단에서는 학생들이 강의에서 느끼는 ‘재미(fun)’라는 요소가 어느 때 보다 중요한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아날로그 세대가 학문을 대해 취한 ‘진지한 작업(hard work)’의 개념은 빛을 잃고, 디지털 세대가 선호하는 ‘재미’라는 개념이 그 자리를 채워가고 있다.

강의 첫 5분이 그 성패를 좌우한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5분 안에 강의 전체를 한 마디로 요약하고 압축할 수 있는 상징물(메타포)을 어느 정도 효과적로 제시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이 시대 교수의 과제로 떠 오르기도 한다. 인문학 강좌를 진행해 가면서 마치 곤충을 해부해 나가는 듯 비유를 드는 모습 같은 것은 이전의 대학 강좌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풍경이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교수가 과연 몇 개의 메타포를 활용할 수 있느냐에 유능 여부를 판가름 하는 풍경도 이제는 낯설지 않다. 교수들 역시 강의를 통해 완성된 지식 ‘덩어리’를 던져 주기 보다는 채 여물기 전 상태의 지식을 제공해 학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자 한다. 논리의 빈 공간은 학생들이 채워 가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신세대 교수들은 더 이상 강단에 서서 혼자 ‘절대적 진리’만을 얘기하려 하지 않는다. 그 보다는 전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토론을 통해 타인의 다양성을 공감할 수 있는 ‘상대적 사리(事理)’를 추구한다. 이들은 입모아 말한다.

“멍청한 선생은 말로만 떠들고 테스트만 한다. 훌륭한 선생은 설명할 줄 안다. 수퍼 티처는 시범을 보여준다. 위대한 티처는 영감을 준다”고. 학생들이 가려워하는 부분을 적절하게 긁어주고, 강의 내용을 끊임없이 목말라 하도록 만드는 강의 기법을 개발하는 것은 이들에게 지워진 새로운 임무인 셈이다.

‘논쟁(debate)보다 대화(dialogue)’를 추구하는 N 세대식 커뮤니케이션법이 대학 캠퍼스 공간에 맞춰 운신의 묘를 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 건 서울시립대(사회학과) 교수는 “강의의 생산성을 높이고 학생들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방법은 대화기법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라며 “교수들 역시 스스로 토론과 대화기법을 개발해 활용하면서 강의에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의식을 높이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장학만기자 local@hk.co.kr


입력시간 : 2003-11-12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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