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행, 감금, 그리고 강간" …패륜의 극치일부 청소년, 게임 즐기기 위해 일본어 배우기도

[르포] 일본판 야게임 기승
"미행, 감금, 그리고 강간" …패륜의 극치
일부 청소년, 게임 즐기기 위해 일본어 배우기도


한동안 잠잠했던 일본판 ‘패륜 게임’이 또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야게임’ ‘H게임’ ‘18禁 게임’ 등으로 알려진 이 같은 게임들은 강간이나 근친상간 등 패륜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는 게 특징이다. 때문에 한때 검찰이 집중 단속에 나선 적이 있고, 그 덕에 자취를 완전히 감춘 듯 했다.

그러나 최근 이런 ‘야게임’이 단속의 고삐가 느슨해진 틈을 타 부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더해 일본문화 전면 개방이라는 호재까지 작용하면서 요즘에는 유명 포털사이트까지 게임 서비스에 동참하고 있는 추세다. 얼마 전에는 패륜 게임을 모방한 모바일 게임이 휴대폰을 통해 서비스돼 물의를 빗기도 했다.

대학생 이모씨(26)는 얼마 전 황당한 경험을 했다. 컴퓨터 부품을 사기 위해 용산 전자상가에 들렀다가 ‘야게임’을 판매하는 브로커를 만난 것. 이 남성은 “일본에서 직수입한 야게임이 있다”며 은근히 따라오기를 권했다. 호기심이 동한 이 씨는 “어떤 게임이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 남성은 상가 한쪽에 위치한 골목으로 이 씨를 안내했다. 이 씨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상당수의 사람들이 CD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이중에는 교복을 입은 중고생들의 모습도 눈에 띠었다. 이 씨는 여러개의 CD중 두개를 골라 집으로 가져왔다.

이 씨는 그러나 이곳에서 구입한 CD가 게임을 하기 위한 용도는 아니라고 말했다. 게임용이라기보다는 소장용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씨는 “게임만 하려고 했다면 용산상가에서 구입할 필요가 없다”며 “네티즌끼리 파일을 교환하는 사이트에 가 보면 이 같은 게임을 얼마든지 다운받을 수 있다”고 귀띔했다.


200여 종류 국내 유통

이씨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일본판 ‘패륜 게임’은 종류만 줄잡아 200여개. 이 중 대부분은 자료를 공유하는 와레즈 사이트 등을 통해 쉽게 다운받을 수 있다. 일본의 일루션사가 제작한 ‘미행’ 시리즈가 대표적인 예. 일본 성인용 게임 중 국내에 가장 잘 알려진 게임 중 하나인 ‘미행’ 시리즈는 미소녀를 미행하는 게 게임의 스토리다. 이렇게 해서 끝까지 미행하는데 성공하면 상대 캐릭터를 강간할 수 있다.

이밖에도 지하철이나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 수단이 게임의 배경인 ‘인터랙트 플레이’, 학교 운동장이 배경인 ‘데스브라 운동회’ 등도 네티즌들에게 잘 알려진 ‘패륜 게임’이다. 이 같은 게임들은 장소만 다를 뿐 스토리는 대부분 상대방을 성추행이나 훔쳐보기 등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이로 인해 한때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일본어 학원에 등록하는 게 유행이 되기도 했다. 야게임을 즐기기 위해서는 일본어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이마저도 필요치 않게 됐다. 한국어 버전으로 변형된 패치버전이 인터넷을 통해 유포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특징은 이 같은 게임들이 점차 양성화, 공공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야게임은 인터넷의 ‘뒷골목’인 와레즈 사이트나 용산전자상가 등을 통해서만 음성적으로 유통됐다. 그러나 당국의 허술한 감시를 틈타 요즘은 꽤 알려진 게임포털조차 이 같은 게임을 제공하고 있다. 게임의 리뷰를 빌미로 게임을 소개하면서 직접 다운받을 수 있는 링크를 걸어놓는 것.

얼마 전에는 KTF가 일본판 패륜게임을 모방한 모바일 게임을 1년 가까이 서비스하다 물의를 빗기도 했다. 문제가 된 게임은 성인용 어드벤처 게임인 ‘스토커 X’. 모바일 컨텐츠 업체인 O사가 제작해 지난해 11월부터 서비스해 오고 있다.

그러나 말이 어드벤처지 실상은 일본의 야게임인 미행과 유사하다. 스토킹 대상인 여성을 미행할 뿐 아니라 임무를 완수하면 여성 캐릭터의 성행위 장면을 은밀히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가 불거지자 KTF측은 해당 게임을 즉시 서비스에서 제외시켰다. 그러나 어떻게 이 같은 게임이 휴대폰을 통해 서비스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유저들은 허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휴대폰으로 게임서비스 물의

남편 명의로 아이들에게 휴대폰을 개설해줬다는 김모씨(40)는 “인터넷과 달리 휴대폰은 부모 명의로 가지고 다니는 아이들이 많다”며 “어떻게 이런 저질스런 게임이 1년 가까이 서비스될 수 있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전문가들은 청소년들이 야게임에 탐닉할 경우 모방범죄와 같은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실제 전남 순천에서는 일본판 패륜게임을 모방한 범죄가 발생, 이들의 우려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전남 순천경찰서는 얼마 전 일본판 패륜게임을 “실제로 해보자”며 친구 누나를 성폭행한 혐의로 공익요원 서모씨(20) 등 두 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인터넷을 통해 우연히 알게 된 일본판 패륜게임을 접한 후 실제로 해보기로 의견을 모았다. 일단 생각을 정한 두 사람은 친구의 누나인 김모씨(22)의 자취방에 몰래 침입해 번갈아 성폭행하고 현금 4만원을 빼앗아 달아났다.

경희대 권준모 교수는 “현실에서 불가능한 온갖 변태적인 행위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야게임은 일반 동영상보다 자극의 정도가 심하다”며 “잘못할 경우 청소년들에게 모방 범죄를 야기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휴대폰 게임도 한계 넘었다"
   

일본판 패륜 게임의 난립도 문제지만 모바일 게임의 수위도 이미 한계를 넘고 있다는 게 시민단체들의 지적이다. 이동통신 업체간의 경쟁이 강화되면서 보기에도 낯뜨거운 모바일 게임들이 아무런 제재없이 서비스되고 있다는 것이다.

SK텔레콤은 현재 10여개의 성인용 모바일 게임을 서비스하고 있다. 제목을 보면 웬만한 포르노를 방불케 한다. '서바이벌 섹스' '쇼걸' '모바일 비아그라' 등 낯뜨거운 제목 일색이다. KTF나 LG텔레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KTF의 경우 현재 '벗겨봐 알럽키스' '섯다 섯어' '섹트리스' 등 20여종의 성인용 모바일 게임을 서비스하고 있다.

LG텔레콤도 '멜랑꼴리' '미소녀 마작' '섹시 고스톱' 등 10여개의 게임을 서비스하고 있다. 서비스되는 게임의 이름은 다르지만 선정적 내용이나 노출 수위는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일부 게임의 경우 성행위까지 묘사하고 있어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모바일 컨텐츠 업체의 난립을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한다. 막대한 제작비가 소요되는 일반 게임과 달리 모바일 게임은 저렴한 비용으로 고소득의 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바일 게임에 대한 심의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녹색소비자시민연대의 한 관계자는 "영상물등급위원회는 그 동안 모바일 게임에서만큼은 유독 관대한 입장을 보여왔다"며 "이로 인해 각종 선정적 콘텐츠들이 아무런 제재없이 시중에 유포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영등위측도 어느 정도 상황을 인식하는 분위기다. 영등위의 한 관계자는 "그 동안 성인 인증이 가능한 휴대폰이라는 점을 고려해 등급분류 기준을 포괄적으로 적용해 왔던 것은 사실이다"며 "현재 관련 부서와 대책을 마련 중이다"고 말했다.

이석 르포라이터


입력시간 : 2003-11-13 13:50


이석 르포라이터 zeus@newsbank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