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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타운] 프리다
멕시코의 대표적 화가 프리다 칼로
극적인 삶과 예술, 그리고 사랑






유명한 예술가의 일생을 영화화할 때 힘든 점은 그 작가의 작품과 인생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다. 특히 예술 작품과 삶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경우 작품이 주는 감동을 영화를 통해 어떻게 더 깊이 이해하도록 만들 것인지 혹은 새로운 해석을 부여할 것인지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프리다>가 2002년 가을 미국에서 개봉되기 전까지 프리다 칼로에 대한 전기는 100편이 넘게 출판됐다. 그 중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되는 헤이든 헤레라의 전기가 등장 한지 20여년이 지나는 동안 1985년 스페인에서 프리다의 사진들을 조합해 만든 장편영화(Paul Leduc의 )가 유일했다.

프리다와 같은 고향 출신인 셀마 헤이엑이 프리다를 영화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기 전부터 마돈나가 프리다역으로 거론되기도 했고,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가 제니퍼 로페즈 주연의 영화를 만든다는 소문도 있었다.

셀마 헤이엑은 프리다를 연기하기에 누구보다도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여겨진다. 헤이엑은 놀랍게도 프리다의 작은 체구와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를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프리다의 열정과 아름다움, 강인함, 그리고 신체의 모든 결함에도 불구하고 강한 섹슈얼리티가 발견되기 때문이다.

또한 헤이엑이 할리우드에 진출해서 보여준 이국적인 관능미는 칼로의 자화상에 등장하는 고통과 쾌락의 매혹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혁명과 예술, 고통과 환희



1907년에 태어났지만 멕시코 혁명(1910-21)과 자신의 탄생을 결부 짓기 위해 1910년으로 출생년도를 변경하기도 했던 멕시코의 대표적인 민족주의 화가 프리다 칼로는 1954년에 생을 마감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을 고통스러운 육체와 함께 해야만 했다. 1925년 버스를 타고 학교에서 돌아오던 프리다는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한다.

이 사고로 프리다는 서른 두 차례의 수술과 셀 수 없이 많은 보조기구를 착용해야 했고, 심지어 죽기 몇 년 전에는 오른쪽 다리를 잘라내야 했다.

그러나 프리다는 ‘퍼즐 맞추기’라고 농담을 할만큼 웃음과 여유를 지니며 자신의 조각난 육체를 통해 열정적으로 자아와 세상을 탐구한다. 자신을 초현실주의자로 부르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은 “꿈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현실을 그린다”라고 얘기했으며 유럽의 회화적 전통보다는 멕시코의 전통 미술(특히 레타블로-조그만 주석판에 그리는 종교적 그림)을 적극적으로 차용한 독창적인 작품들을 남긴다.

이런 측면에서 영화에 등장하는 사고장면은 프리다의 ‘환상적인 현실’에 가장 부합하는 부분이다. 사고가 일어나기 전 18살의 프리다는 헤겔과 마르크스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남자친구의 말보다는 다른 승객의 금가루를 신기하게 바라보며 손으로 만져본다. 사고 장면은 사운드 없이 전복되고 부서지는 버스 안의 모습으로 처리된다.

끔찍한 사고 현장의 모습이지만 동시에 금가루들이 피와 먼지와 더불어 프리다의 얼굴과 몸에 뿌려져 있고 사방으로 흩어져 햇볕에 반짝이는 아름다운(아이러니지만) 이미지이기도 하다. 이런 아이러니한 아름다움은 프리다의 수많은 자화상에서도 발견된다.


프리다와 디에고? 프리다가 아니고?



프리다 칼로는 살아있던 시절 벽화의 권위자였던 남편 디에고 리베라(알프레드 몰리나)의 그늘에 가려 사후의 명성에 비하면 그다지 빛을 많이 받지 못한다.

특히 멕시코 내에서보다 국제적으로 더 많이 알려졌다. 에드워드 G. 로빈슨(갱스터영화로 유명한 할리우드 배우)이 프리다의 그림을 구매했고, 앙드레 브레통을 비롯한 프랑스 화단이 그녀를 주목했으며, 레닌을 피해 멕시코로 망명한 레온 트로츠키가 프리다의 그림에 반했을 뿐 멕시코 내에서 그녀를 진정한 예술가로 인정해 주는 사람은 남편 리베라뿐이다.

영화에서 프리다는 교통사고 이외에 그녀의 삶을 극적으로 만든 또 다른 사고는 디에고와 사랑하고 결혼한 일이었다고 토로한다. 1929년 22살의 프리다는 20살 연상의 디에고와 결혼하면서 자신에게 충실하길 약속해달라고 말한다. 그러나 디에고는 결혼 기간 내내 바람을 피고 마침내 프리다의 동생과도 관계를 맺는다. 그 일로 1939년 이혼을 하지만 이듬해 다시 결합하게 된다.

프리다의 고뇌하는 삶과 예술에 대해 외형적으로 충실하고 동시에 영혼에까지 진실된 영화를 기대한 관객에게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부분은 ‘프리다’보다 ‘프리다와 디에고’가 영화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점이다. 분명 그녀가 디에고를 사랑하고, 분노를 뛰어넘어 모성적 관대함으로 포용하기에 이르지만, 이들의 로맨스가 영화의 주제였다면 왜 제목을 ‘프리다’로 붙였는지 의아하다.

특히 80년대 페미니즘의 성장과 더불어 신화적 인물로 자리매김되고, 포스트모더니즘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숭상되며, 세계적으로 엄청난 팬(우리나라의 한 인디 밴드가 ‘프리다 칼로’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을 만큼)을 확보하고 있고, 심지어 ‘프리다 종교’가 형성되어 있는 현재에 굳이 ‘프리다와 디에고’에 집착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페미니즘 영화이론과 프리다 칼로



페미니즘 영화이론과 연관지어 생각해 볼 때 주목할 사항은 여성인 프리다가 남성의 시선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육체와 존재의 능동적인 관찰자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나아가 육체와 테크놀로지(당시로는 새로운 의학 기술과 장비를 몸으로 경험하고 몸의 일부로 생활했어야 했고, 미국의 기계문명 현상을 주시한 측면에서)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자신의 몸을 통해 끊임없이 내부와 외부, 자연과 테크놀로지,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무너뜨린 점이다.

페미니즘이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이) 왜 프리다에서 새로운 섹슈얼리티의 가능성과 중요성을 발견했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프리다의 이 현실과 환상의 조합, 여성과 남성, 인간과 자연의 혼성, 바라보는 시선과 보여지는 사물의 융합은 <프리다>를 통해 영화적으로 재현되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사에서 그리고 영화의 역사에서 정말 드물게 등장하고 거론되는 ‘여성’ 화가와, 식민지와 민족주의라는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 제국주의 미국보다도 더 잘 모르는 ‘멕시코’의 사회 현실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의미 있는 영화다.



채윤정 영화평론가 blauthin@empal.com


입력시간 : 2003-11-13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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