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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타운] 올드보이
과잉의 낯설음과 폭력적 충동
15년간의 감금과 금기의 영역을 둘러싼 두 남자의 미스터리






<올드보이>는 아마 한국영화사상 제작 전부터 가장 많은 관심을 보여 온 작품일 것이다. <공동경비구역JSA>과 <복수는 나의 것>의 감독 박찬욱과 최고 남성 배우로 꼽히는 최민식과 유지태의 결합만으로도 뭔가 대단히 괜찮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예상을 하게 만들었고, 다른 영화들이 여러 가지 마케팅을 펼치며 제작과정의 일거수일투족을 발표하고 있을 때, 단지 ‘두 남자의 비밀’이라는 것과 ‘장도리 액션’으로 명명되는 최민식과 수십명의 갱 단원들의 싸움 장면이 공개되었을 뿐이다.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고 보는 영화의 시작은 언제나 흥미로울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시작은 크레딧도 없이 비트가 빠른 음악을 배경으로 오대수(최민식)가 빌딩 옥상에서 어떤 사내의 넥타이를 잡으며 윽박지르는 짧은 장면에서 순식간에 플래쉬백으로 건너뛴다.

곧 전혀 다른 얼굴(15년 전 과거의 얼굴)의 술주정뱅이 오대수가 영문도 모른 채 허름한 여관방같이 보이는 사설 감옥에 갇히게 되고, 관객은 15년의 고민, 증오, 복수의 시간을 같이하며 오대수와 함께 그 미스터리의 실마리를 해결하기 위해 두뇌게임을 시작한다.


살인을 담보로 한 게임과 전지적 관찰자



여기까지 <올드보이>는 오대수를 바라보는 시점에서 그를 관찰하게 된다. 그리고 관객이 바라보는 시점에서 다른 누가 오대수를 관찰하고 있다는 것을 서서히 알게 된다. 오대수의 전지적인 관찰자이며 곧 복수의 대상이 되는 이 인물은 바로 오대수를 8평의 감옥에 15년간 가둔, 108평의 펜트하우스에 살고 있는 이우진이다.

감금에서 풀려나와 우연히 들른 일식집에서 오대수는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는 최연소 일식 요리사 미도를 만나게 된다. 미도의 집에서 지내게 된 대수는 건너편 아파트에서 우진을 만나게 되고 그는 태연하게 웃으며 자기가 감금한 이유를 5일 안에 밝혀내면 스스로 죽어주겠다고 제안한다. 대수는 그 이유를 알기 위해 그리고 사랑하는 미도를 잃지 않기 위해 위험하고 비밀스런 게임에 빠져든다.

최민식이 오대수로는 가장 적절한 선택이었듯이, 지금까지 따뜻한 눈빛과 포근한 미소로 부드러운 남성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유지태는 아주 복합적인 캐릭터인 이우진을 연기하기에 최선이라고 보여진다.

아주 세련된 정장은 차갑고 냉소적이지만 슬픔이 있고, 어느 순간 분노를 극심한 폭력으로 노출하거나, 허름한 잠바에 벙거지 모자를 눌러쓰고 아저씨같은 편안함을 보여주는 순간 가장 잔인한 모습이 되어버리는 이우진은 수많은 스릴러와 미스터리에 등장했던 수수께끼 인물 중에서 (마지막 비밀이 밝혀지기전까지) 감정적으로 가장 미묘한 인물로 생각된다.


과잉의 영화



감독은 보도자료에서 ‘과잉의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히고 있다.

드라마, 색채, 음악 등 모든 부분이 지나친 영화라고 부연설명하고 있는데, <올드보이>에서 가장 지나쳤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감정의 과잉’이다. (제작사에서 비밀을 발설하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를 했기 때문에 언급할 수 없는) 마지막에 진실(관객에게는 비밀)을 알게 된 오대수가 토해내는 감정은 이 만큼의 ‘과잉’이 과연 어떤 영화에서 보여진 적이 있었는지 자문하게 만든다.

또한 ‘과잉의 영화(cinema of excess)’라는 표현은 블록버스터, 공포영화, 혹은 멜로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와 다양한 시대에 걸쳐 종종 등장했던 표현인데, <올드보이>는 멜로드라마와 공포, 스릴러 등의 다양한 장르가 혼합되어 (각각의 퍼센티지는 다르지만) 있으면서 피와 폭력의 과잉과 더불어 감정(특히 자학과 자해)의 과잉이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이 ‘과잉’이라는 것이 영화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과잉이 가지고 있는 가치와 의미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일단 <올드보이>는 일반 상업영화 혹은 주류 영화들이 지키고 있는 ‘적당함’ 혹은 ‘공식과 규칙’에 대한 불만으로 ‘지나침(excess)’ 혹은 ‘위반(transgression)’을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특정장면의 테마음악으로 잠시 나와야 되는 음악은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검정, 보라, 빨간색은 영화 전반에 지배적으로 등장하고, 폭력은 시작과 끝의 구조가 아니라 더 극한 지점과 저점을 오르락내리락하고, 종결을 맞아야 하는 지점에서 또 다른 비밀이 시작되고 있으며, 연속편집(continuous editing)과 시선일치(eye line match)의 규칙을 지속적으로 위반한다. 그러나 이런 외형적인 과잉은 두 주인공을 둘러 싼 내부의 과잉과 평행하게 유지되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과잉, 금기, 위반



프랑스의 철학자 조르쥬 바타이유는 20세기 중반에 부르주아적 도덕성과 자본주의의 금기에 대한 도전으로 ‘과잉’을 찬미했다. 이 과잉은 ‘금기(taboo)에 대한 위반’을 동반하게 되는데 여기서 주로 등장하는 것이 섹스와 죽음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영화의 형식과 스타일면에서 적용되는 과잉을 포함하고 <올드보이>의 비밀을 둘러싼 미스터리는 놀랍게도 바타이유의 사유와 유사한 점을 보이고 있다. 두 남자의 비밀은 모두 타부 혹은 금기의 영역에 속해있고, 그 금기에 대한 위반은 ‘무한한 폭력적 충동’을 불러일으킨 다는 점이다.

프로이드부터 바타이유에 이르기까지 정신적 고뇌와 비극적 상황은 금기의 문제에서 출발한다. “오늘만 대충 수습해서 살자”라는 의미에서 오대수라는 인물도, 돈으로 뭐든지 살 수 있는 위치에 있던 이우진도 ‘금기의 드라마’의 주인공들이다.

이 금기를 알고 있는 채 혹은 모르고 있는 채 위반을 한 대가는 끔찍한 정신적 고뇌와 육체적 고통을 수반한다. 결말이 피빛이 아니라 하얀색(설원)인 것은 눈과 다른 무엇을 구분할 수 없듯이 금기와 위반을 구분할 수 없는 곳에 오대수와 미도가 놓여져 있다는 것으로 읽혀진다.

감독의 말대로 <올드보이>는 “낯선” 영화이다. 그리고 낯설음은 우리가 적절한 공식에 맞춰 만들어진 영화들로 익숙해졌기 때문에 이 영화의 ‘과잉의 미학’에 대해 그렇게 느끼는 것일 것이다.

시네마 단신
  




동숭아트센터 <애정만세 4색전>





동숭아트센터에 있는 예술영화전용관인 하이퍼텍 나다에서는 21일부터 12월 4일까지 14일 동안 '애정만세 4색전'을 연다. 사랑에 관한 영화 4편은 이란에서 건너온 순박한 아프칸 청년의 결혼 프로젝트 <도메>, 2001년 깐느 영화제 개막작이기도 했던 17세기의 비밀스런 사랑이야기 <바텔>, 브래드 앤더슨 감독의 코미디 <해피 엑시던트>, 재치 있는 시나리오와 독특한 배우들의 연기로 칸느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패스트 푸드, 패스트 우먼>등이다.


<집으로…> 아르헨티나서 개봉



이정향 감독의 <집으로…>가 한국 영화 최초로 아르헨티나에서 지난 10월 30일 개봉됐다. <집으로…>는 중남미에서 한국 영화에 대한 별다른 인지가 없는 상황 속에서 개봉했음에도 불구하고 개봉 첫 주 9개 관에서 1만477명을 동원했다.





채윤정 영화평론가 blauthin@empal.com


입력시간 : 2003-11-19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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