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루기 '제2라운드' 본격화, 계파간 충돌로 번져총선 공천 앞두고 당내 큰 싸움 예고, 재창당 시나리오까지

한나라 崔·徐의 전쟁
힘겨루기 '제2라운드' 본격화, 계파간 충돌로 번져
총선 공천 앞두고 당내 큰 싸움 예고, 재창당 시나리오까지


원래 정당이란 것이 시끄러운 동네였던가? 한나라당과 민주당, 열린우리당 등 여야 3당이 공히 내부의 의견 차이로 어수선하다. 예전의 일사분란한 모습은 간 데 없고 지도부를 향한 성토에서 제 목소리 내기에 이르기까지 현안별로, 또 계파별로 이해가 충돌하면서 당사 안팎이 시끄럽다.

이를 놓고 3김씨에 이어 이회창 전 총재와 같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보스급 정치인이 현실 정치에서 비켜서 있는 데 따른 자연스런 정치 현상이라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지역을 기반으로 한 공천권과 자금지원 등이 사라진 지금 정당 내부의 불협화음은 어찌 보면 당연하고, 다원적 리더십 정착을 위한 예고된 과도기라는 시각이다.

여야 3당 중 가장 엇박자가 심한 곳은 과반 의석의 한나라당. 상대적으로 다양한 성향의 의원들이 혼재돼 있는 구조적인 문제도 없지 않겠지만, 지도부 내부에서부터 터져나오는 이견과 충돌은 다른 당보다 조금 더 심한 편이다.

특히 당 개혁을 고리로 당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재단하거나 ‘한방의 만루홈런’으로 지위 역전을 꿈꾸는 세력, 정치적 입지를 새롭게 구축하기 위한 모호한 정치행위 등이 엇갈리면서 한나라당은 마치 선장 잃은 난파선처럼 격랑에 휩싸여 있다.


최병렬-서청원-홍사덕, 3각 신경전

한나라당의 이상 기류는 최병렬 대표와 서청원 전 대표간의 물밑 힘겨루기에서부터 감지된다. 같은 조선일보 기자 출신으로 출발한 뒤 각각 민정-민한당으로 나뉘어 정계에 입문해 3당 합당으로 다시 한솥밥을 먹게 됐지만 지난 6ㆍ26 전당대회의 당 대표 경선에서 일합을 벌였던 앙숙 같은 사이다. 일단 최 대표가 판정승했지만 둘간의 진짜 파워게임은 이제부터 시작인듯 하다.

처음에는 최 대표와 홍사덕 총무간 갈등이 표면화했다. 이에 서 전 대표 측은 대놓고 홍 총무를 지원한 것은 아니지만 ‘적의 적은 동지’차원에서 은근히 홍 총무 편을 들고 나섰다.

최 대표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홍 총무는 중ㆍ대 선거구제와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을 거듭 촉구했다. 불씨차원의 개헌론이었지만 서 전 대표 진영에서 기름을 끼얹자 당내 중진 의원들이 가세해 사태는 더욱 급진전됐다. 이 와중에 최 대표와 서 전 대표, 강재섭 의원 등 지난 경선에서의 1~3위 중진들이 조찬회동을 가진 뒤 서 전대표 측에서 ‘개헌론 합의’이야기를 꺼내 놓자 최 대표는 부랴부랴 이를 진화하기 위한 대응책에 나섰다.

최 대표는 11월14일 예정에 없던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지금 개헌론이 정면으로 부각하는 것은 절대로 옳지 않다”며 “개헌 논의는 내년 총선 뒤에 하는 게 제일 좋다”고 못박았다. 그는 “내년 1, 2월이면 대선자금 수사가 큰 고비를 넘기고 정치개혁이 마무리되는 만큼 그 때 (개헌론을) 이야기 하는 것을 어떻게 막겠냐”고 여지를 두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주장에는 당위성 면에서 지금 이 시점의 개헌론은 절대 불가라는 원칙을 천명함과 동시에 일종의 서 전 대표 측에 대한 경고성 메시지로 이해되고 있다. 최 대표는 이날 사석에서는 “정말 말귀를 못 알아 듣는지 아니면 일부러 그러는지…”라며 “중진이라고 예우해서 한 말을 언론에 흘려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당연히 서 전 대표를 겨냥한 공박이다.

잠시 주춤하기는 했지만 그대로 있을 서 전 대표 측도 아니다. “민주적 정당에서 지도부가 개헌을 한다 안 한다고 하기보다는 공식 논의 과정을 거치는 게 바람직하다”고 물러서지 않았다. 한 측근은 “(대표가 반대한다고 하더라도) 의원들이 개헌 논의를 하라면 하고, 하지 말라면 안 하겠는가”라고 반문하며 개헌론을 고리로 한 최 대표 흔들기를 멈추지 않았다.

최-서 간 신경전에 홍 총무는 한발 물러서 있는 자세이긴 하다. 하지만 비례대표 출신으로 지역구가 없는 홍 총무 입장에서는 내년 총선의 안정적인 담보를 얻기 위해서라도 ‘모종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계산하고 있는 듯 하다.


총선 공천을 둘러싼 마지막 승부

두 전ㆍ현직 대표 경쟁의 핵심은 내년 4월 총선 공천에 있다. 서 전 대표 측에서는 최 대표가 공천 개혁을 명분으로 당을 사당(私黨)화 하면서 자신의 계파 의원들을 물갈이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갖고 있다.

실제 최 대표는 서 전 대표 측의 의혹어린 시선과는 상관없이 총선 물갈이 계획을 착착 진행시키고 있다. 먼저 실제 시행과정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는 상향식 공천제도의 손질이다. 대신 공천심사위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쪽으로 당규를 개정할 방침이다.

지역별 경선에서 1,2위를 한 후보자를 놓고 공천심사위에서 최종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다. 이 경우 현역 의원이라도 탈락할 수 있고 경선에서의 압도적 1위라도 중앙당에 의해 탈락할 수도 있다.

한 당직자는 “상향식 공천제가 현역 의원에게 상당한 프리미엄이 집중돼 사실상 유명무실한 제도로 흐를 공산이 크기에 물갈이를 위해서라면 중앙당 개입이 불가피하다”며 “그래야 당내 기반이 없는 신진 인사들의 영입도 가능해진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물갈이를 위한 명분은 선다. 하지만 그 속내를 놓고 서 전 대표 측을 비롯, 다른 중진들이 가만있을 리가 없다.

한 관계자는 “당 개혁의 상징인 상향식 공천을 포기하는 처사”라고 비난하는 한편, 상당수 중진의원과 비주류 측에서는 “최 대표의 당 장악 기도가 드러났다”고 몰아붙이고 있다. 실제로 당 지도부 안대로 공천제도가 변경되면 공천심사위 소속 인사를 누가 정하느냐에 따라 당의 색깔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당연히 현재로서는 최 대표가 유리한 상황이다.

아직 서 전 대표는 행동을 자제하고 있다. 섣불리 나섰다가는 반 개혁주의자로 몰릴 우려가 있어서다. ‘정중동’의 자세이지만 은근히 대선자금 수사사건 등을 빌미로 당 해체 후 재창당 시나리오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내년 초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로 어차피 여야가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될 경우 당연히 한나라당 쪽 피해가 더욱 클 것이기에 이참에 대 국민을 향한 사죄의 메시지로 구 정치를 단절하는 목소리를 내보자는 뜻이다. 물론 그 속에는 당 해체 뒤 새롭게 전당대회를 열게 되면 당 대표나 지도부 구성을 다시 해야 하는 기대치가 포함돼 있다.

서 전대표가 본격 행동에 나설 경우 한나라당에는 피할 수 없는 대결전 ‘2라운드’가 막이 오른다. 그 시기가 그리 멀지 않다.

염영남 기자


입력시간 : 2003-11-20 11:11


염영남 기자 libert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