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대통령과 특별한 관계, 대선자금 수사선상에 오른 최 측근

강금원, 또 다른 폭탄인가?
노대통령과 특별한 관계, 대선자금 수사선상에 오른 최 측근

대선바람이 거셌던 지난해 4월, 노무현 대통령이 광주를 시작으로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바람을 일으키며 대선 후보로 확정되자 10여개 안팎의 기업이 줄을 대려고 나섰다.

그러나 폭풍과도 같았던 ‘노풍’ (盧風)이 5월 중반에 들면서 서서히 가라앉고 그 자리를 ‘정풍’ (鄭風ㆍ정몽준 후보 바람)이 잠식하기 시작했다. 지지도 추락과 함께 10여개 기업 가운데 절반 이상은 발을 빼려는 태도를 보였다.

민주당의 노무현 후보 흔들기, 청와대의 정몽준 지원설, 후보단일화 협상 결렬설 등 노 후보에 대한 악재가 터져나올 때마다 재계는 정치판 흐름을 분석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초지일관 노무현 후보 뒤에 서 있던 기업도 없지 않았다. 강금원(54) 회장의 창신섬유가 바로 그런 기업이다.


"막말도 할 수 있는 사이"

강 회장은 정치인 노무현과 인연을 맺은 뒤부터 줄곧 그를 후원해온 부산지역 대표적 기업 인맥이자 측근이다. 그는 지난 6월 기자와 만나 “언제든지 청와대로 가 노 대통령에게 거리낌 없이 모든 얘기를 할 수 있다”며 “만날 때 서로 가족의 안부를 물은 뒤 본 이야기에 들어갈 정도로 친밀한 사이”라고 밝혔다.

그는 최근에도 일부 언론과의 회견에서 노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해 “난 측근 중의 측근으로 마음 터놓고 서로 막말도 할 수 있는 사이다. 대통령의 측근 중 가장 부자다. 대통령도 내가 성격이 가장 곧은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다. 무슨 얘기해도 정도로 할 놈이라고 믿으니 신경도 안 쓴다”고 할 정도다. 그는 실제로 노 대통령과 부부 동반으로 골프를 치는 등 노 대통령과 막역한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자금을 훑고 있는 검찰이 이런 강 회장을 내버려둘 리는 만무하다. 조사 결과, 그는 대선 직전 민주당에 20억원을 빌려주고, 노 대통령의 운전기사를 지낸 선봉술(전 장수천 대표)씨와 억대의 금품이 오간 정황이 포착돼 검찰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소위 ‘나라종금’ 사건이 본격적으로 터져나온 지난 6월까지만 해도 거의 베일에 싸여 있었다. 노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사실 자체도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다. 지난해 국정감사(국방위)에서 한나라당 강삼재 의원이 군납 모포 낙찰 특혜의혹과 관련해 창신섬유를 거론했지만, 강 회장은 언론이나 정치권에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가 언론에 얼굴을 드러낸 것은 노 대통령 취임후 첫 측근비리 관련 사건으로 기록된 ‘나라종금’에 대해 노 대통령이 해명 기자회견(5월28일, 6월2일)을 가질 때 즈음이다. 노 대통령의 후원회장인 이기명씨의 용인 땅 문제가 계속 불거지자 6월4일 강 회장이 나서 ‘용인 땅 1차 매매계약자가 자신임’을 밝힌 것이다.

뒤이어 그는 문재인 민정수석, 이기명씨,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등에게 “그릇이 안되면 물러나라”며 포문을 열었다. 심지어 노 대통령의 ‘정신적 대부’인 송기인 신부를 향해 “정치에 너무 나서지 말라”고 직언, 단숨에 전국적인 인물로 부상했다.

강 회장과 주변 인사들에 따르면 당시 상황은 돌발적인 것이 아니다. 강 회장은 올해 초 조성래 변호사, 송기인 신부 등이 참석한 부산 정개추 모임에 갔다가 그를 알아본 한 인사가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전라도가 설치느냐”고 한 말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지난 5월 청와대를 방문했을 때 노 대통령에게 ‘탈 호남’식 신당 창당과 문 수석 등 부산 인맥을 비판했고, 그 자리에서 노 대통령과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는 것. 청와대의 한 인사는 “강 회장은 대통령을 만날 때마다 시중 여론을 가감없이 전달해 대통령이 무안해 할 때가 있다”고 말해 강 회장이 노 대통령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해줬다.


90년대 중반 盧와 인연, 스폰서 자처

전북 부안이 고향인 강 회장이 부산과 인연을 맺은 것은 80년대쯤이다. 전주공고를 졸업한 뒤 75년 서울 성수동에서 영신염공이란 회사를 차렸다가 80년 에 부산으로 사업기반을 옮긴 것이다. 창신섬유의 모태가 된 강원섬유를 부산 사상구 덕포동에 세운 게 사실상 그가 부산 사람으로 행세할 수 있게 된 이유다.

창신섬유는 자회사인 ㈜캬라반의 ‘캬라반 담요’로 유명세를 탄 뒤 최근에는 패션분야와 무세균섬유를 개발하는 등 첨단사업 쪽에도 영역을 넓히는 등 1,000억원대의 알짜 중견기업으로 자리를 잡았다. 강 회장은 또 2년 전 충북 충주시에 있는 남한강 골프장(현 시그너스 골프장)을 인수하고 중국 선양((瀋陽) 염색합작공장에도 투자하는 등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부산에서는 강 회장이 입바른 소리를 잘하고 화통한 성격을 지닌 인물로 알려졌다. 좀처럼 남 앞에 나서기를 싫어하지만 한 번 작정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라는 게 주변의 평가다.

강 회장이 노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금부터 7~8년 전, 부산 롯데호텔에서 열린 전ㆍ현직 의원 모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때 강씨는 선거에서 떨어진 노 대통령과 자리를 함께 하면서 ‘생각이 바른 정치인’이라 판단했고, 그 후로 자주 만나 밤을 세우며 술도 마시고 토론도 하면서 노 대통령의 ‘스폰서’를 자처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6월 중순 강 회장이 용인 땅 의혹과 관련해 폭탄발언을 한 뒤 서울 L호텔에서 만났을 때 그는 “대선 때 한나라당을 지원하는 기업이 있으면 ‘단 얼마라도 노 후보에게도 내라’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협박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강 회장은 최근의 검찰 수사와 관련, “대선 전에 이상수 의원이 ‘당 금고에 돈이 없다’며 부탁을 해와 20억원을 빌려줬고 나중에 이자까지 쳐서 돌려 받았다”고 해명했다. 선봉술씨와의 돈거래에 대해서는 “집이 경매에 넘어가고 돈이 없다고 징징거려 약간 도와준 것 뿐”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20억원은 우리당 창당자금?

그러나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은 강 회장이 이 의원에게 전달한 돈이나 선씨를 돕기 위해 준 돈이 의문투성이라며 ‘측근 비리’ 특검에 강 회장 문제를 포함시키겠다는 기세다.

강 회장이 이 의원에게 돈을 건넨 시점이 정부보조금 129억원을 받기 하루 전이므로 굳이 20억원을 빌릴 필요가 없었다는 점을 그 근거로 든다. 그 돈을 열린우리당 창당자금과 연결시키기도 한다. 그가 11월1일 노 대통령 내외와 시그너스 골프장에서 골프를 한 것도 사전에 ‘입맞추기’ 위한 자리였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또 그가 일부 시인했듯 지난 대선에서 노 대통령의 자금 조달에 기여한 것으로 알려져 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노 대통령이 또다른 구설수에 오를 가능성도 없지 않다. 강 회장이 선씨 등에게 건넨 자금이 차명계좌를 통해 대선자금으로 전달됐거나 당선축하금으로 넘어갔을 경우가 노 대통령에게 가장 아픈 측근비리가 될 것이다.

야당은 일단 선씨가 최도술씨와 강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계좌가 개인 계좌가 아닌 부산지역 노 캠프 대선자금의 주요 루트일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강 회장은 노 대통령과의 관계를 아무런 이해나 계산속이 없는 ‘아름다운 관계’라고 했다. 그 아름다운 관계가 끝까지 통할지 국민은 검찰 수사를 지켜보고 있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3-11-20 11:15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