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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 음식이야기] 밥으로 通한 유쾌한 푼수들
'미술관 옆 동물원' 김치찌개
한국인 최고의 반찬, 함께 먹으며 싹 틔우는 알콩달콩 사랑얘기






미술관 같은 여자 춘희(심은하). 결혼비디오 촬영기사인 그녀는 식장에 종종 나타나는 국회의원 보좌관 인공(안성기)를 남몰래 짝사랑하고 있다. 그런 작은 설레임 외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던 그녀의 일상에 엄청난 일이 닥친다. 갑작스레 나타난 낯선 남자로부터 집을 점령당한 것이다.

동물원 같은 남자 철수(이성재). 말년 휴가를 애인 다혜(송선미)와 보내기 위해 그녀의 자취방을 찾았는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다혜가 있어야 할 방에는 머리가 부스스한 낯선 여자가 버티고 있고, 다혜는 어디로 갔는지 연락조차 되지 않는다. 나중에야 간신히 만난 다혜는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고 선언한다. 에잇, 화난다. 갈 곳도 없는데 일단은 버티고 보자.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은 이렇게 순정만화와도 같은 황당한 설정으로 시작된다. 갑작스런 침입자를 쫓아내지도 못할 만큼 ‘어리버리한’ 여자 춘희와 막무가내인 철수는 이렇게 원치 않는 동거를 시작한다. 당연한 일이지만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사고방식과 습관 때문에 끊임없이 다투게 된다. 철수는 툭하면 춘희에게 ‘너도 여자냐’고 면박을 주고, 춘희는 제멋대로에다 처음 보는 자신에게 반말을 써대는 철수가 못마땅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에게는 결정적인 공통점, 사랑하는 사람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어느새 인공과 다혜를 주인공으로 설정한 시나리오를 함께 써나가게 된다. 그러나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 역시 순탄치는 않다. 철수는 바라만 보며 애태우는 춘희의 사랑을 어이없어 하고 춘희는 사랑을 ‘본능’으로만 해석하는 철수를 이해할 수 없다.


부딪히고 무뎌지며 일상 공유



떠나간 사랑과 짝사랑에 마음 아파하는 두 사람. 어찌 보면 청승맞은 모습이지만 이들의 조우는 왠지 유쾌해 보인다. 어느덧 그들은 서로 부딪히고, 무뎌지면서 자연스럽게 일상을 공유한다. 또한 시나리오를 써나가는 동안 철수는 다혜와는 다른, 털털하면서도 순수한 춘희의 모습에 끌리게 되고 춘희는 단순한 동경의 대상이 아닌, 살아 숨쉬는 현실 속의 남자 철수에게 마음이 향한다.

이 영화에서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철수가 끓인 김치찌개가 상에 올려지자 춘희가 인디언 흉내를 내며 좋아하는 모습이다. 덜렁대고 ‘대책없는’ 춘희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면서 두 사람이 ‘밥’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마음을 나누게 되는 계기로도 볼 수 있다. ‘식구’라는 말부터가 함께 밥을 먹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그들은 조금씩 연인이 되어간다.

날이 추워질 때 더욱 생각나는 김치찌개. 이 김치찌개가 자취생들의 단골 메뉴가 된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밥을 거르기가 일쑤인 자취생들은 김치도 쌓아두고 먹지 않는 일이 흔하다. 김치찌개는 남은 신김치를 처리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인 것이다.

또한 밥을 해먹고 싶어도 마땅한 반찬이 없을 때, 김치를 끓여 한 두 가지 부재료만 넣어 주면 되는 김치찌개는 비교적 간단하면서도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마른 멸치, 두부 등을 섞어 옛날식으로 끓이는 방법도 있지만 요즘 젊은 세대들이 해먹는 김치찌개에는 스팸, 참치, 베이컨 등 다양한 재료가 사용되고 있다. 본고장인 미국에서는 싸구려 음식의 대명사로 꼽히는 스팸이 한국의 김치와 만나 맛있는 찌개 재료가 된 것은 아이러니컬한 조화이다.

그러고 보면 진정한 ‘퓨전’이란 고급 호텔 레스토랑의 메뉴가 아닌 이런 평범한 음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마치 미술관과 동물원처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남녀가 사랑에 빠지듯이 말이다.







* 스팸 김치찌개 만들기



-재료: 배추김치 1컵, 스팸 1캔, 양파 반개, 대파 1뿌리, 간장 2큰술, 고춧가루 1큰술, 다진마늘 1큰술, 새우젓 1큰술, 참기름 1큰술, 물 3컵


-만들기:



1. 대파는 시든 잎과 뿌리를 잘라내고 어슷썬다.

2. 양파는 가늘게 채치고, 배추김치는 물기를 짜내고 송송 썬다.

3. 냄비에 참기름과 다진마늘을 넣고 김치와 양파를 넣어 센 불에 잠시 볶는다.

4. 물을 붓고 김치 국물을 반컵 정도 부어준 다음 고춧가루, 간장을 넣고 부글부글 끓인다.

5. 스팸을 큰 숟갈로 떠서 냄비에 넣고 새우젓 1큰술을 넣어 간을 맞춘다.

6. 대파를 넣고 국물이 자작해지도록 끓인다. 오래 끓일수록 맛이 좋다.

*Tip: 찌개 국물을 낼 때 물 대신 멸치 육수를 넣어도 깊은 맛이 난다. 다만 이때는 국물맛이 좀 더 짜진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장세진 맛 칼럼니스트 sejinjeong@yahoo.co.kr


입력시간 : 2003-11-20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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