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취재한 영원한 기자'

[한국 초대석] 오인환 전 공보처장관
'역사를 취재한 영원한 기자'

김영삼 전 대통령은 취임 당시 “나와 함께 퇴임할 장관이 있다”고 말했다. 그 약속은 오인환(吳隣煥ㆍ64) 전 공보처장관을 통해 이뤄졌다. 문민정부는 군의 사조직인 ‘하나회’를 해체하고 전격적으로 금융실명제를 도입하는 등 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그러나 기득권층의 반발에 부닥친 데다 결정적으로 측근과 아들 현철씨 문제로 개혁 색채의 퇴색과 정권기반의 동요를 겪어야 했다.

그 문민정부 5년 간 공보처장관을 지내며 역대 최장수 장관 기록을 세운 오 전 장관이니 만큼 개혁과 위기 관리에 대해 누구보다 할 말이 많았을 법하다. 그러나 그는 퇴임 이래 정치적 발언을 일절 삼가왔다.

정권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듣기에 따라 다양한 오해를 부를 수 있기에 말을 삼가야 한다는 판단에서일 수도 있지만 오랜 신문기자 생활을 통해 몸에 밴 ‘신문기자는 글로 말한다’는 신조 때문일 수도 있다. 1964년 한국일보에 입사한 이래 사회부장과 정치부장, 편집국장, 주필에 이르기까지 28년 간을 언론계에 몸담았던 그였다.

그가 5년 반이 넘는 침묵을 깨고 써 낸 ‘조선왕조에서 배우는 위기관리의 리더십’(열린책들 발행)이 조용한 인기를 끌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정부 들어 ‘리더십의 위기’가 자주 거론되고, 불황의 골이 날로 깊어 가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겠지만 무엇보다 조선왕조사의 고비에 등장하는 임금과 주요 신하들의 행동 양식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쉽고도 깊게 짚은 때문이다.

퇴임 이후 서울 여의도에서 경기 수지로 집을 옮겨 독서와 집필, 운동으로 지내고 있는 그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수백명의 기자들을 어르고 뺨치며 이끌던 편집국장 시절의 모습 그대로였다.

“일생일업(一生一業)이 신조였습니다. 신문기자가 됐으면 신문기자로서 끝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53세에 벌써 주필 2년 차여서 50대 중반이면 어차피 언론계를 떠나야 할 처지였습니다(한국일보의 정년은 58세). 그래서 정계에 발을 디뎠습니다만 언론과 관계된 일을 했다는 점에서 완전한 외도는 아니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장관 퇴임 후 일생일업을 다시 생각하게 됐고 역사를 취재해 쓰기로 작정했습니다.”


위기관리와 리더십의 중요성 절감

‘역사를 취재한다’는 말이 귀에 설어 되물었다.

“개인적으로 ‘히스널리즘’(Hisnalism=History+Jounalism)이란 말을 쓰고 있습니다. 취재는 기본적으로 살아 있는 사람이나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지만 현직을 떠난 사람으로서는 한계가 있지요. 그래서 역사를 심층취재해서 쓰기로 한 것이지요. 현재의 정치를 취재하고 분석하듯, 과거의 역사를 취재해 대중이 실감할 수 있는 역사의 진실을 전하는 일입니다.

신문사에 있을 때도 그랬고, 정계에 들어가서도 늘 천민자본주의 경향이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라고 느꼈습니다. 배금주의와 한탕주의는 특히 천민정치에서 두드러졌지요. 이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일류국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고 조선의 선비정치에서 배울 것이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태조에서 정조에 이르는 조선왕조의 역사를 다룬 역사비평서인 이 책에서 오 전 장관은 위기관리에 초점을 맞추었다.

“조선왕조를 심층취재하면서 위기관리의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감했습니다. 조선왕조는 참 실패 사례가 많지요. 선조 때의 임진왜란이나 인조 때의 병자호란이 대표적인 예이지요. 무엇보다 위기의 실상을 파악하는 능력이 떨어졌습니다. 위기의 실체를 알아야 위기관리를 시작할 수 있는데 위기의 실상을 파악하는 시스템이 취약했습니다. 이런 상황은 아직도 별로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책의 서문에서 밝힌 내용을 거듭 강조했다. “한국 현대사를 보면 과거의 정권에서 배우려 하지 않은 것이 우리 정치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박정희 정권은 영구집권을 꾀하다가 비극적 말로를 맞은 이승만 정권의 독재에서 제대로 교훈을 얻지 못했고, 12ㆍ12 사태를 통해 집권한 전두환 정권은 전임자보다 더한 철권통치를 폈지요.

과도기에 등장한 노태우 정권은 천문학적 비자금을 조성해 전임자의 잘못을 되풀이했고, 김영삼 정권은 잦은 개각이 정권 안정보다는 불안정 요인이 된다는 점을 전임 정권에서 배웠으면서도 더 잦은 개각을 단행했습니다. 김대중 정권은 대통령이 주변관리에 실패하면 리더십이 결정적으로 손상되고 권력 누수가 빨리 온다는 점을 전임 정권에서 목격하고도 아들과 측근의 비리로 도덕성의 훼손을 불렀습니다.”

그가 책에서 다룬 위기관리의 주체는 임금만이 아니다. 정치 실력자였던 당대의 주요 신하들도 취재 대상에 올랐다. “조선왕조는 군신공치(君臣共治)의 체제였습니다. 영명한 군주와 탁월한 경세가(經世家)가 있을 때 사회ㆍ경제적 발전이 이뤄졌습니다.

우리나라는 특히 경세가가 아쉬운 나라입니다. 천하와 위기를 관리할 능력을 갖춘 경세가를 발굴하고 키워야 합니다. 객관적 조건이 불리하다는 점에서 일본이나 중국보다 뛰어난 지도자가 나와야지요. 국제감각과 참신성, 역동성을 갖춘 지도자가 요구됩니다.”


태종은 역사가 공증한 정치9단

그는 조선왕조에서 가장 위기관리에 능했던 왕으로 태종을 꼽았다. 조선 왕조가 수립되고 자신이 왕위에 오를 때까지 수많은 고비에서 그가 보인 재빠른 상황 판단과 행동은 물론 집권 후 왕권을 다지기 위한 일련의 조치, 인재를 알아보는 뛰어난 안목, 후계구도를 정리해 왕위를 세종에게 물려주고 끝까지 후견인 역할을 한 점 등에서 ‘역사가 공증하는 정치 9단’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기회를 포착과 적절한 수단의 선택 등은 철저한 벤치마킹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위기관리의 관점에서 오 전 장관은 노무현 대통령의 행동양식에 강한 우려를 표했다. “재신임 정국은 참으로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노 대통령 정권은 500년래 최초의 진보적 정권입니다. 조선시대는 물론 현대에도 과거시험을 거치거나 최고 학부를 나온 엘리트가 정치의 주류를 이루었지요.

노 대통령은 상고 출신의 서민 대통령으로 어떤 의미에서건 비주류여서 주류, 즉 보수세력과의 대치라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정면돌파로 이런 대결국면을 해소할 수 있을까요? 역사적으로 보아 그런 정면돌파가 성공한 예가 없습니다. 그런 역사적 이해가 있다면 노 대통령은 포용과 공존의 정치를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가다가 측근비리가 터지고 야당의 발목잡기가 겹치자 재신임카드를 던졌는데 참으로 위험한 선택입니다.

재신임을 받지 못하면 하야해야 하고 새로 선거를 해야 하기 때문에 정치ㆍ경제 위기를 부르는데 왜 그런 정치도박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또 재신임을 받더라도 처음의 권위와 힘, 참신성은 이미 상처가 난 상태여서 절름발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갈등 구조를 개선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현재와 같은 갈등국면은 되풀이되게 마련인데 이런 상황이 나라 발전에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보수ㆍ진보 공생구도 정착해야

그는 “지도자마다 극복해야 할 시대상황, 시대논리란 것이 있어서 이를 잘 포착해서 대응책을 정책으로 구현하면 성공하고 그렇지 않으면 실패한다”면서 “노 대통령의 최대 과제는 보혁갈등의 해소”라고 지적했다. “새는 좌우 날개가 균형 있게 발달해야 멀리 날 수 있습니다.

21세기에는 우리 사회가 보수와 진보가 공생하는 구도로 나아갈 것이며 이를 제대로 이행하는 것이 노 대통령의 역사적 과제입니다. 또한 진보세력의 집권 자체가 하나의 사회 발전, 성장이란 점에서 보수세력은 이를 기정사실로 인정하고 공존을 모색해야 합니다.”

오 전 장관은 순조 이후 구한말까지의 역사를 다룬 속편을 2005년에 낼 계획이다. 또 그 후에는 한 시대를 더 거슬러 올라가 고려사에서도 역사의 교훈을 찾기 위한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황영식기자


입력시간 : 2003-11-21 16:45


황영식기자 yshwa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