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균의 개그펀치] 개그맨 밥줄 끊길라


네 살짜리 아이가 하루에 500번 까지 웃는 반면 어른의 경우 하루 15번 밖에 웃지 않는다고 한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서른 세 번의 해맑은 웃음을 웃는 동안 어른들은 그제서야 단 한번의 웃음으로 응답하는 꼴이다. 웃음이란 언젠가는 고갈되는 유한자원이 아닐까 싶어 이내 두려워진다. 웃음 없는 세상이라? 나에게는 꿈에서도 생각하고 싶지 않은 공포다.

지난 22년의 시간 동안 나는 ‘코미디’와 함께 살아왔다. 그 덕에 난 많이 웃었고, 웃음을 아는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난 하나의 공식을 발견 할 수 있었다. ‘나의 울음 = 시청자의 웃음’ 임을 말이다. 내가 그들을 웃기려고 손으로만 써 내려간 코미디가 아닌, 마음 속에서 몇 번이고 울먹거리다 토해낸 웃음만이 그들에게 환한 웃음을 줄 수 있었음을 말이다.

난 지금껏 코미디와 싸워 한번도 이겨본 적이 없다. 그것은 풀면 풀수록 어려운 숙제로 내게 남았고, 그 숙제의 양만 나날이 늘어갈 뿐이다. 물론 이것이 내가 코미디의 매력 속으로 빨려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코미디는 분명 나보다 강자임에 분명하다.

최근 정치권에서 ‘코미디’란 단어가 때와 장소에 맞지 않게 남발되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어 내 머리 속에 혼돈을 일으킨다. 노무현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법안 처리를 위해 열린 국회 법사위에서 강금실 법무부장관은 연방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고 한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법안 심의 과정에서 노 대통령의 고교 선배인 이영로씨를 지칭하는 대목과 관련해서 ‘고교 선배’라는 표현을 꼭 넣으려고 고집하다가 이를 저지하려는 열린우리당 천정배 의원과 설전을 벌인 것이 도화선이 됐다고 한다. 강 장관의 웃음과 혼잣말은 의원들에겐 들리지 않았으나 낮은 목소리로 ‘코미디네 코미디’라고 하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고 한다. 여러 대형사건의 검찰수사 챙기느라 정신이 없는 법무부장관을 모처럼 웃게 해준 의원님들의 유머감각(?)이 실로 대단하다.

노무현 대통령 내외와 부부동반으로 골프까지 치며 그 위세를 과시하고 있는 강금원씨는 “내가 측근 중의 측근이다”,“민정수석과 장관을 교체해야 한다”는 등의 발언을 서슴지 않아 야당으로부터 제2의 이기붕, 사설 부통령이라고까지 불리고 있다.

강금원씨는 지난 9월 국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해서 여야 의원간 논란으로 국감 속개가 늦어지자 ‘국감이 아니라 코미디’라고 목청을 높였다고 한다. 국회의원들이 얼마나 웃겼길래 자칭 대통령의 측근은 국정감사 현장을 코미디라고 정의 내렸을까?

민주당은 지난 대선 때 노무현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에서 대선자금을 이중장부로 관리했다고 주장하면서 열린우리당과 ‘너죽고 나살자’식의 피튀기는 대선자금 전면전에 돌입했다. 이와 관련해서 대검 중수부 검사 출신으로, 대선 때의 자금흐름을 조사 중인 노관규 당 예결위원장은 이상수 당시 선대위 총무본부장에게 ‘이 의원은 앞으로 많은 부분을 얘기해야 할 것이다. 지난 7월 대선자금 백서 공개는 웃기는 코미디 같은 일이었다’고 강펀치를 날렸다.

개그콘서트보다 더 웃기는 웃음의 퍼레이드를 펼치고 있는 국회의원들 때문에 정말 코미디 만들기가 너무 힘들다. 매주 여의도에 있는 KBS신관 공개홀에서 개그콘서트 녹화를 하고 있는데, 다음주에는 KBS신관 바로 길 건너에 있는 국회에 가서 개그콘서트 녹화를 해도 될 것 같다. 물론 출연자는 개그맨이 아닌 국회의원들이면 더 좋을 듯 싶다.

국회의원 여러분, 지금 국민들은 경기가 안 좋아서 점점 살기가 어렵다고 난리입니다. 우리 이제 제발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자기의 본분을 다해야 겠습니다. 정치인은 정치를 잘하면 됩니다. 국회의원이 개그맨처럼 국민을 웃기려고 해서야 되겠습니까. 개그는 개그맨에게 맡겨주시고 나라를 위해서 열심히 의정활동에 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입력시간 : 2003-11-25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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