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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나미의 홀인원] 버린 만큼 얻는다


등급 판정 때부터 언론에 오르내렸던 영화 <킬빌>. 이 영화를 보러 온 관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내용이 재미있다. “당신이 복수하고 싶은 대상은?”이라는 질문이었는데, 글쎄 ‘나라를 망친 부정부패 정치인’이 남자 관객들에게 1위로 뽑혔다. 반면 여자 관객들은 ‘나를 무참히 차버린 옛 애인’을 1위로 꼽았다.

어릴 때부터 늘 골프와 함께하고 있는 필자는 ‘나를 무참히 차버린 옛 애인’이라는 말이 조금 다른 식으로 가슴에 와 닿았다. 상당수 아마추어 골퍼들의 경우 자신의 사랑을 매몰차게 외면하고 돌아선, 자신을 무참히 차버린 애인이 바로 골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실제 일부 아마추어 골퍼들이 골프에 쏟는 정성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연습장에 나가고, 틈만 나면 골프 클럽을 닦고, 그리고 누가 어떤 드라이버, 어떤 퍼터가 좋다고 하면 술값, 밥값을 아껴서라도 반드시 손에 넣고….

하지만 오랜 시간 골프를 해오면서 필자는 한가지 깨달은 바가 있다. 뽀얗게 생긴, 조그마한 공은 자기를 완전한 내 것으로 가지려 하면 멀리 도망가려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스포츠에서는 포기하지 않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지도자들이 선수들을 가르칠 때 “끝까지 물고 늘어져라”는 말을 수도 없이 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골프에서도 물론 유효하게 쓰인다. 다만 골프의 경우 물고 늘어지는 끈기 만큼, 버릴 땐 버리는 것이 중요할 때가 있다. 실제 멘탈 게임인 골프에 있어서는 포기할 때 포기하는 것이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끈기 보다 더 힘들 때가 적지 않다.

LPGA 대회인 CJ 나인 브릿지대회에서 루키 안시현이 세계적인 선수들과 맞붙어 우승하리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또 바로 이어진 모빌 LPGA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 대회에서 29명 중 28등을 할지 또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필자는 이것이 다 기대와 포기라는 감정 아래 나오는 결과라 생각한다.

사실 골프를 하면서 기대라는 감정이 없으면 참으로 재미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조그마한 공은 기대를 하면 할수록 이를 배반하는 못된 성미가 있다. 아마 골퍼들에게 단 한번만이라도 큰 기대를 하지 않고 필드에 나가보라고 하면 너무 무리한 부탁을 하는 것일까? 하지만 어느 정도는 포기를 하고 골프에 임하면 오히려 공이 나를 따라오는 듯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프로 선수들의 대회 모습을 한번 자세히 보라. 특히 LPGA 경기를 관심 깊게 들여다 보라. 유독 비거리가 많은 선수와 또 상대적으로 비거리가 얼마되지 않은 선수가 한 조가 돼 플레이를 할 때가 있다. 이 경우 미들홀에서는 비거리가 많이 나가는 선수가 백번 유리하다. 아무래도 버디 확률이 훨씬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지막 우승 트로피를 안을 때, 또 우승은 아니더라도 최종 순위가 나왔을 때 확인해 보면 비거리와 순위는 정비례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왜 그럴까? 그것은 포기할 때 포기를 못했기 때문이다. 롱홀에서 조금만 욕심을 줄이고 세컨샷을 안전하게 했다면 무리가 없을 텐데, 꼭 욕심을 내다 해저드나 벙커에 빠뜨리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골프를 하다보면 이렇게 무엇을 포기하지 못해서 잃는 것은 생각보다 참 많다. 조금만 버리면 더 많은 것을 얻게 되는데. 사람의 마음도 비슷하다. 잘 보이려고 하고 이뻐보이려 하면 그런 행동 자체에 상대가 질려 마음이 멀어지는 것처럼.

최선을 다했는데도 잘 안될 때는 그냥 확 내동댕이 쳐봐라. 그럼 따라올 것은 따라오게 될 것이다. 아마도 내가 너무 상대방(골프)의 마음을 가지려 해서 차인 것은 아닐까 생각하면서.



박나미 nami8621@hanmail.net


입력시간 : 2003-11-25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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