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대 놀이문화로 급부상, 대학가 부킹명소로 성업

[르포] 보드게임 카페 '부킹 명소'로 진화중
신세대 놀이문화로 급부상, 대학가 부킹명소로 성업

신세대 선남선녀들이 보드카페로 몰리고 있다. ‘보드게임방’ ‘보드게임 카페’ 등으로 불리는 보드카페는 추억의 ‘부르마블’을 비롯해 ‘A&A’, ‘푸에르토리코’ 등 주사위를 이용한 게임을 즐기는 곳. 최근 대학가 등지를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온라인 게임을 제치고 보드카페가 신세대들의 놀이 문화로 자리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다름아닌 ‘게임팅’ 서비스 때문이다. 카페를 찾는 손님들을 즉석에서 연결시킴으로써 최근 대학가 일대에서 ‘부킹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18일 신촌역 인근. 신촌역 3번 출구를 나와 걷다 보니 ‘OO 보드카페’ ‘OO 게임카페’ 등 낯선 간판이 자주 눈에 띤다. 최근 대학가를 중심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보드게임 카페다. 이곳에서 만난 학생들에 따르면 현재 신촌역 인근에만 10여개의 보드카페가 성업중이다.


온라인 게임과 차별화

홍대 3학년에 재학중이라는 이후석씨(26)는 “얼마 전부터 민들레영토를 중심으로 보드카페가 잇따라 문을 열었다. 특히 신촌역에서 연세대 입구 사이에는 몇 건물을 사이에 두고 보드카페가 진을 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보드게임 카페는 온라인 게임을 할 수 있는 게임방과는 질적으로 틀리다. 멍하니 모니터만 바라보는 온라인 게임과 달리 얼굴을 맞대고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탓에 반응이 좋다. 더군다나 다양한 종류의 게임이 시중에 나와있기 때문에 지겨울 틈이 없다.

최근 이곳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인근 업체간 경쟁이 가열되면서 손님들을 즉석에서 연결해주는 ‘게임팅’ 서비스가 인기를 얻고 있는 것. 이곳에서는 현재 나이트클럽처럼 카페를 찾는 손님들의 테이블을 즉석에서 연결해주고 있다.

취재진은 연세대 입구에 위치한 X카페에 들어가 보았다. 카페 내부는 게임방보다는 커피숍에 가까웠다. 깔끔한 인테리어에 형광빛 조명까지 겹쳐 고급 카페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50여평 남짓한 내부에는 인근 대학생들이 모여 ‘보드게임’ 삼매경에 빠져있다.

이곳 대표 김범기씨는 “현재 게임팅을 원하는 손님들에게 즉석에서 테이블을 연결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얼마 전부터는 혼자 오는 손님들을 위해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했다. 그는 “남자는 여자, 여자는 남자 아르바이트생을 붙여주고 있는데 반응이 좋다”며 “보드카페는 이제 게임방이라기보다는 젊은층들의 문화 공간이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그러나 보드카페는 나이트클럽과 같은 퇴폐적인 곳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남자와 여자 손님들을 연결해줄 경우 자칫 퇴폐적인 업소로 낙인찍힐 수 있다”며 “때문에 손님이 원하지 않을 경우 나서서 게임팅을 서비스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젊음의 거리’인 압구정동도 사정은 비슷하다. 인근 업소간의 경쟁이 강화되면서 앞 다투어 ‘게임팅’ 서비스에 나서는 등 발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일부 카페의 경우 결혼정보회사의 회원들을 단체로 초청해 단체 미팅을 주선할 정도다.


정기적으로 단체미팅 주선

로데오거리에 위치한 M보드카페가 대표적인 ‘이벤트 업소’다. 이곳은 청담동 일대에서도 연예인들이 자주 찾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이 같은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입구에는 그 동안 이 곳을 다녀간 연예인들의 사인이 더덕더덕 붙어있다.

얼마 전 이곳에서는 독특한 이벤트가 벌여졌다. 결혼정보회사 회원 90명을 초청해 단체미팅을 벌인 것. 이곳 대표인 김주환씨는 “결혼정보회사에서 주최하는 이벤트의 경우 보통 사랑의 작대기 등을 통해 커플을 정하기 때문에 어색한 게 사실이다”며 “보드카페에서는 게임을 통해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요즘에는 미팅 동호회의 방문도 끊이지 않고 있다. 취재진이 이곳에서 만난 한 팀도 보드게임을 통해 인연을 맺은 케이스. 직장인 양선진씨(25)는 “게임을 하면서 처음 만나는 어색함을 금방 잊을 수 있었다”며 “이곳을 자주 찾게되는 것도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옆에 앉아있던 직장인 권성훈씨(29)도 맞장구를 친다.

그는 “게임을 하면서 만났기 때문에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며 “주변의 친구 중에는 동호회까지 만들어 이곳에서 미팅을 갖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인근에 위치한 J보드카페의 경우 ‘테이블 대항전’ 등의 이벤트를 정기적으로 벌이고 있다. 특별한 날을 정해 테이블끼리 게임 대결을 벌이는 것. 이곳 종업원은 “정기적인 행사는 아니지만 가끔 손님끼리 대결을 벌이기도 한다”며 “보드카페를 통한 만남이 젊은층 사이에서는 점차 일반화해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자 일각에서는 우려를 표시하기도 한다.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변하는 게 아니냐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직장인 김성수씨(32)는 “젊은 남녀의 만남을 주선한다는 점에서 이해가 가지만 한편으로는 이들의 만남을 볼모로 지나치게 손님 유치에만 치우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튀기 전략’은 불가피하다는 게 해당 업주들의 한결같은 말이다. M보드카페 김주환 사장은 “현재 서울에만 200여 보드카페가 성업중이다. 특히 신촌이나 압구정동 같은 경우 몇 개의 건물을 사이에 두고 보드카페가 생겨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게임만 서비스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나이트클럽과 같이 퇴폐적인 만남이나 중독을 야기시키는 온라인 게임보다는 낫지 않겠냐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보드카페에서는 술을 팔지 않는다”며 “건전한 만남을 통해 사랑을 싹틔울 수 있다는 게 보드카페의 최대 장점이다”고 말했다.

이석 르포라이터


입력시간 : 2003-11-25 16:14


이석 르포라이터 zeus@newsbank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