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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의 세계-17] 지폐조각가 홍용선
만원권 세종대왕 하나에 여섯달 소요, 인쇄기법에 종합판





‘제머리가 왜 빠졌겠냐’며 웃는다. 이름도 번듯한 공기업에다 입사 무렵 남다른 보수 수준에 솔깃해 멋모르고 입사했다가 35년째 혼이 나고 있다. 남의 속도 모르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그에게 말한다.

“ 돈은 한번 만든 걸로 계속 쓰니까 별로 할 일이 없겠다, 한가하겠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게 아니라는 걸 얘기하자면 일일이 설명을 해야 되는데, 워낙 자주 들어서 이젠 그러려니 합니다. ”

돈을 만드는 사람, 홍용선(56)씨. 한국조폐공사 디자인조각팀 수석연구원이다. 홍씨는 우리 화폐 역사에 숨은 주역 중 한 사람이기도 하다. 디자인과 조각까지 온전히 우리 기술로 돈을 제작하기 시작한 첫 세대 주자다. 단적으로, 만원권 지폐에 그려진 세종대왕 초상이 바로 그의 작품이다. 꼭 20년 전에 그가 했던 일이다.

그런데 왜 여전히 바쁜가? 잠시 ‘다른 그림 찾기 놀이’를 해보자. 만원권 지폐들을 잘 들여다보면 조금씩 다른 세 종류가 나온다. 각각 1983년, 1994년, 2000년판이다. 우리가 눈치채지 못한 사이, 은근슬쩍 바뀐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앞면만 해도 생선 비늘처럼 생긴 은색 부분 노출선의 위치나 두께, 왼쪽 아래의 점박이 동그라미 세 개의 색깔과 크기, 잉크재질 등 너무 많아서 일일이 다 적을 수 없을 정도다.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 수작업



이런 식으로 쉬지않고 지폐의 곳곳을 바꾸는 작업을 해왔다. 무엇보다 점점 치밀해지는 화폐 위조 범죄를 막기 위해서다. 여기에다 각종 주화나 메달, 증권과 채권, 수표, 상품권, 수입증지, 훈장, 자동차운전면허증과 같은 카드 등도 만든다. 조폐공사는 돈만 만들어내는 곳이 아니다. 사방에서 일감이 빚처럼 쌓인다.

다른 분야는 그나마 기계 장비의 도움이라도 받을 수 있지만, 조각만큼은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 수작업이다. 부탁받은 시한까지 일을 마치기 위해 때론 밤샘 작업도 피할 수 없다. 체력과 인내가 필요한 일이다.

“ 유럽에서는 4,50년 전만 해도 이 직종이 인기 최고였어요. 그런데 점점 젊은 사람들의 가치기준이 달라지면서, ‘이렇게 힘든 일을 뭐하러 하냐’, 지원자가 줄면서 지금은 희귀직종이 됐죠. 저도 막연한 생각만으로 들어왔다가 한창 힘들 때는 내가 뭣하러 여길 들어왔나, 잘못 들어온 게 아닌가, 갈등한 적도 있습니다.”

한남대 회화과 출신인 홍씨는 대학 졸업 후 한 핸드백 제조회사에 들어갔다가 생각을 바꿔 3차에 걸친 엄격한 시험 끝에 조폐공사에 입사했다. 입사 무렵만 해도, 요즘에 비하면 호시절이었다. 화폐의 디자인조각이란 워낙 고도의 기술과 장비를 요하는 일이다 보니 당시 조폐공사에서는 외국 기술진에게 판형을 맡겨 제작한 뒤 이를 들여와 인쇄만 하는 정도였다.

1980년 홍씨는 오스트리아로 연수를 떠났다.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오스트리아의 조폐공사에서 1년간 머물며 선진기술을 배웠다. 그 곳은 특히 인물 초상 분야에서 이름난 곳이었다. 돌아온 지 한 두 해쯤 지나자 갑자기 특명이 떨어졌다. 이제부터 국내팀의 손으로 직접 지폐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알고보니 홍씨를 외국에 보냈던 것도 이를 위한 준비 작업이었다.

홍씨에게 맡겨진 일은 만원권의 앞면 인물 초상이었다. 인물 초상은 지폐에 들어가는 많은 그림 중에서도 가장 고난이도의 기술을 요하는 부분이다. 조각팀 안에서도 솜씨가 가장 섬세하고 숙련된 사람에게 맡겨진다. 국내에선 처음 시도되는 작업, 설레임보다 막막함과 두려움이 앞섰다.

일반인들?물론, 이젠 조폐공사 안에서도 아는 이들이 몇 되지 않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만원권 지폐에 처음부터 세종대왕이 등극하셨던 게 아니다. 원래는 석굴암 불상이 앞면에, 뒷면에는 불국사가 그려져 있었다.

종교와는 무관하게, 우리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으로 손꼽히는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숨어있는 그림으로는 석가여래가 들어갔다. 한국은행과 조폐공사의 협의 하에 선정위원회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 추진된 사항이었다.


만원권 그림 종교계 반대로 교체



종이까지 수입해 인쇄 준비를 다 마쳤다. 그런데 문제가 터졌다. 종교계가 너나없이 반대하고 나섰다. “ 하다못해 기독교에서 반대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오히려 좋아하면 좋아할 줄 알았던 불교계까지도 반대한 겁니다. 신성한 부처님을 왜 그런 곳에 싣느냐는 거지요. 결국 다 만들어놓은 것을 단 한 장도 찍지 못한 채 그대로 폐기했어요. 그렇게 해서 다시 선정한 것이 지금의 세종대왕 초상이지요.”

조각가의 고행이 다시 시작되었다. 지폐의 조각은 일반 조각가들의 일과 많이 다르다. 간단히 제작과정을 살펴보자면, 먼저 디자인팀에 의해 돈에 그려질 내용과 구도 등 디자인이 정해진 뒤, 이를 조각팀에서 넘겨받아 직접 판화로 새겨 찍는 식이다.

가장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 바로 이 조각 부분이다. 디자인 시안이 넘어오면 조각팀에서는 각자의 특기에 따라 담당 부분을 나눠 맡은 뒤 하나의 원판을 바톤처럼 건네 받으며 차례로 그림을 새겨넣는다. 도중에 단 한 사람이라도 실수하면 맨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길고도 아슬아슬한 릴레이다.

조각할 원판은 강철로 만들어져 있다. 철판 표면을 거울처럼 매끄럽게 갈아 만든 것이다. 지폐 조각은 모든 것을 미세한 선을 이용해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자 고충이다. 1㎜안에 5,6개의 선이 들어갈 만큼 가늘고 정밀한 선을 다룬다.

조각칼 자체가 송곳처럼 생겼다. 워낙 세밀한 작업이라 진도가 더디다. 허리가 휘도록 종일 앉아 작업을 해도 그날 한 일이 눈에 보일까 말까다. 세종대왕의 초상 하나에만 여섯 달이 걸렸다. 엄지손가락 첫마디만한 물시계에도 두 달이 걸렸다. 한창 손이 잘 풀릴 땐 퇴근도 잊은 채 새벽 서너시까지 남아 일을 한 결과가 그렇다.

조각팀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시력부터 나빠진다. 맨날 미세한 선만 상대하며 살다보니 웬만한 물체는 코끼리처럼 커 보인다. 벽에 걸린 그림이 조금만 삐딱해도 바로 알아챈다. 주위 사람들이 ‘제대로 걸려있다’고 우겨도 실제로 자로 재어 확인해보면 어김없이 홍씨의 판정이 맞다.

“ 이 일을 하다 보면 성격도 바뀝니다. 좋게 말하면 섬세해 지는거고, 나쁘게 말하면 ‘쪼잔’해지는거죠. (웃음) 그만큼 감각이 예민해집니다.”

홍씨의 세종대왕 그림도 참 어렵게 태어났다. 가진 자료라고는 한국화로 그려진 초상뿐이었다. 알다시피, 전통 초상화에는 입체적인 묘사가 생략돼 있다. 윤곽만 그려진 몽타주 수준이다. 여기에 어떻게 살을 붙여 어떤 느낌을 내느냐가 조각가 홍씨의 숙제였다.

인체 해부학 공부는 기본이다. 거리를 다니면서도 그림의 얼굴과 비슷하게 생긴 통통한 사람만 보면 미행하다시피 따라다니며 얼굴을 훔쳐봤다. 어떨 땐 너무 끈덕지게 쳐다보다 상대로부터 신고 직전의 눈초리를 받은 적도 있다. 특이하게 생긴 세종대왕의 귀는 다행히 주변에서 모델을 찾았다.

마침 자신의 장모 귀가 그와 비슷한 것을 발견한 홍씨. 사진까지 찍어가며 연구해 판화로 옮겼다. ‘길거리 캐스팅’마저 불가능한 세종대왕의 수염은 TV사극으로 가까스로 해결했다.

“ 그렇게 고생해서 만든 만원권이 마침내 발행됐을 때 그 뿌듯함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죠.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불안했어요. 그 전에 석굴암 불상 소동까지 겪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반응이 어떨까 걱정이 되더라구요.”


입사 10년은 돼야 실력 발휘





첫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친 홍씨. 현재 그가 소속된 디자인조각팀은 모두 합쳐 21명이다. 한때 약 30명에 달한 적도 있지만, IMF와 함께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지금과 같은 소수정예 부대로 남았다. 일의 특성이나 작업량에 비춰보면 상당히 빠듯한 인원이다.

한달 전에 공채로 2명의 신참을 새로 얻었지만, 그것도 3년만의 충원이다. 신참이 오더라도 평균 5년은 훈련을 시켜야 현장에 투입할 수 있다. 특히 조각팀의 경우, 10년은 연마해야 솜씨다운 솜씨를 발휘할 수 있다.

때로는 술에 취한 채 “오천원권이랑 천원권의 색깔이 비슷해서 헷갈린다”고 항의하는 전화도 받는다. 다른 나라에 비해 지폐 색깔이 칙칙하다는 얘기도 종종 듣는다. “원래 우리나라 국민성이 원색을 싫어한다는 점 때문에 이제까지는 다소 어둡고 점잖은 톤으로 지폐를 만들었지요. 하지만 세대가 바뀌면서 이젠 취향도 많이 달라져서 앞으로는 우리 지폐의 색상도 점차 밝은 쪽으로 바뀔 겁니다.”

일은 힘들지만, 나름대로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폐 디자인조각은 특히 인쇄기법에 있어서도 다른 직종에서는 체험할 수 없는 종합판이다. 일반 옵셋과 같은 평판인쇄에서부터 도장과 같이 볼록판으로 깎아 찍는 철판인쇄, 그 반대로, 표현하고 싶은 부분을 긁어내듯 파낸 뒤 그 오목한 부분에 잉크를 넣어 찍어내는 요판인쇄까지 골고루 녹아있다. 화폐의 디자인조각 자체가 조폐공사 밖에서는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고, 배울 필요도 없는 그들만의 기술이다.

결과가 좋을 때는 그만한 기쁨이 없다. 2002년 월드컵 기념 주화를 만들었을 땐 세계 각국의 주화제작기술을 겨루는 세계 주화 경연대회에서 월드컵 기념 금화로 대상을 받았다. 이들에게는 완전히 축제의 날이었다. 안팎의 찬사와 축하, 치하와 격려의 뜻이 담긴 사장의 금일봉까지 쏟아졌다. 평소에도 상품권이나 카드 등 공들여 만든 것들이 이를 의뢰한 거래처로부터 칭찬으로 돌아올 때 더없이 뿌듯하다.

여늬 기업 같으면 이미 뒷자리로 물러나 지휘만 맡을 나이지만, 35년차 베테랑 홍씨는 지금도 조각도를 함께 쥐고 있는 현역이다. 인력이 귀한 탓도 있지만, 그 자신도 원하는 바다. 화폐 제작의 선진국, 유럽을 다녀올 때마다 그에게 제일 부러운 사람이 있었다. “ 머리가 허연 분들이 앉아서 이 일을 하고 계시더라구요. 나이요? 손이 떨리지 않는 이상은 아무 문제 없어요.” 아마도 남몰래 가슴에 새긴 홍씨 자신의 미래 자화상일 것이다.



정영주 자유기고가 pinplus@empal.com


입력시간 : 2003-11-25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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