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IT산업시장에 큰 충격 준 '적과의 동침'미래성장동력 TFT-LCD,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 견인

삼성-소니의 LCD합작회사 건립
세계 IT산업시장에 큰 충격 준 '적과의 동침'
미래성장동력 TFT-LCD,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 견인


가을이 깊어 가는 충남 아산시 탕정면 삼성 LCD(액정표시장치) 복합 단지 공사장. 탕정면을 둘러 싼 야산을 허물고 드넓은 논과 밭을 밀어 하얗게 평평하게 드러난 대지가 끝 모르게 펼쳐진다.

단일 사업장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61만평 대규모 단지의 터를 이미 마련해 놓은 이 곳엔 기중기와 크레인 등이 동원돼 단지 기반 조성 등 외관 작업이 한창 진행중이다. 단지 왼편에는 올 상반기 제조 설비를 마친 삼성코닝 정밀유리 공장이 하얀 연기를 뿜어 내며 가동하고 있어 향후 복합 단지의 규모를 실감하게 한다.

TFT-LCD(초박막 액정표시장치) 단일 사업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탕정 LCD 복합단지에는 삼성전자가 2010년까지 20조원을 투자, 미래 성장 핵심 부품인 최첨단 TFT-LCD 패널을 만들어내는 ‘크리스털 밸리(Crystal Valley)’가 들어 설 계획이다.

삼성전자가 10월 30일 기공식을 가진 이 단지에는 2005년 초부터 TV용 LCD 생산 라인 4개가 자리 잡아, 일본 소니(Sony)사와의 1대1 합작사와 함께 둥지를 트게 된다. 이로써 탕정면은 2010년이면 연 매출 10조원에 이르는 세계 최대의 LCD 복합단지로 자리 매김 할 전망이다.

탕정 LCD 단지는 삼성전자가 5세대 LCD 생산라인투자 이후 6세대를 뛰어 넘어 7세대(1,870만2,200㎜) 생산 라인을 처음으로 도입, ‘2미터급 마더 글래스(Mother Glass) 시대’를 연다는 점에서 업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고용측면에서도 2010년까지 직접 인력만 2만 명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생산량의 95%를 수출, D램 반도체를 밀어내고 IT분야에서 최대의 캐시 카우인 LCD산업을 중심으로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의 견인차 역할을 해낼 핵심 부품 생산 단지로 기대 받고 있다.


"삼성이 소니를 앞지를 것"

삼성 이건희 회장은 11월 20일 신라호텔에서 디지털 미디어 부문의 ‘전략 품목 임원회의’에서 핵심 부품과 기술 경쟁력 확보를 통해 2005년 디지털TV의 세계 시장 점유율을 20%로 높여 세계 1위를 차지, 2007년에는 세계 시장 점유율을 25%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확정했다.

이 회장은 “올해는 디지털 미디어 사업의 모태가 된 TV를 생산한 지 33년이 된 해”라며 “이제는 부품이 아닌 첨단 세트 제품에서도 세계 1등이 나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 회장의 이 같은 야심은 개발 성장 시대에 흔히 보던 의욕의 차원이 아니다. 구체적인 기술력과 자본력이 하나로 뭉쳐 빚어 낸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삼성전자는 세계 IT기업 중 순 제너럴일렉트릭(GE)와 소니에 이어, 이익률 3위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GE를 비롯해 IBM, HP, 소니 등 세계 거대 IT기업들의 올 3분기 실적을 분석해 보면 삼성전자는 매출이나 수익 양면에서 세계 메이저 업체들과 겨뤄 손색 없는 성적을 거뒀다.

지난해 1분기 마이크로소프트와 삼성전자(76만3,8000만 달러)의 매출은 3억8,800만 달러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올 3분기엔 14억500만 달러로 격차가 확대됐다.

소니는 이 기간 109억7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려 여전히 삼성전자 보다는 매출면에서 앞서기는 했지만, 매출 차이가 12억8,700만 달러로 대폭 줄었다. 지난해 1분기 당시 양사의 매출 차액이 68억2,400만 달러 였던 점을 감안하면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둔 셈이다.

더욱이 소니의 실적은 연결 재무제표인데 반해 삼성전자의 실적은 본사 매출 기준이어서 이를 연결 매출로 전환할 경우 25% 이상 외형이 늘어나게 돼 소니 매출을 앞지를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 초 삼성사장단 회의에서 “삼성이 세계적 기업인 소니를 앞지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을 때만 해도 다소 성급했던 관측이 서서히 정말로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에서의 삼성전자에 대한 평가는 국내의 반응을 한층 앞서 가고 있다. 니케이 비즈니즈는 11월10일자 최탯?커버스토리를 통해 ‘소니와 파나소닉(마쓰시타전기), 삼성전자 등 3사의 디지털 가전제품에 대한 이미지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삼성전자의 브랜드 이미지가 일본 시장에서 소니 등 경쟁사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향상되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 소비자들은 ‘이들 3사 브랜드의 이미지 중 어느 브랜드가 가장 좋아졌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65.2%가 삼성전자라고 답변, 파나소닉(21.4%)과 소니(13.2%)를 월등히 앞섰다.

이 잡지는 “삼성전자 제품은 현 시점에서 일본 제품보다 기술력이나 상품력이 떨어지지만 차세대 기술개발 투자 등에 적극적이어서 미래 성장 가능성이 충분하다”며 “올해 회계 년도 상반기 중 일본 9대 전자업계의 영업 수익률이 삼성전자 한 곳에도 못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삼성 기술력의 개가

10월 28일. 국내 전자업계는 물론 세계 전자시장은 소니와 삼성전자의 갑작스러운 LCD합작사 설립 발표 소식이 가져 온 충격에 한 동안 벌린 입을 다물 줄 몰랐다. 세계 최고 기술의 TV제조업체인 소니의 설비 투자를 이끌어 낸 삼성전자를 놓고, 일본에서 조차도 삼성을 토쿠가와 이에야스를 물리친 일본 역사상 최고의 무장인 타케타 신켄으로 비유할 정도였다.

10년간 각종 투자와 각고의 노력을 통해 LCD 분야에서 일본의 ‘오리지널’ 부품 기술력을 누르고 일본에서 먼저 손을 내밀 정도로 승리를 거둔 삼성의 역주에 일본 전자업계의 자존심은 상할 대로 상할 수 밖에 없는 침울한 분위기였다.

삼성전자가 1993년 처음 AMLCD 사업부를 만들어 LCD 생산에 돌입했을 당시만 해도 모든 부품을 일본으로부터 수입해야 했고 기술마저도 일본으로부터 들여와야 하는 입장이었지만, 10년 만에 전세가 180도 역전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일본 언론조차도 소니와 삼성전자의 합작회사 설립에 대해 되도록 축소 보도하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일본 정부 역시 일본 최고의 기업인 소니가 일본 업체와 손을 잡기를 기대했다. 일본의 TFT-LCD 시장은 샤프가 60%를 점유하면서 파나소닉(마쓰시타전기)과 도시바 등 일본 업체와 삼성전자, LG필립스 LCD 등 국내업체들이 나머지 지분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소니가 일본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에 손을 내밀었으니 국가적으로 자존심이 구겨지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듯 소니의 안도 구니타케 사장은 10월30일 삼성전자와 LCD 합작회사가 건설되는 탕정 기공식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안도 사장은 그 다음날 방한해 LG필립스LCD의 구본준 사장을 만나 오히려 양사의 지속적인 협조관계를 당부했다.

LG필립스 LCD는 지금까지 소니에 TV용 패널을 포함, 연간 100만 대 이상의 패널을 공급해 온 LCD 패널 분야의 최대 협력업체이기 때문이다.

소니로서는 삼성전자와의 LCD 합작 건이 알려지면서 LG필립스LCD내부에서 ‘소니와의 거래 관계를 중단하자’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로 분위기가 악화되는 것을 최대한 막고 PDP 모듈 및 LCD 모니터 등의 제품에서 협력을 확대하기 위한 방책이 시급할 수 밖에 없었다.


소니와 삼성의 윈윈전략

소니가 삼성전자에 손을 내민 까닭은 과연 무엇일까.

소니와 파나소닉등 일본 가전 업체들은 이미 TV브라운관의 자국내 생산을 완전 중단했다. 일본내 생산 제품의 원가 및 품질 경쟁력의 상실을 사실상 시인한 것으로 세계 브라운관 시장은 삼성SDI, LG필립스 디스플레이 등 국내업체의 독주체제가 이어지고 있다.

이들 업체는 TV시장의 신규 수요가 박형 평판 디스플레이로 집중됨에 따라 브라운관 TV에서는 더 이상 적정 수익을 내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일본 브라운관 업체들은 앞으로 PDP, LCD 등 평판 디스플레이에 주력한다는 입장이지만 이미 이 분야에서도 국내 업체들이 일본업체에 패널을 공급하고 있다. 소니는 이 같은 상황에서 라이벌 격인 다른 일본 업체보다는 TFT-LCD 1위 업체인 삼성 전자와 손을 맞잡고 시장과 표준을 창출해가며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최선택이라고 판단했다.

LCD패널을 좀더 안정적으로 공급 받겠다는 소니와 막대한 투자 리스크를 덜고, 대규모 부품 수요처를 확보하겠다는 삼성전자의 전략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소니와 삼성전자의 7세대 LCD라인 합작은 세계 TV 1위 업체와 부품 1위 업체가 차세대 40인치 대 TV 시장을 창출하는데 있어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걸출한 환경을 조성해주기 때문이다.

이상완(53) 삼성전자 AMLCD사업부장 사장은 “소니가 삼성을 택한 것은 삼성의 TFT-LCD 기술과 품질이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와 있다는 것을 증명해 준 것”이라며 “이에 따라 기존 노트북과 모니터 제품 외에 TV용 TFT-LCD 세계 시장에서 점유율을 40% 이상으로 올려, 다시 1위 업체로 올라설 것”이라고 상기된 모습을 ㉲償?못했다. 특히 6세대를 건너뛰고 7세대 생산에 착수한 삼성전자에는 투자 분위기마저 고조돼 한층 장밋빛이다.

이 사장은 “TFT-LCD 차세대 생산라인의 규격과 기술의 표준화 차원에서 7세대가 우위를 선점, 후발 대만 업체들도 7세대에 투자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LG필립스LCD에 LCD 업계 1위 자리를 내주며 자존심을 구긴 것을 이번 기회에 확실히 만회, 생산량은 물론 업계 표준까지 완전 장악하겠다는 의도를 감추지 않는다. 삼성전자는 7세대가 겨냥하는 40인치대 시장에서 PDP(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보다 경쟁우위를 가질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PDP는 패널 안에 가스가 들어가 빛을 발하는 방식인 반면 LCD는 패널에 액정이 들어가 빛을 발하는 방식으로 구분된다. 7세대 LCD는 기판 크기가 5, 6세대 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생산 비용 부담이 큰데다, 높은 품질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이사장은 “7세대 LCD의 경우, 백 라이트 유닛, 인버터 등의 부품이 전체 재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0%로 높기 때문에 이 부분의 재료비를 낮출 수 있는 방안을 별도 인력을 투입해 계열사 및 관계사와 연구 중”이라며 “최근 세계적인 TV 제조업체들의 40인치 대 LCD 패널 주문량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어 50, 60인치 대에서도 PDP에 비해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학만기자


입력시간 : 2003-11-27 10:36


장학만기자 local@hk.co.kr